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야기

3884. 돈 벌어서 남 주자

행복을 나눕니다 2022. 3. 22. 00:00

 

돈 벌어서 남 주자

113억 기부하고 떠난 99세 의사

 

장학금 받은 학생 250명 - 본인 전 재산인 113억원을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 동안 한동대에 기부한 고 장응복 장로가 지난 2019년 경북 포항의 한동대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과 팔을 이어 붙여 별 모양을 만들고 있는 모습. 장씨가 기부한 돈으로 장학금을 받은 학생만 250명에 달한다. /한동대

 

1950년 한국전쟁 때 월남해 서울에서 30년간 작은 진료실을 지키며 일했던 의사가 평생 모은 전 재산 113억원을 한동대학교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6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장응복(99)씨 얘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처럼 자신의 생전엔 기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1923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나와 의사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12월 피란길에 올랐다.

그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인 병원인 ‘장의원’을 열고 30년간 일했다. 유족들은 “개원할 때만 해도 한남동은 서울 변두리였는데, 그곳에서 아버지는 1991년 은퇴할 때까지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성실하게 일하셨다”고 전했다.

 

장씨는 의사로 번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해 재산을 100억원 이상으로 불렸지만 늘 검소했다. 자기 소유의 자가용 한 대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옷도 아내인 김영선(93)씨가 손수 뜨개질한 것을 즐겨 입었다.

 

대신 재산은 미래 세대를 돕는 일에 쓰기로 했다. 2015년 35억7000만원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매년 1억~50억원가량을 한동대에 기부했다. 한동대 표어 ‘배워서 남 주자’에 감명받아 “벌어서 남 주자”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장씨가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세 아들은 아버지가 2015년 기부를 시작하기 직전에야 거액의 재산을 모은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113억원 전 재산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장씨는 그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한동대 학생 250여명의 ‘키다리 아저씨’였다. 생전 그는 자기 재산을 남에게 알리거나 과시하지 않았고, 조용히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대학에 기부했다.

 

그가 기부한 돈으로 장학금을 받았던 박하영(27)씨는 “장응복 선생님은 친할아버지이자 정신적 지주였다”며 “도움 받은 것을 남에게 다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고 했다.

 

 

장씨가 서울에 정착한 것은 1963년 용산구 한남동에 ‘장의원’이란 병원을 세우면서였다. 당시 한남동은 고급 주택들이 늘어선 지금과 달리, 도로 옆 논에서 개구리가 튀어 오르던 변두리 동네였다고 한다. 장의원은 한남동에 처음 들어선 개인병원이었다.

 

환자들이 몰려 밤늦게까지 진료를 볼 때가 많았지만 장씨는 늘 자신의 상황을 고맙게 생각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장씨는 스스로를 한남동 주민들의 주치의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진료비를 받지 않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왕진도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성실히 번 돈을 허투루 쓰는 법도 없었다. 장씨의 첫째 아들 장성훈 건국대 충주병원 교수는 “집에서 생일 잔치를 열어본 적이 없고, 거실 바닥에 깔린 카펫과 삼 형제의 옷가지를 어머님께서 손수 뜨개질해 만드셨다. 한번 산 옷은 10년 이상 입는 게 기본이었다”고 했다. 둘째 아들은 교사로 일하다 정년 퇴직했고, 셋째 아들은 해외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장씨는 원래 고향인 황해도에 학교와 교회를 짓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통일은 기약이 없어 보였고 결국 한동대에 기부를 결정했다. ‘배워서 남 주자’는 학교 표어에 감명을 받았고, 학교에 찾아갔을 때 일면식도 없는 장씨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고인과 생전에 가깝게 지낸 강신익 한동대 교수는 “검소하게 살던 분이 어느 날 학교에 매년 1억원씩 기부하겠다고 해 놀랐는데, 며칠 뒤 100억원을 전부 기부하겠다고 하시고 결국 말씀을 지키셨다”고 했다.

 

장씨의 세 아들도 어느 날 갑자기 기부를 하겠다고 한 아버지의 뜻을 선뜻 따랐다고 한다. 큰아들 장 교수는 “2015년 어느 날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김영길 한동대 초대 총장님과 함께 오시더니 종이 한 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 종이에 직접 유산 상속 포기 각서 내용을 적으시며 기부 얘기를 꺼내셨다”고 했다. 그는 “아버님께서 그 큰돈을 갖고 계신 줄 알지도 못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도 내가 가져도 되는 돈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씨의 남모를 선행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이어졌다. 한동대에서 “훌륭한 뜻을 알리고 싶다”고 했지만, 그는 “내가 살아 있을 때는 기부 사실을 밝히지 말아달라”며 사양했다. 강신익 교수가 수차례 설득한 끝에 “사후에는 기부를 알려도 된다”는 허락을 겨우 받아냈고 유족의 동의도 받았다고 한다.

