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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7. 대통령 아들도 전투에 참가하는 나라

행복을 나눕니다 2020. 9. 21. 00:00

 

대통령 아들도 전투에 참가하는 나라

제2차 세계대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의 큰 아들 제임스 루스벨트

 

미군 장성 139명의 아들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그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6·25 영웅 주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전쟁에서 아들을 잃었다,

 

 

대통령의 아들은

안경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고도 근시에

위궤양으로 위를 절반이나 잘랐으며,

심한 평발이라서 군화를 신을수 조차 없는 사람이었지만,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서까지

고된 훈련으로 정평이 나있던 해병대 제2기습대대에서 복무했다.

 

제2기습대대가 마킨제도의 일본군 기지를 기습하는 매우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대대장 칼슨 중령은 루스벨트 소령을 불러

‘만약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귀관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거나 전사하거나 하면

 

일본군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전쟁에 이용할 것이므로 작전에서 제외하겠다‘ 통보한다.

 

루스벨트 소령이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자, 난처해진 칼슨 대대장은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니미츠 제독에게 소령을 만류해줄 것을 요청하고,

대대장과 생각이 같았던 니미츠 제독은 소령을 불러 훈련에는 참가할 수 있지만 작전에는 동행시킬 수 없는 이유를 간곡하게 설명했지만

 

이번에는 소령이 아버지의 ‘빽’을 동원했다.

대통령 루스벨트는 해군참모총장 킹 제독에게

‘내 아들은 제2기습대대의 장교다.

내 아들이 위험한 특공작전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그 작전에 가려하겠는가?‘ 라며

 

아들 루스벨트 소령을 반드시 마킨 제도 특공작전에 참가시킬 것을 지시한다.

그것이 루스벨트 소령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대통령 아버지 혜택을 본 유일한 경우였다.

 

소령은 소신대로 작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네 아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2차 대전에 참전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을 한국전쟁에서 그들 스스로도 잘못된 전쟁이라고 투덜대면서도

 

모두 139명의 미군 장성들의 자제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그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그들 대부분이 평범한 집 자제들과 똑같이 최전선에서 싸웠으며 특별대우를 받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52년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육군 원수의 아들인 아이젠하워 소령과 제3대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 대장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사람은 바로 한국군 전투력 육성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제임스 밴 플리트 8군 사령관이다.

 

밴 플리트 대장의 외아들인

밴 플리트 2세는 야간 폭격기 조종사로 작전 수행 중 행방불명되었고

 

공군은 장군의 아들을 찾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다했지만 끝내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실종 파일럿의 정규 수색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 때 장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외아들의 실종 소식을 듣고도 담담했던 장군은

이제 정규 수색시간은 끝났으니 더 이상의 특별한 수색이나 구조 활동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모든 병사들이 최전선에서 죽음과 싸우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내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해줘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밴 플리트 대장의 전화 용건이었다.

 

외아들을 한국전선에서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군의 한국사랑은 지극했다.

전술 훈련과 체계적인 장교 훈련 프로그램이 미비했던 때문에

한국군이 전선에서 자주 패배를 당하는 이유를 간파하고

 

이후 장교들의 미군 참모학교 유학과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었고 한국육군사관학교의 발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육사 교정에 밴 플리트 장군의 흉상이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중 대장으로 전역 후에도 장군은 전 미국을 돌면서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의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 연설에 나서는 등

한국을 돕기 위해 그 어느 한국전 참전 장군들보다 많은 일을 했다.

 

오늘날 한미우호관계에

공헌이 큰 사람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밴 플리트 상인 이유는

 

외아들을 잃고도

한국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장군의 마음과

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리기 위해서인 것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의 고위층 관료들과 사고방식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목숨이 위태로운 전쟁에서, 그것도 자기 나라가 아닌 타국에서의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용감히 싸워주기를 바라는 것은

진정으로 고위층 지도자들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이러한 점은 우리가 본받고 또 본받아야겠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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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 진실보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SNS에는 [아니면 말고] 식의 거짓말이 너무 많이 올라옵니다. 거짓말을 쉽게 하면 자기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삶이 망가지고, 남도 괴롭히고 죽이는 악한 행동입니다. 거짓말로 남을 공격하고 쾌감을 느낀다면 이는 중병입니다.

