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會者 충전

2664. 살아 있는 설교를 하기 위하여

행복을 나눕니다 2017. 7. 16. 15:14





  





살아있는 설교를 하기 위하여

 

설교에는 산 설교(Living Sermon)

죽은 설교(Dead Sermon)가 있다.



일 시 : 2017. 7. 18. 화 장소 : 수원 온누리교회 (정영희 목사)

      

자료편집자 : 목사 이박준 이메일 lee7j7@dremwiz.com

본 자료는 참고용으로 제공 되는 것이므로 취사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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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야 할 설교자 유형





*  도표 자료는 생활커뮤니케이션이 발표한 자료입니다.
  아래 자료와는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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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설교와 죽은 설교


산 설교라 함은 (Living Sermon)

 

1, 설교를 듣는 사람 속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설교는 산 설교이다.

생명의 역사는 변화의 역사이다. 더러움에서 일어나 성결함을 향해 가는 변화이다.

속된 것을 버리고 거룩한 것을 향해 일어서는 변화이다.

 

2, 깨달음을 일으키는 설교는 산 설교이다.

이전에는 모르던 것을 알게 하는 설교이다. 듣는 사람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보게 하 며 자신이 다른 길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설교이다.

 

3, 감사를 유발하는 설교가 산 설교이다.

나에게 내려진 그 크신 은혜에 감동하여 누가 강요해서가 아닌 자발적인 감사를 표 하게 되는 설교는 산 설교이다.

 

4, 산 설교는 생명에서 나온다.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설교자가 임의적으로 만든 설교가 아니라 생명에서 나온 설교를 하려면 설교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자 안에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일된 상태에서 산 설교는 생산된다.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합일의 경지에 도달하는가?

 

바울(St Paul)의 경우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바울은 하나님을 열심이 섬기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그로 하여금 예수를 핍박하는 선봉장이 되게 만들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변하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서 하나님을 품은 사람이 된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이제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표현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가 되었다. 생명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과 합일됨으로 그는 산 설교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설교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 힉위를 받았어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합일을 이루지 못하였다면 그는 결코 산 설교를 할 수 없다. 백과사전 식으로 많은 지식을 그의 설교에 나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요즘 같이 쉽게 자료를 구하기 쉬운 때가 또 있었을까? 신문 칼럼을 쓰는 의사(MD)에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되었는가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솔직했다.

 

산 설교(Living Sermon)를 하려면.

 

1, 무릎을 꿇어라.

무릎 꿇고 있는 시간을 늘여라. 주 성령님께 사로잡힐 때까지 기다리라. 이것은 산 설교를 하기 위한 기초작업(Foundation)이다.

 

2, 성경을 읽어라.

성경 속에 파묻혀야 한다. 이 말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은 연구할 대상의 책이 아니다. 성경연구가 일으키는 피해는 막심하다. 성경을 매일의 양식으로 끊이지 않고 읽어야 한다. 설교준비를 하기 위해서 펴는 성경책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것이 삶이 되어야 한다.

 

3, 성경의 난해한 구절에 잡히지 말라.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을 만나면 그것을 해석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안방 따스한 아랫목 구석의 큰 다라이 위에 시루를 얹어 놓고 콩나물을 키우던 것을 기억한다. 어머니는 매일 다라이에 담겨 있는 물을 퍼서 시루에 부으셨다.

물은 시루에 들어가자마자 아래로 흘려 내렸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콩나물은 먹기에 좋을 만큼 자란 것을 보았다. 어느 구절에 잡히지 않고 매일 계속하여 성경을 읽을 때 물은 빠져도 자라났던 콩나물을 기억하라. 매일 읽는 성경이 시루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같아도 내 안에서 신앙은 자란다는 확신을 가져라.

 

4, 말씀(Rhema)을 잡아라.

이렇게 매일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다 보면 성령께서 전광석화와 같이 내 안을 환히 비치게 하는 말씀(Rhema)이 있을 것이다. 그 말씀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원어 사전을 펴라. 성경 원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연구를 위한 작없이 아니다. 확인을 위한 작업이다. 잘못된 이해와 해석으로 강단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5, 삶의 현장을 살펴라.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을 모르고서는 생명력 있는 산 설교가 효과를 발할 수 없다. 아무리 산 설교를 준비하여 강단에 섰다 할지라도 들을 귀가 없으면 그 설교는 무용지물이다.

 

6, 설교를 듣는 이들의 삶의 수준을 생각하라 (귀를 여는 것도 중요하다.)

어린 젖먹이에게 헤겔의 철학을 이야기 한다면 무슨소용이 있겠는가? 들을 귀를 열기 위해서는 설교 들을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살펴야 한다. 그들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찾아가라. 그리고 말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들어라. 들어주는 것은 좋은 치유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7, 삶과 설교의 접촉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생활 설교)

그것이 어떤 이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설교를 듣는 어떤 이의 감격의 연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작품의 한 줄거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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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설교란?

 

설교를 들은 사람이 그 설교의 제목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설교는 죽은 설교이다.

산 설교는 기억에 살아남지만 죽은 설교는 쉽게 잊혀 진다. 설교자가 산 설교를 하지 못하면 그는 죽은 설교를 할 수 밖에 없다. 죽은 설교는 시간을 좀먹는 벌래와 같다. 설교자가 죽은 설교를 피하는 방법이 있을까?


1, 상자(Box)에 갇히지 말라.

