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야기

3026. 목사 40여명 배출한 교회

행복을 나눕니다 2018. 11. 27. 01:00







목사 40여명 배출한 교회

강화 교동교회119년 된 대들보가 증거

1865년 토마스 선교사 일행 탄 배 좌초해 상륙1899년 교회 건축

 

목사 40여명 배출한 신앙 산실 강화 교동교회119년 된 대들보가 증거기사의 사진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언덕에 위치한 옛 교동교회 모습. 교동교회는 내년에 설립 120주년을 맞는다. 교회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밥을 지어 피란민을 대접했다.

 

강화대교가 보이는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의 한 언덕에는 교동교회의 모체인 옛 교동교회가 있다. 교회는 19506·25전쟁 당시 밥을 지어 피란민을 대접했다. 당시 109(33) 크기의 예배당은 갈 곳 없고 굶주린 500여명의 피란민으로 가득 찼다. 교동교회를 지켜온 여성들은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이들을 배불리 먹였다.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10:1819)는 성경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곽선희 소망교회 원로목사도 1·4후퇴 때 스무 살의 나이로 피란을 와 교동교회에 출석했다. 곽 목사는 교동에 머문 8개월 동안 새벽기도와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교동교회 송밀례 권사가 손녀인 김은자씨를 곽 목사의 처로 주선했다.

 

교동교회가 지닌 나그네 섬김의 역사는 18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품 만호를 지낸 지역유지였던 박동엽 선생은 배가 좌초돼 갈 곳이 없던 토마스 선교사 일행을 대접해 중국으로 귀환활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전해진다. 허가 없이 입국한 외국인을 관가에 고발하지 않으면 참수당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의 자손들은 오늘날 7대에 이르기까지 교동교회 10대 목사인 박형남 목사 등 30여명의 목사를 배출했다.

 

14일 옛 교동교회를 찾았을 때 은행나무 너머로 토마스 선교사 일행이 탄 배가 좌초됐다는 쌍여바위가 내려다보였다. 박 선생의 손자인 박성대 장로는 권신일 목사와 함께 1899년 교동면 읍내리에 초대 교동교회를 세운다. 박 장로는 GH 존스(조원시) 선교사가 인천 내리교회에 개설한 한국감리회 신학회를 1895년 수료했다.

 

옛 교동교회 건물은 1933년 첫 교동교회의 대들보를 가져와 재건축한 것이다. 교회 안에는 당시의 대들보와 100여년 된 오르간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교회 종을 수탈해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풍랑을 만나 다시 돌려놓은 일화도 있다. 그 종이 지금도 종탑을 지키고 있다.

 

교동교회는 교파를 초월해 많은 기독인을 길러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을 창안한 송암 박두성과 총신대 신학대학원 총동창회장인 박광재 광명 영광교회 목사가 박 선생의 후손이다. 기독교대한감리교회(기감) 고 정등운 감독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87대 총회장을 지낸 고 한명수 목사 등은 교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옛 교동교회는 건물만 남아있다. 기감 유지재단에 소속된 교동교회는 옛 교동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옛 교동교회 부지는 일반인이 소유한 상태로 오랜 세월 돌보는 이가 없어 훼손되기 직전이었다. 박 선생의 후손들과 곽 목사 등이 힘을 모아 2016년 교회 건물부터 수리했다. 부지 매입도 추진하고 있다.

 


박광재 목사는 내년 교회 설립 120주년을 맞아 기념관과 선교관, 선교사와 은퇴한 교역자가 쉴 수 있는 안식관 등을 만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박 목사는 내년 40년 목회 사역을 마치고 은퇴한 뒤 옛 교동교회를 섬기다 훗날 기감 유지재단으로 헌납할 계획을 갖고 기도 중이라며 “40여명의 목사를 배출하고 가난한 사람을 나그네처럼 섬긴 옛 선조들의 신앙 유산을 전수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강화=·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입력 : 2018-11-15 00:01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33769&code=23111113&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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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2)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 지금은 당당하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당국이 알면, 그 사람은 직장에서나 사업이나 모든 면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숨어서 예수님을 믿으며 몰래 예수님을 만나려고 애쓴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 데 아무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는 것을 숨기려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뭔가 부끄럽거나 불편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처신입니다. 부끄러움이 있으면 고쳐야 하고 불편함이 있으면 믿음으로 감내하면서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 때문에 불이익을 당 할까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용기 있게 처신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우리의 삶을 책임지십니다.-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