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야기

2803 순교 성지 절두산, 원래는 처형장

행복을 나눕니다 2018. 1. 22. 01:58







순교 성지 절두산, 원래는 처형장

 

조선시대 서슬 퍼렇던 처형장,

이제는 도시에 포위된 순교 성지로, 한강의 변화 지켜본 절두산

 

처형장이었던 절두산은 이제 순교 성지를 꼭대기에 이고 있다./ 황두진

조선시대 한양 안팎에는 몇 군데 처형장이 있었다.

도성 안에는 지금의 세종로 남단에 있던 군기감이 국사범들의 처형장이었다.

나머지 처형장은 모두 도성 밖 서쪽에 있었다. 현재 서소문공원 사업이 진행 중인 만초천변의 서소문 밖 처형장을 비롯한 용산구의 당고개와 새남터 처형장 등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서쪽에 있던 것이 양화진의 절두산, 혹은 잠두봉 처형장이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한 장소다. 대원군은 같은 해 맞물려 일어난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진출했던 양화진 인근의 이 장소가 갖는 상징성에 주목했다. 그래서 새남터가 아닌 이곳을 처형장으로 정했다. 조선은 물론 전 세계에 보내는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버드나무 꽃 날리던 언덕에 사람 머리가 후드득 떨어졌다.

 

절경으로 유명했던 이곳이 비극의 장소가 된 지 90년이 되던 해인 1956'한국 천주교 순교자 현양회'가 이 땅을 매입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즉 병인박해로부터 100년이 되던 1966년에 현재 절두산 순교성지로 불리는 건물이 들어섰다.

설계자는 이희태다. 김수근, 김중업에 가려져 있지만 시대의 풍운아였던 두 건축가에 비해 훨씬 냉엄한 프로페셔널의 면모가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산의 모양을 변형시키지 말 것'이라는 현상설계의 요구 조건을 충실히 구현했다. 다만 순교자의 머리를 내려친 칼, 그들이 쓰고 있던 갓, 토속적인 초가지붕 등 직설적인 요소를 차용하여 이론적으로는 많은 공격을 받았다. 반면 직접 방문하여 건물을 체감한 사람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 일대는 한강변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하게 경관이 변한 곳 중 하나다.

상류에는 이미 1930년에 당인리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었다. 1965, 그러니까 이 건물이 한창 지어지고 있을 무렵 하류에 제2한강교, 즉 현재의 양화대교가 완성되었다. 그 북단에 조각가 김세중의 유엔탑이 있었다. 김포 방면에서 서울로 오다 보면 유엔탑과 절두산 순교성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후 잠두봉 지하차도, 강변북로 그리고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 등이 들어서면서 순교성지는 지상과 지하에서 사분오열이 되어 버렸다. 유문암으로 구성된 지질이 진동에 취약하여 현재 그 대책을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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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너머에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는데↑ 이곳은 뜻밖에도 개신교의 역사 유적지다. 1890년부터 안장이 시작되어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미가요와 대한제국 애국가를 둘 다 작곡한 특이한 이력의 에케르트,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 배설, 선교사면서 교육자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묘), 근대사의 독특한 인물인 르장드르 등이 여기 잠들어 있다. (양화진 개신교 묘지 더 알기 원하면, 바로가기 :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ome0511&logNo=22113348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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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절두산 사진은, 2012년 어느 청명한 가을 늦은 오후에 작은 배를 타고 한강에 나가 찍은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가장 낮은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의 풍경이다. 왼쪽에 당산철교와 방음벽이 보이고 절두산의 절경은 강변북로에 의해 대부분 가려졌다.

사진의 오른쪽 밖에는 당인리화력발전소의 오늘날 이름인 서울화력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다. 도시 인프라가 사방에서 순교성지를 포위한 것이다. 우연이겠지만 건물의 중심축에 강변북로의 가로등이 절묘하게 서 있다. 그 뒤로는 한창 고층화되고 있는 합정역 일대의 고층 건물들이 빼곡하다. 병인양요 당시 여기까지 진출했던 프랑스 함대는 한양도성까지 관측했다지만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서울은 좀처럼 뒤돌아보지 않는 도시다.

조선일보 [황두진의 한 컷 공간] 황두진 건축가 입력 : 2018.01.19 04:00

출처 http://life.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8/20180118018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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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죄인을 위해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의 목적을 모릅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목적이 생기고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찾게 되고, 오래오래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태어남도 아셨고, 출생의 목적도 분명하여, 죄 많은 인간을 위하여 고난당하시다가 결국은 죄인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왕으로 오셔서 영광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낮은 자리로 오셔서, 죄인을 섬기고 또 섬기다가 결국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시려고 오셨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출생의 목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그런 삶을 사셨고, 33세라는 짧은 삶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 들어가셨으나, 주님의 위대하신 능력으로 부활하셨고, 승천하시면서. 오래지 않아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만왕의 왕의 신분으로 재판장으로 오셔서 세상과 죄인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때를 대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주님의 삶을 본받아, 복음 전파와 죄인 구원을 위하여 고난당하며 희생하고 순교한 분들은, 행복한 사람이요 하늘나라에서 상도 클 것입니다. 이런 삶이 부럽습니다.-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