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야기

16 제 친구에게 기적을 주세요

행복을 나눕니다 2008. 1. 24. 06:14

 

제 친구에게 기적을 주세요 우리 둘, 음악 더 할 수 있게"
가수 이문세, 말기 암 투병 작곡가 이영훈 찾아  기도

"지구가 서버린 듯 너무 아파" "일어나서 가스펠 음반 꼭 함께"
 

 1987년 발매돼 무려 285만장이나 팔리며 당시까지 한국대중음악 사상 최다 판매량 기록을 세웠던 이문세 4집. "우리 두 사람,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음악을 더 많이 만들게 해주시옵소서." 가수 이문세(49)가 작곡가 이영훈(48)의 병상 옆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두 사람은 기도가 끝난 뒤에도 두 손을 꼭 맞잡고 "아멘, 아멘"을 한참 되풀이했다.(한현우 hwhan@chosun.com)

 

지난 18일 낮, 말기 대장암으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영훈을 이문세가 찾아갔다. 이영훈은 이문세의 히트곡 대부분을 작사 작곡한 음악가. 지난 2006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두 번의 수술을 거쳤으나 현재 암세포가 위까지 퍼진 상태다. 작년 10월부터는 항암 치료도 중단하고 모르핀으로 버티고 있다. 한 달 전부터 음식을 일절 못 먹고 물과 주스만 마신다.

 

온 몸에 주삿바늘을 주렁주렁 매달았고 코에는 산소 튜브를 꽂고 있었다. 이영훈은 자신의 병세에 대해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친구 앞에서 '달변가' 이문세는 좀처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곡(曲) 하나 쓸 때마다 술, 담배를 얼마나 하는지. 한 2분마다 한 대씩 담배를 피웠잖아요."(이문세)


"노래 만들 때 '원가'가 꽤 들지. 하하. 커피는 또 얼마나 마셨는지."(이영훈 )

 

두 사람은 1985년 처음 만나,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휘파람'이 담긴 이문세 3집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문세는 1, 2집의 흥행 실패로 이영훈을 만나기 전만 해도 '라디오 DJ'로 더 유명했다.

 

당시 이영훈과 이문세의 만남은 엄청난 호응을 일으켰다. 3집이 150만장 팔렸고, 이어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그녀의 웃음 소리뿐'이 담긴 4집(1987)은 무려 285만장이 팔려나갔다. 당시 한국 대중음악 사상 최다 음반 판매량이었고, 이 음반을 내놓았던 '킹 프러덕션'은 공장을 짓고 '킹 레코드'로 사명을 바꿨다. 이어서 발매된 5,6,7집과 9,12,13집 음반이 모두 이영훈의 작품이다. 그러나 12(1999)13집(2001)이 연이어 인기를 얻지 못한 뒤 두 사람 간 불화설이 돌았다. 실제로 두 사람 사이 왕래도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지난 18일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 작곡가 이영훈(오른쪽)의 병실을 찾은 가수 이문세가 이영훈의 두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하고 있다. 이영훈은 이문세의 히트곡 대부분을 작곡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그러다 이문세가 작년 11월 이영훈 홈페이지에 '모든 게 정지된 듯합니다. 지구가 갑자기 서버린 느낌입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고 영훈씨 하고 저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거든요'라는 글을 올려 팬들을 울렸다.

 

"음반 만들 땐 한 6개월간 매일 만나서 고치고 불러보고 다듬고. 가사는 저절로 외워지는 거지." 이문세의 말에 이영훈은 "문세씨는 '건조해요' '슬픈 감정 빼봐요' 이렇게만 말해도 곧장 알아듣고 노래를 잘 불렀다"고 했다. 이문세가 화답했다. "'옛사랑' 같은 노래는 영훈씨가 부르는 게 훨씬 좋아요.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며 울었지' 이렇게 시를 읊듯이 부르면 정말 끝내준다니까."

 

친구의 눈을 바라보고 있던 이영훈이 이문세의 손을 잡았다. "문세씨 항상 건강하고, 우리가 만든 발라드가 후세에 남을 수 있게 해줘요. 우리가 젊었을 때 몸 바쳐서 만든 거잖아."

 

23년 지기(知己)인 두 사람은 아직 서로에게 '씨' 호칭을 붙인다. 이문세는 "한 살 어리지만 내 음악의 스승이고, 또 작곡가로서 존중해주기 위해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크리스천인 두 사람은 가스펠 음반을 함께 만들기로 약속한 상태다. 그러나 이영훈의 병세가 나빠지면서 계속 미루고 있다. "해야죠. 퇴원 안되면 외출해서라도 녹음해야죠. 난 지금 하나님한테 5000만원 꾸고 1만원밖에 못 갚은 기분이에요."

 

"문세씨, 이제, 내가, 힘들어." 이영훈의 인상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이문세는 "너무 말을 많이 시킨 것 같다"며 일어섰다. 함께 돌아서는데 이영훈이 기자에게 말했다.

 "가스펠 음반 만들면 기사 좀 써줄 거죠?" 그러겠노라고 대답하며 병실 문을 나섰다. 하늘은 유난히 파랬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총총 걷고 있었다.

                                                                                (인터넷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