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교회
할머니 맘에 형광등 밝히는 부강교회, 집집을 찾아다니며 불편 해결
부강감리교회(목사 황호찬)는 충북 청원군 부강리에서 약한 자들을 돌보고 있다. 혼자 살면서 마음이 침침해진 노인들의 벗이 되려고 가정을 찾아다니면서 형광등을 갈아 드리고 있고, 부모들이 일하느라 방치된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지역아동센터를 하고 있다.
황호찬 목사는 우연한 계기에 노인들의 집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2006년 교회 근처에 사시는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나서다. 평소에 인사하고 지내던 할아버지였는데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농약을 드셨다고 했다. 충격으로 인해 발작 증세를 보이며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웠다.
황 목사는 2005년부터 '나이야가라 노인 대학'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노인들을 만나고 있어서 그들이 외롭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자살은 충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홀로 사시던 할머니도 아파트에서 뛰어내려서 목숨을 저버렸다.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황 목사는 노인을 위해 무언가 할 일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말년에 말벗 없이 외롭게 지내시는 게 안타까웠다.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며 평생을 보냈으니 이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데 다니면서 쉬면 좋을 텐데 대부분이 그러지 못했다. 자식들이 같이 살자며 모셔 가려 하기도 했지만, 부담 주기 싫어 혹은 살던 곳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홀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외로이 홀로 지내는데 집까지 침침하면 마음이 어두워지겠다 싶었다. 그래서 오래된 형광등 기구를 떼어 내고 새 형광등으로 바꿔 주기 시작했다. 조명이 오래되어 어두운 것은 두말할 것 없고, 불을 켜면 소리가 나거나 녹슬어 금세 떨어질 것 같아도 그대로 달고 사시는 노인이 많아서다. 특히 할머니들은 전기를 무서워하는 바람에 전구 하나도 혼자 갈지 못해 어둑하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
황 목사는 특히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에 노인들이 더 우울해 한다고 했다. 봄에는 '내가 1년 동안 무엇을 했나'라는 한탄을 하시고,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 때문에 싱숭생숭하다 했다. 그래서 가을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등을 갈 생각이다. 계획은 마흔 가정의 형광등 기구를 갈아 드리는 것인데 하루에 네다섯 가정도 방문하기 힘들다. 조명을 가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지만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집들도 띄엄띄엄 있어서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한 시에 집을 방문한다고 했는데 할머니들은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황 목사가 부강감리교회 한사무엘 전도사와 함께 방문하면 할머니들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만연하다. 노인 대학과 복지 기관을 통해 형광등 교체를 신청하면서 할머니들은 형광등 기구 하나만 갈아 줘도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황 목사 일행은 필요에 따라 한 집에 두 개, 세 개 갈아 주기도 한다.
조명 기구를 바꾸기 위해서 먼저 두꺼비집을 내려야 한다. 전원이 차단되니 작업하는 동안 선풍기를 틀 수 없다. 황 목사와 한 전도사가 땀을 흥건히 흘린다. 하필 여름에 작업해서 고생하느냐 했더니 주저리주저리 딴소리다. 두꺼비집을 내리지 않고 작업하면 바비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땀을 흘리는 게 낫단다. 농담에 하하 웃으면서도 할머니들은 연신 미안해하며 부채를 부쳐 줬다. 작업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수박을 내 와서 벌써 휴식이다. 오늘도 여러 집 가기는 글렀다.
박노순 할머니(75)는 같이 살던 아들이 먼저 죽은 후에 전구도 갈지 않고 살고 있다. 양쪽 무릎이 아파 수술한 후, 움직이기 힘들어 화장실과 가까운 부엌에 침대를 가져다 놓고 거기서만 생활한다. 형광등이 어둡지만 혼자 사는 데 뭘 고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살았는데, 부강감리교회가 알아서 형광등 전체를 갈아 주니 너무 고맙다 했다.
