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이야기

0000. 기독교 장례식 규모는?

행복을 나눕니다 2018. 9. 6. 01:00








기독교 장례식 규모는?

 

예수님은 무덤이이 없어 남의 무덤 빌려서 아주 간소했고, 삼일 만에 영광스럽게 부활했습니다.

거창하나, 간소하나, 죽은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없고, 유족의 자기만족과 과시일 뿐,

 

기독교인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 삶이 시작되는 시간이며, 장례는 천국 간 영혼이 사용하다 남긴 몸(어떤 분은 쓰레기라 함)을 매장하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고귀한 것은 그 몸에 영혼이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떠난 몸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므로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산자와 함께 할 수 없어 멀리 치워 버리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그동안 인간적 정()과 존경심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예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장례는 간소하되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가지고 내면적 감사와 기쁨을 간직할 줄 알아야 그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장례를 간소화하는 대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고인을 기념하고 그의 삶을 추억하기 위하여 이웃돕기나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이 주안에서 사람답게 잘 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장례를 거창하게 하는 사람에게도 이유는 있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소망이 있으면 신앙적 위로가 되어 슬픔을 절제하고 인내할 수 있지만. 천국 소망 신앙이 없는 사람은 슬픔과 아쉬움을 위로받을 길 없어. 고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힘에 넘치도록 값비싼 장례용품을 사용한다든가, 거창한 의식 행위를 통하여 내가 고인을 위하여 이렇게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므로 무의식 중에 위로받으려는 욕구일 수도 있고, 나아가 고인을 생전에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를 위한다는 마음에서 아낌없이 거창한 의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그러나 장례가 거창하나 간소하나 죽은 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죽은 자가 장례로 인하여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며 장례를 통하여 죽은 후에 갈 곳이 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국장이나 사회장이나 국민장 등의 의식을 기독교인 신앙으로 볼 때 그것은 잡탕 의식입니다. 특히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행위는 기독교 입장에서는 잘못이며, 순전히 남은 유가족을 위로하고 시신을 안장하는 절차만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가 간섭할 수도 없고 우리가 장례를 거창하게 가진다고 죽은 자의 위상이 저세상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족들이 고인을 기념하여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지만, 그것도 과장되거나 미화하면 자칫 우상화될 수도 있고, 고인을 욕되게 할 수 있으므로 진정성을 가지고 조심해서 해야 할 것입니다.-이박준 (사진-장미-사진동호회원, 우종선 제공)

 

*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3:19)

 

*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