자신은 물론 사람들을 만들어진 어떤 박스에 쳐 박아 넣으려 하지 말라. 소위 교회력(Church Calendar)이란 것에 의해 만들어진 성경 분문(Text)을 가감 없이 받아 들고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가 생각보다 많다.

역사가 오랜 교단(Main Line Denomination)의 교회일수록 더하다.

 

교회력에 따라서 하는 설교는 약은꾀를 부리는 목회자들이 선호한다. 주어진 본문(Text)이 있으니 말씀(Rhema)를 얻기 위한 노력을 안해도 된다는 편리함을 그들은 알고 있다. 더러는 그 본문(Text)이 어쩌다가 말씀(Rhema)이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비율 정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 설교(Sermon)는 강의(Lecture)가 아니다.

설교는 설교이지 강의가 아니란 사실을 잊지 말라. 강의는 같은 레벨의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대학 강의는 대학생들을 위한 것이고 중학교 강의는 중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일반 교회의 설교는 모든 레벨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곳에서 행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당신이 강의하듯 하는 설교를 고집한다면 어느 레벨의 사람에 맞추어 할 것인가? 모든 레벨의 사람에 맟주어 설교하기는 불가능하다. 신학교에서 신학생을 위해 한 교수들의 강의를 교회 현장에서 그대로 사용하지 말라. 교인들이 모두 도망간다. 그리고 예배당은 텅텅 비고 마침내 교회 문을 닫을 날이 올 것이다.

 

3, 당신의 말로 시간을 때우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에 있어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신의 이야기나 다른 이야기를 잠간 이용할 수 있겠지만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경 본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말아야 한다. 설교시간은 당신의 의견발표(Opinion Presentation) 시간이 아니다. 기도하면서 준비한 말씀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그 주일은 설교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4, 은혜로운 타인의 설교를 금기시 하지 말라.

기도하면서 말씀을 얻으려고 노력했는데도 잡히는 것이 없다면 은혜로운 타인의 설교를 효과적으로 활용해도 좋다. 설교자의 목표는 교인들로 하여금 말씀을 통해 복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인들이 은혜와 복을 얻을 수 있다면 어째서 주저하는가? 자신의 설교도 그렇게 이용되도록 허용하라. 설교자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지 자신의 영역확보에 있지 않다.


5,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탤런트를 아끼지 말라.

찬양의 텔런트는 효과적인 설교를 위한 훌륭한 자산이다. 언변이 좋은 사람이 있다. 그것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텔런트이다.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감동을 받게 하는 것은 은사중의 은사이다. 사람을 끌어 모이게 하는 피플스킬(People Skills: personal effectiveness, interaction effectiveness, and intercession skills. from Wikipedia Encyclopedia)은 대단한 축복이다. 설교를 함에 이것을 아끼지 말고 활용하라.


6,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도 자신을 과신하는 것은 죽은 설교를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이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은 자신을 차에 맡긴 사람이다. 자신이 차를 끌거나 밀고 가려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인도하시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의 양을 채워야 한다. 매사에 기도가 없이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죽은 설교는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문을 넓게 열어 놓는 마스터 키(Master Key).

김무영 | 24eden@gmail.com 2017-02-02 21:27:20

* (위의 자료는 설교신문에 게재된 자료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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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덧붙이는 말.

 

설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을, 설교자가 대신 선포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강단 아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청지기이지만.,

강단에서 설교하는 시간은, 전적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만 선포하는 대리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감춘 인 비밀만 선포해야 합니다..(고전 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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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학문적 연구 발표도 아니며.

자기 신앙 간증의 시간도 아니며, 특정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말씀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성경 외적인 이런저런 예로, 특정인의 좌우명이나 삶, 언론에 나도는 사건 사고들이나 미담을 소개할 수는 있지만, 어디 까지나 보조 자료로 조금 사용할 뿐, 그것을 성경처럼 강조해서도 안 되며, 강조하기 위하여 지나친 언행이나, 웃기기 위한 쌍소리나 거북한 말은 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선포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듣는 사람들에게 세상 적으로 웃기고 재미있는 말과 행동으로 귀나 눈을 즐겁게 하려고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 대신,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 받은 말씀과 감동으로, 심령으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회개도 하고 위로도 받고 힘과 용기를 얻으며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 설교자가 먼저 말씀 붙들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산고(産苦)의 과정 없이, 쉽게 설교를 한다는 것은 성령역사를 막는 죄가 될 수 있으므로, 설교를 정성을 다하여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강단에 서야 합니다. 아무리 설교 내용이 학문적으로 완벽해도, 성령님이 일하시도록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씀선포가 아니라 성의 없는 지식 전달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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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도 공부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건전한 교단 신학교에서 제대로 신학 공부를 했다면, 굳이 신학적인 부분이나 난해한 성경구절을 붙들고 시간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만 가지고도, 목회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혀 지장이 없으므로, 때를 따라 합당하게 은혜 주시는 말씀를 받기 위하여 묵상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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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성패는.

듣는 사람들의 눈이나 귀를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게 했느냐가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은혜의 말씀을, 얼마나 바르고 정확하게 나타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칭찬이나 인기나 호감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설교를 하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바른 설교를 했다면,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못 받고는 전적 그분들의 마음과 자세에 달렸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책임입니다.-편집 목사 이박준

 

# 모든 자료는 참고용이므로 취사선택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