박일분 할머니(72)도 3년 전에 남편을 여읜 후, 혼자 살고 있다. 평생 해 본 적이 없어서 전구를 갈려고 해도 남의 손을 빌어야 했다. 전구를 사다 놓고 옆집 총각을 불렀다. 그러니 형광등 교체는 엄두도 못 냈다. 돈이 들 테니 엄두가 안 나고, 돈 들여 사 와도 혼자 할 줄도 몰라 남에게 도와 달라고 하려니 미안했다.
황 목사가 형광등을 갈고 할머니에게 전원 버튼을 손수 눌러 보라고 했다. 불이 들어오자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이구, 밝아졌네. 이렇게 환야. 집이 까맣기는 했는디, 내는 어떻게 하는지 하들 못하고 그랴. 돈도 없고. 근디 공짜로 달아 듀니, 얼매나 고마버. 여간 고맙다 안야."
사랑 받는 '사랑 나눔 지역아동센터'
이웃에 있는 할아버지 덕에 노인들에게 깊이 관심을 갖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주위 어린아이들 때문에 부강감리교회는 어린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교회 맞은편 가게 앞에 두 명의 꼬마들이 매일 앉아 있었다. 딱히 하는 것도 없이 앉아서 부모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들이 안쓰러워 교회로 들어와서 놀라고 했고 밥도 주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 아이들이 모여 공부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이 '사랑 나눔 지역아동센터'가 되었다.
돌봐 줄 어른들이 없어서 아이들이 금세 모였다. 부강리 주민들은 주·야간 교대 근무하는 공장 근로자가 많다. 부강에는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 등 대규모 농공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여타 지방에 비해, 일자리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어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해야 하는 형편이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어려움도 겪었다. 5년 전에 한 초등학생이 공부방에 놀러 와서 교사에게 성추행당한 이야기를 했다. 깜짝 놀란 사모가 일기를 써서 담임선생에게 알리라고 했는데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사건이 조용해지나 했는데, 이 여학생이 친구가 동네 오빠들에게 괴롭힘 당한 일에 대해 사이버 수사대에 글을 남기다가 마지막에 자신의 이야기도 썼다.
경찰이 조사하러 나오고 사건이 커져 부강리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문제를 일으킨 교사는 토박이로 입심이 센 사람이어서 주민들 누구도 이 사건을 크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부강감리교회 목사와 사모가 아이를 비호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한때 교회를 미워하기도 했다. 후에 교사가 처벌을 받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마음이 녹았다. 이 사건을 통해 아이의 더 큰 문제가 발견되기도 했다. 아이의 양아버지가 오랫동안 아이를 성추행했는데, 그 사실이 교사 성추행 사건 때문에 밝혀지게 되었다.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황 목사는 더 사명감을 느꼈다. 동네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가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600명이면 꽤 큰 규모인데도 면 소재지에 지역아동센터는 부강감리교회가 하는 한 곳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다.
가장 먼저 아이들이 좋은 문화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 그래서 사랑 나눔 지역아동센터에서는 구연동화를 가르치고, 일주일에 한 번 시인이 와서 문예 교실을 연다. 매주 한 번 과학 동아리 모임도 열고 기타를 배우기도 했다. 색소폰도 배운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도 흔하게 배우지 않는 색소폰을 어떻게 가르칠 생각을 했는지 물으니, 일반적인 악기가 아니니 다룰 줄 알게 되면 아이들이 더 자긍심을 갖게 될 것 같아서 선택했다고 한다.
아동센터는 만남의 장소 역할도 한다. 이혼한 부모들도 아이를 보러 집으로 가는 대신 이곳으로 오기도 한다. 전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살고 있으니 집에 가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아이들을 보고 싶은데, 아이들 만나기 좋은 장소가 아동센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아해서인지 지역 주민들도 지역아동센터를 아낀다. 예컨대 방앗간에서 언제든 떡을 지원할 테니 필요할 때 말만 하라고, 지역에 있는 빵집에서도 언제든 말만 하면 주겠다고 했다. 덕분에 지역아동센터에 먹을 것이 끊이지 않는다. 출력하는 곳에서도 플래카드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니 복이 터졌다. 지역 주민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언가 했더니 지역아동센터가 그동안 이름대로 '사랑 나눔'을 하고 있어서인가 보다. ⓒ뉴스앤조이 김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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