나와 주변 이야기

36 어머니의 단골 말씀, 귓가에 ...

행복을 나눕니다 2010. 11. 1. 07:21

 

 



       어머니 생신 우리 집에서


 

어머니의 단골 말씀, 귓가에 ...
나이 많은 부모가 [나는 괜찮아] 하시는 말씀은 선의의 거짓말 
나의 오늘이 있는 것은 [너들 위해 매일 기도한다]하셨던 어머니의 기도 덕
청춘에 혼자 되어 재혼하지 않고 우리 지켜준 것 고마워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에는 내 어머니도 포함된다. 내 아버지는 내가 아흡 살 때 세상을 떠나셔서 특별한 기억이 없지만, 어머니가 이따금 들려준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버지 고향은 충청남도 청양군인데, 총각 때 대구로 내려와 대구 갑부이신 아버지 의 사촌형 집에서 일을 하셨고, 내 어머니와 결혼한 후 단독으로 사업을 하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긴 일기장의 글을 보니 명필이다. 이 필적은 나중에 내 맏형에게 전수된다.

아버지는 융통성 없이 곧이곧대로만 사신 분 같다. 내 것 없으면 굶고, 있으면 친구한테 나눠 줘버리고, 그래서 세상 떠나신 후에는 빚만 남았고, 조그마한 집 팔아 빚 갚고 보니 가족들이 갈 곳 없어 시골 외할아버지 댁에 들어가 약 6개월 살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싶어 대구 시내로 다시 나왔단다.

나는 10대 때 어머니와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은 모두가 어려웠지만 우리는 더욱 심했다. 한마디로 거지같이 살았다면 믿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을 다녀야 할 내 여동생을 공장으로 보냈으니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동생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동생이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중년에 미국 이민 가서 신앙으로 잘 살고 있어 고맙다.

형님들이 계셨으나 당시 어려운 사회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발버둥쳤지만,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두 분이 함께 군에 자원입대 해버렸다.
국가가 주는 밥 먹고, 옷 입고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면 의식주는 해결되니 그게 다행이었다. 군대 생활도 맏형은 아버지 앞에서 무릎꿇고 배운 붓글씨와 아름다운 필체 덕택에 의정부 보충대 부관부 행정과에 근무했다, 군사 정부 시절 형님은 편지를 지인에게 보냈는데 겉봉 주소가 워낙 명필이라 정보부 검열에 걸려 편지가 지인에게 전달되지 않고, 편지 내용에 나오는 사람에게 전달됐는데, 그 사람은 공교롭게도 내 친구였던 일도 있다

둘째형은 좋은 상관을 만나 대구에 있는 사단 사령부 부관부에서 괜찮은 보직을 맡아 아주 수월하게 복무하면서, 형들은 각각 재충전의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남은 우리 세 식구는 완전 거지 신세다. 목숨이 붙어 있으니 발버둥쳐야 했다. 어머니 말씀대로 [나는 자식들하고 살아보려고 도적질하고 서방질만 안 해보고 다 해봤다] 할 정도로 억세게 험하게 밤낮없이 뛰었다. 그래도 끼니를 건널 때가 종종 있었고, 연명에 급급했고, 움막 한 칸도 없어 이사 다니기 바빴다.

그즈음 어머니는 할머니의 기도가 응답되어
믿기를 중단했던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가신다.
진작 예수님을 믿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늦은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일터도 얻고 보리밥이나 좁쌀 죽이라도 먹을 수 있게 된다.
군에 있는 형들도 힘닿는 데까지 협조해줘서 형들이 제대할 즈음에는, 비록 움막이라도 내 집이 마련되어 옮겨다니지 않아도 됐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머니가 처음 교회 나가실 때 마땅한 의복이 없어 난감해하자, 교회 윤권사님이 자기 옷을 내 주면서 교회로 이끄셨다. 물론 교회가 좋은 옷을 입고 가는 곳은 아니지만 그만큼 의복이 형편없었다는 말이다. 윤권사님은 자기 아들은 6.25 남침 전쟁에 행방불명되고, 당시 반공 포로로 석방된 청년을 양아들로 삼아 함께 하신 이북 피난민이었다. 지금은 소천하셨을 것이다. 고마운 분인데 .....

내가 부산서 결혼하고 몇 년 후에 서울 올라온 뒤로는 어머니를 자주 뵙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명절조차 거의 내려가지 못했지만, 전화는 자주 한 편이다.
전화가 일반화되지 못한 시절이라도 내 집에 전화가 가설되기 전에는 공중 전화나, 아니면 직장에서 몰래 도둑(?) 전화를 한 셈인데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다 ....