 

최도성 한동대 총장은 “장응복 기부자님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은 앞으로 자기가 또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면서 선행이 대물림된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강우량 기자 입력 2022.03.09 05:00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2/03/09/OIKQQFDHBBHJNDFWSTKDD7YV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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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에는 신앙적 기사가 있습니다.)

 

배워서 남 주세요, 벌어서도 남 주세요

전 재산 113억 한동대에 기부하고 떠난

‘99세 의사장응복 장로가 남긴 소망은

 

 

조모로부터 6대 걸친 신앙 가문

6·25전쟁 때 월남해 의원 개업

궁핍한 시절 무료 진료가 태반

간호사로 도운 부인과 함께

 

장응복 장로와 김영선 권사 부부는 전 재산 113억원을 6년에 걸쳐 한동대에 기부했다. 이들의 기부금으로 장학금을 받은 한동대 학생은 250명이 넘는다.

 

생전의 장 장로와 아내인 김영선 권사가 한동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인터뷰하는 모습. 한동대 제공

 

“배워서 남 주세요. 그리고 벌어서도 남 주세요.”

 

구순이 넘은 할아버지는 자신이 기부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이 말만큼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이 말대로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젊은 시절 배운 의술로 평생 환자들을 돌보고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하고, 100억원 넘는 전 재산을 대학교에 선뜻 내놨다. 한국 기독교 초기 ‘전도부인’이었던 할머니를 시작으로 증손주까지 6대에 걸친 신앙 가문을 둔 그는 자손들에게 “누가 뭐라 해도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달 초 99세 일기로 별세한 장응복 온누리교회 장로 이야기다.

미션스쿨인 한동대에 전 재산을 포함해 113억원을 기부했다는 소식 뒤에는 그와 아내인 김영선(93) 권사의 신앙과 숨은 선행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황해도 출신인 장 장로는 6·25전쟁 때 월남했다. 북한에 있을 때 딴 의사면허증으로 1960년대 초 서울 한남동에서 ‘장 의원’을 열어 30년 넘게 진료했다. 한남동의 첫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쉬는 날 없이 없다시피 했다. 궁핍한 시절이라 무료 진료가 태반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환자들을 돌봤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은 그저 돕는 것이라고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귀가 닳도록 듣고 배운 터였다. 그의 아내 김 권사는 간호사로 그의 옆을 지켰다.

 

장 장로 부부는 지극히 검소했다. 집에 있는 물건들 가운데 10년 넘은 건 새것이라고 할 만큼 아껴가며 살았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은 일찌감치 기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장 장로는 생전에 남긴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남한으로 피란 온 이후) 주위에서 도와주는 분이 많았다. 마치 누가 끈으로 잡아당기듯 도와줬다”고 회고하면서 부모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벌어서 남 줘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배워서 남 주자’를 모토로 설립된 한동대는 그의 신앙적 가치관에 꼭 들어맞는 곳이었다.

 

장 장로 부부는 2015년 100억원 기부를 약정했고 그의 자녀들은 유산상속포기각서를 썼다. 그의 세 아들 가정은 흔쾌히 동의했다. 한평생 부모가 보여준 삶과 신앙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장 장로가 지난 6일 별세한 뒤에는 많은 뒷얘기가 오르내린다. 대부분 숨겨진 그의 또 다른 선행들이다. 생전 장 장로와 가깝게 지냈던 강신익 지앤엠글로벌재단 공동이사장은 16일 “장로님은 교육뿐 아니라 불우 이웃과 탈북민 등 소외계층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을 위해 알려지지 않게 도우신 일들이 무수히 많다”고 귀띔했다. 교회 관계자들과 통화할 때마다 ‘뭐 도와줄 일은 없는지’ ‘필요한 것 있으면 알려 달라’고 먼저 말하는 게 장 장로였다고 한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는 “장 장로님 부부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단순한 영혼의 힘을 가진 분”이라며 “얼마나 많은 걸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걸 나눴는지 삶으로 보여주셨다”고 회고했다. ‘한남동 슈바이처’가 남긴 유산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긴 유산이기도 했다.

 

국민일보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입력 : 2022-03-17 03:01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36357&code=23111111&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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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916-26)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많이 가진 것을 바르게 사용해야 복입니다.

   재물이나 학식이나 건강이나 무엇이든지 가진 것을 낭비하지 말고, 사치하지 말고, 모으기만 하지 말고, 갑질도 하지 말고, 보관만 하지 말고, 조리된 일에 사용하지 말고, 감사하며 겸손히 많이 나누며 선하게 사용해야 복이 됩니다.

 

모든 것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언젠가는 그 씀씀이에 대하여 결산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되게 사용해야 하나님께 칭찬 듣고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는 삶이 됩니다.-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