幸福한 묵상

3505. 제사, 조상 숭배의 나라

행복을 나눕니다 2020. 10. 2. 00:00

 

제사, 조상 숭배의 나라

조상은 신이 아니고 사람이므로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부모는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며, 부모 공경은 살아생전에 정성을 다하여 모시는 것

 

명절은 즐겁고 기쁜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조상 제사로 경제적 부담과 수고로 가정불화의 원인,

 

지난 추석 명절을 잘 쇠셨는지,

부모와 일가친척은 평안하신지,

조상은 만나 뵈었는지, 그리고 청명해진 가을밤 그윽한 달빛을 맞으셨는지.

 

우리 정서엔 꼭 들어맞는 이런 인사의 뒤편에는 앞앞이 말 못하는 갑갑증과 파열음이 꿈틀대고 있다.

 

부모, 친지와의 만남이 항상 저 환한 달빛과 같으면 좋으련만,

가족사엔 언제나 기대와 원망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서로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게 명절이다.

 

말이 명절(名節)이지 수백 년 대물림된 행사를 치러야 하는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뭇한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명절이 명절 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은 명절에 조상 제례(祭禮)로 일관되는 나라이다 보니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유교 문명의 종주국인 중국은 물론 주변국인 일본과 월남에서도 조상 제사는 없다.

 

유교문화권, 아니 세계에서 한국이 조상 제사를 지내는 유일한 나라가 된 까닭,

오늘날까지도 후손들이 위패 앞에 은덕을 비는 나라가 된 까닭을 정작 우리도 잘 알지 못한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풍경인가라고 어른들은 짐짓 위엄스러운 표정을 짓겠지만, 남녀 간 불합리한 역할, 가족 간 불공평한 노력봉사와 비용조달에 가슴앓이하고 시간을 쪼개 품앗이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소소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게 요즘의 추세다.

 

아마 귀경길에서 언쟁깨나 했을 부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소중한 시간을 의례에 쏟아 붓고 허둥지둥 돌아설 때 그런 회의가 들지 않겠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유별난 '조상숭배의 나라'가 되었을까?

1894년 영국의 지리학자 비숍 여사는 오백 년 도읍지 한양에 종교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종교 없는 제국은 없다는 문명사적 시선으로 보면, 사찰은커녕 공자 사당 하나 없는 유교국가의 수도가 이상했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무속과 민간신앙에 푹 빠져 있는 조선인들을 목격했다.

콜레라가 습격한 마을엔 고양이 그림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

가는 곳마다 무당이 있었고, 으슥한 곳마다 귀신이 살았다.

 

귀신 종류도 다양해 그녀는 36가지 귀신 이름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이 과도한 무속과 민간신앙을 조상제례로 전격 대치한 계기가 바로 조선 건국이다.

고려 말까지도 명절은 하늘과 자연을 경외하는 집단축제였다.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한 조선은 민간신앙을 일소할 방법을 주자학에서 찾았다.

제천(祭天)과 제사(祭祀)가 그것이다.

 

경복궁 우측에 사직단을 지어 하늘신과 토지신에게 제례를 올리고, 좌측에 종묘를 지어 제사의 기원을 마련했다. 15세기 말 성종은 아예 『경국대전』을 편찬해 국법으로 반포했다. 예제(禮制)에 이런 조항이 있다. "6품 이상 문관이나 무관은 3대까지 제사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까지, 일반 서민은 부모에게만 제사 지낸다."

잡신을 섬기는 자는 처벌되었다.

 

빈곤한 서민은 위패를 모시고, 명절 땐 두어 가지 음식으로 족했다.

굶는 판에 더 차릴 것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양반이 향촌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봉제사는 충군효친의 규율 수단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엄격한 격식과 요란한 상차림이 강제됐다.

조상숭배가 통치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놓이자 봉제사는 곧 가문의 위세경쟁으로 변했다.

 

유교는 내세관이 없는 게 특징이다.

'조상숭배의 나라'에서 불교와 주술신앙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다.

 

미국 선교사 헐버트는 『대한제국 멸망기』에서 "코레아인들은 사회생활에서는 유교에, 사고방식은 불교에 속하며, 곤경에 빠지면 귀신을 믿는다."고 썼다.

 

21세기 대명천지에 귀신을 믿는 사람은 이제 없어졌고,

외래종교가 유입되자 한국은 다종교사회로 변했다.

그런 와중에 유교는 제천(祭天) 기능을 다른 종교에 넘겨주고 주로 생활의례, 특히 제례(祭禮)로 살아남았다.

 

명절이라는 축제의 시간을 제사로 종종걸음을 쳐야 하는 '조상숭배의 나라'가 된 역사적 배경이다.

 

이런 내력을 알았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조상을 기리는 방식은 여럿인데 왜 반드시 상차림 형식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조상숭배가 왜 자기 가문(家門)에만 국한돼야 하는가. 전자는 덮어두고라도 후자는 의미심장하다. 탁월한 학자와 선비, 그리고 민족 영웅과 구국의 정치가들이 가득한 오천 년 역사에서 국민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할 선현들을 기리는 데는 인색했다.

 

명절마다 천여만 명이 이동하고, 집집마다 족보 하나쯤은 갖춘 세계 유일의 '조상숭배의 나라'에서 다 같이 숭배할 조상이 이처럼 없는 것도 너무 특이하지 않은가.

 

[중앙일보] 나도 한마디 (133)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2010.09.27 19:46 입력 / 2010.09.28 00:25 수정 (원제목:조상 숭배의 나라)

https://news.joins.com/article/447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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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4:39-40) 39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40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남을 의식하느라....

    조상 숭배의 일환으로 제사를 치르지만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전통이라는 관습에 매여 쉽게 고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족들이나 주변의 체면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습니다.

 

제사로 인한 피해도 큽니다.

명절이나 기일(忌日)이 되면 가정이 깨지는 일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제사를 효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진짜 효도는 살아생전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정성으로 드리는 것이 바른 효도입니다.

 

살아있는 가족이 어려운 경제에 허리 휘게 음식 차려도 먹고 가는 조상은 없습니다.

가족이 먹고 마시고 불화하고 싸움하는 후유증이 많다고 합니다..

 

♥ 명절을 즐거운 날이 되게 하고, 풍요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할 줄 아는 삶이 되게 해야 합니다. 조상이 농사도 잘되게 하고 집안이 편하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산자도 버거운 일을 병약하여 죽은 나약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돕는다는 말은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기일이 되면 고인에 대한 존경과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고 고인의 삶을 거울삼아 계승할 것과 버릴 것을 되짚어 보며

욕되지 않게 열심히 살면 효도입니다.

 

지금 당신이 결단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삶을 꾸리고 부모를 공경하고 기일을 지키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복되게 하십니다.

 

♥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셨고 승천하셨으며

오래지 않아 우리의 삶을 심판하러 다시 오십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삶은 영원히 복됩니다.-이박준  lee7j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