전화 드릴 때나 직접 뵈올 때나, 어머니가 단골로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기도 많이 해라. 어멈도 아이들도 잘 있지? 몸 건강해야 한다. 나는 괜찮다.
나는 너들 위하여 매일 기도한다. 너희들만 잘 되면 된다. 네가 준 용돈 잘 쓰고 있다. 고맙다. 너도 어려운데 이젠 안 보내도 된다. 나이 많은 사람이 돈 쓸 데가 있나?..... ] 물론 경상도 억양의 투박한 사투리로 하신 말씀이지만 내용은 이랬다.
이 말씀들이 지금도 내 귓가에서 선명하게 맴돈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씀 속에 [기도] 하신다는 고마운 말씀도 있었지만, 선의의 거짓말도 들어 있다는 것을 내가 나이가 들면서 알았다. 그건, [나는 괜찮다.] 라는 말씀과 [나이 많은 사람이 돈 쓸 데가 있나?]하는 말씀이다.

사실은 어머니가 괜찮은 것이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멀쩡하지만, 속 골병이 많이 들었다. 젊었을 때 무거운 물건을 머리에 얹고 양팔에 걸치고 다니며 행상을 많이 했고, 억센 일을 많이 하시며 남다른 고생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온갖 관절 부위가 좋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머리 꼭대기에 불을 피워둔 것 같이 화끈거리고 아프다]며, 틈만 나면 찬물 적신 수건을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팔목이 아프다며 답답한 마음에 어디서 들었는지 바느질하는 실에 나이 수만큼 매듭지어 손목에 감고 다녔다.

한 번은 서울 오시게 해서 마포의 어느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 드렸는데 얼마나 효력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많이 좋아하셨다. 자주 치료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나는 괜찮다] 하신 말씀이 진짜인 줄로만 착각했다,

또 [나이 많은 사람이 돈 쓸 데가 있나?]하시는 말씀도 그렇다. 나도 지극히 적은 액수의 용돈을 보내드렸지만 간혹 건너뛸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 돈 쓸 곳이 더 많다. 그런데 자녀된 자들은 이것을 모르거나 알아도 부담스러워 모른 체하고 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들 눈치보느라 선의로 속이는 말을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송하다. 아직 계신다면 좀 더 잘해 드릴 수 있는데 .... 물론 그 당시는 내 형편껏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엄청난 착각이다.

나이 들면 누구나 아픈 곳이 많고 아쉽고 힘들고 외로운 감정이 더 많은 법인데 .... 자녀라는 위치는 부모가 세상 떠난 후에야 후회하는 어리석은 존재들인가 보다......

나이가 들수록 내 어머니께 대한 고마운 마음과 존경심 더 커진다.

30대 중반, 청춘에 혼자 되셨으나 재혼하지 않고 우리를 지켜 주셔서 고맙다, 한편 미안하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

혼자 몸으로 우리 4남매와 부대끼면서도 눈물 보이지 않아 고맙다. 속으로, 우리들 모르게는 많이 우셨겠지만 ...

예수 믿고 나서는 매일 밤낮으로 우리 위해 기도해주셔서 고맙고,

한 번도 우리들 앞에서 [못살겠다. 죽겠다.]하는 비관적 말씀을 하지 않아서 고맙다,

모진 욕이나 자식들 마음 상할 말을 하지 않아서 더 고맙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는 여자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던 때라 비록 학문적 경험은 없지만, 자식들에게 강인함과 삶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다.

내 아버지 별세하시고 어머니는 자녀된 우리들을 앉혀 놓고 [아비 없는 자식이라 그렇다는 소리 듣지 않도록 행동해라] 고 부탁하실 정도로 신경을 썼고,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동네에서 예의바른 아이들이라는 소리 듣고 자랄 수 있었다.

자녀들 생활 속에 언제나 함께 활동하시며, 삶의 중심에서 기도하시던 내 어머니가, 병석에 든지 1년 만에 84세로 생을 마치시고 천국 가신지 벌써 13년이 넘었다.
아주 자주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 뵙기는 하는데 별 말씀은 없으시고 언제나 나를 보고만 계신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어머니가 그리운 마음은 누구나 같은데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됐다.

나는 어머니 장례식 때 입관하는 장소에 들어가지 않았다.
임종을 지키지 못해 당연히 들어가야 하지만, 어머니의 죽은 모습을 기억하기보다, 살아 계실 때 활기찼던 모습을 평생 기억하고 싶어서 그랬다. 무덤도 지금껏 한 번 가지 않았다. 죽은 자의 무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살아 계실 때 물 한 모금 더 챙겨 드리고 옆에서 말동무라도 해 드리는 것이 잘하는 것인데 ,.... 잠시 나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모은다. 어머니의 말씀 기억하면서 ........

오늘의 내가 있음은, 전적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도우심이요, 복 주심이며, 기적이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린다.
아울러 언제나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신 어머니의 공로가 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감사한다.

[기도하는 부모가 있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다.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실 어머니를 ..., 언젠가는 직접 뵙겠지 ,.........

* (롬8:26) ....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기도)하시느니라

*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마15: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

* (딤후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