 

♥ 삶 속에 거짓말도 문제지만, 하나님과 싸우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 예수님은 독립 운동가였다. 성경은 유대나라 역사다.] 라는 등의 말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거나 성경을 부정하거나 예수님을 구원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전부 거짓말입니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과 싸우겠다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과 싸운다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역사에 하나님과 싸우고 재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실은 세월이 천년만년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시며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고 다시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이런 불변의 진리를 믿는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도 복됩니다. 그러나 부정하는 사람이야말로 거짓말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과 싸우며 복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이박준  (lee7j7@daum.net)

 

 

 

“6·25 영웅 밴플리트 장군 아들,

북한→중국→러시아서 포로 생활 중 사망” 밴플리트 장군 외손자의 증언

 

제임스 밴플리트(오른쪽) 장군과 아들 밴플리트 주니어. 밴플리트 장군의 외손자 조 매크리스천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올리고 "밴플리트 주니어가 아버지(밴플리트 장군)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다"고 적었다. 이 사진은 1952년 3월 한국에서 찍힌 것이라고 매크리스천은 전했다. /조 매크리스천 페이스북

 

6·25 전쟁 당시 미8군과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 북한에 포로로 끌려갔으며, 이후 중국·러시아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밴플리트 장군의 외손자 조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16일(현지 시각) 주(駐)로스앤젤레스 한국 총영사관이 주최한 ‘한국전쟁 역사’ 온라인 세미나에 참석해 “외삼촌 제임스 밴플리트 주니어가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밴플리트 주니어는 6·25전쟁에 공군 중위로 참전, B-26 폭격기 조종 임무를 맡았다. 당시 27세였던 그는 1952년 4월 4일 북한 순천 지역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포격을 맞고 실종됐다. 당시 아들의 실종 소식을 들은 밴플리트 장군은 동요 없이 자신의 임무에 열중했다고 한다. 참모들은 “수색을 확대해 밴플리트 주니어를 찾자”고 건의했지만, 밴플리트 장군은 “내 아들을 찾는 것보다 다른 작전이 더 중요하다”며 수색 작업을 중단시켰다.

 

밴플리트는 이후 부활절을 맞아 실종 군인 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든 부모가 저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밴플리트 장군 부자(父子)의 이 같은 일화들이 전해지면서 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했다는 찬사가 잇따랐다. 우리 국가보훈처는 2014년 밴플리트 부자를 6·25 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이날 세미나에서 이 같은 밴플리트 장군 부자의 생애를 전했고, 실종 2년 뒤 전사 처리됐던 외삼촌 밴플리트 주니어가 사실은 살아남았고 북한에 포로가 됐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밴플리트 주니어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6개월 뒤 중국군에 넘겨졌다. 중국군은 적군 사령관의 아들을 포로로 잡은 것을 축하하고자 베이징에서 밴플리트 주니어의 군 인식표를 공개 전시했다. 밴플리트 주니어는 이후 러시아(옛 소련) 시베리아 지역의 강제 노동 수용소 ‘굴라크’에 수용됐다.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미 육군 정보국 참모차장을 지낸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 같은 정보를 확인했고, 1990년대 초반 옛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NKVD) 관계자가 ‘미국 4성 장군의 아들(밴플리트 주니어를 의미)이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17일 본지 통화에서 “정보를 담당하던 미 육군 장성이었던 나의 아버지가 들려준 외삼촌에 대한 말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중국·러시아는 외삼촌을 포로로 붙잡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며 “외삼촌은 아마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이옥진 기자 입력 2020.09.17 17:42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0/09/17/XC736GGZHZGRDHBXJOXYH5EM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