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會者 충전

2507. 牧會者 심령부흥과 自己管理

행복을 나눕니다 2016. 12. 21. 05:13







牧會者 심령부흥과 自己管理


 오늘 묶은 자료 목록

   

1. 요약 설교 - 너는 행복자로다 목사 이박준

                      주님께 인정 받는 목화자(성도)- 목사 이박준

2. ● ●교회, 담임목사 청빙 조건   

3. ◆ ◆교회, 담임목사 청빙 조건    

4. 목회자의 자기관리 점검표 (기도하는 목회자 모임에서  

5. 목회자의 자격 10가지 마틴 루터   

6. 목사도 천국  갑시다  

7. 목회는 이생의 자랑이 될 수 없다  

8. 교회 돌파구는 전도뿐이다  

9. 문 닫는 교회 공통점 20가지   

10. 목회자여, 강단에서 복음만 말하라. (조향록 목사 한신대 학장)  

11.설교 한 번에 한 가지 진리만 넣어라. (주승중  목사     장신대 교수)  


본 자료는 참고용으로 제공되는 것이므로, 어떤 편견이나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취사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  알립니다. - 휴대폰으로 보시는 분은, 컴퓨터 인터넷, 다음 검색창에서.

[심령부흥과 목회자 자기관리]로 검색하시면, 더 많은 자료를 접 할 수 있습니다.-(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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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설교 (1)

 

너는 행복자로다.

33:29

 

오늘 설교의 제목은, 본문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개정 성경에 [행복]이라는 단어는 11회 등장하는데, 9회는 부정적으로 사용되었고, 2회는 긍정적으로 사용되는데, 신명기에서 모세가 두 번 말합니다.

 

모세는 그의 설교집인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서, 각 지파를 축복한 후, [이스라엘아! 너희는 행복자로다]라는 말을 하되, 아주 감격한 말로 이야기한 것입니다.(원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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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행복한 자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세는.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각 지파를 축복했습니다. 백성들과 이별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31:1- / 32;48-52)

 

모세는 지난 40년 이스라엘 여정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일을 생각할 때 너무 감격했습니다. 또 그렇게 위대하시고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을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을 섬김 수 있고 보호받고 인도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과분한 은혜요, 감사하고 감격할 뿐이었습니다.- 육으로 보면 고난도 있었으나, 고난보다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영적 행복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육신적 행복은 때를 따라 변하지만, 하나님으로 인하여 영으로 얻는 행복은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백성은 행복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출애굽과 광야 40년 과정에서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고.

기적과 능력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문제가 많은, 애물단지 같은 저들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어 저들을 목적지 가나안 입구까지 도착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무한 감사하고 감격해야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훈련을 40년 동안 받았건만, 아직도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오래 다니고 능력 체험했다고, 신앙이 다 바로 됐다거나, 믿음이 좋다고 볼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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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이면 근본적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 적 조건이나 환경이 좋아서, 행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죄 용서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천국 갈 자격을 얻었으므로. 하나님과 화평하고, 복된 삶을 살게 된 것을, 깊이 감사하고 감격하며.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야 정상적 신앙입니다.

 

- 세상 적 가치 충족으로 행복한 것은 불신자도 할 수 있지만, 성도의 행복 가치는 다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거듭나므로 얻는 영적 행복입니다.

특별히 주님께 쓰임 받는 일군이거나 목회자라면 더 행복함을 느껴야 합니다.

 

#, [하나님으로 인하여]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면서, 교회생활하거나, 목회를 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어 불행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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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이 삶에서 만족함을 느끼는 상태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언제나 변하므로 온전치도 못하고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성도의 행복은, 영으로 느끼고 만족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므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왜 행복을 못 느끼는 것일까?


1,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행복을 위하여 지켜야 할 말씀이 주어졌습니다.(10:12-13)

12절에는, 그 내용이 있고, 13절에서는 네 행복을 위하여 지키라고 합니다.

12절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모든 도를 행하,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일]입니다.

 

- 그런데 백성들은 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고, 기억도 하지 않았습니다.

-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주어지는 것인데, 불순종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졌으니, 행복을 못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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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순종하므로, 심령이 잘 못 됐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온갖 이적을 체험했습니다. 40년을 하나님 은혜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바로 되지 못하고, 세상 적이고 완악한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 오늘 이 시대도, 은혜받았고, 능력을 나타내기도 하고 체험도 했을 수 있고, 말씀을 많이 외우고 배웠어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겸손하게 회개하고, 심령부흥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니지만 행복을 못 느낄 뿐 아니라, 불평과 비판으로 가득한 사람이 있습니다.

 

#, 저들의 심령이 변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출애굽기 32장에서 엿보게 됩니다.

    출애굽 32장은 이스라엘의 여정이 끝날 때의 장면이므로 그들의 최종 마음입니다.

* 그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불평했고 원망했고, 끝내는 다른 신까지 요구합니다.

이는 엄청난 불신이요 배신이며, 하나님을 떠난 죽은 상태입니다.- 32:1-

 

* 그들은 [악한 자]라고, 아론이 증언합니다.- 32:22

 

* 그들은 [방자하다], 모세가 지적했습니다.- 32:25

(방자라는 말은,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 그들은 부패했고, 목이 곧은 자라고, 하나님께서 단정했습니다.- 32:7.9, 33:5

(하나님을 떠나 타락했고, 고집이 센 자라는 말입니다.)

 

# 저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감사하지 않았으며, 교만한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언제나 불평했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였습니다. 마지못해 순종하는 척은 했지만, 반복되는 불순종이었습니다.

 

언제나 모세가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엎드렸고, [내 생명을 거두소서]하며, 회개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 짐을 지고 고난당하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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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성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지도자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로 일했으므로 하나님과 직접 교통 하며, 중보자로서 존재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아론을 비롯한 지도자(목회자)들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라는 그들 자체가 심령이 바르지 못하였으니, 백성들을 바르게 지도했을 리가 없습니다.

 

# 그 증거 역시 출애굽기 3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아론은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라고 할 때, 강력히 반대하지 않았고 응했습니다.(32:2- )

- 목숨 걸고 막았어야 했습니다. 순교할 각오로 막았어야 합니다.

 

* 금송아지 만들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아론이 선언합니다.(32:5-)

- 지도자의 심령이 죽었고, 너무 뻔뻔스럽고, 사람 중심이고, 인기영합입니다.

 

* 아론은 변명과 거짓말로 자기변호만 합니다.(32:24-)

- 하나님 앞에서는 감사와 회개만 필요합니다. 변명과 거짓은 더 큰 죄를 범하는 결 과 가 됩니다. 심령이 마비됐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심령은 감사와 회개만 합니다.

 

* 백성들이 방자함(제멋대로 행동), 아론이 방자했기 때문이라고, 모세가 질타했습니다.

(32:25)- 성도들은 지도자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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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못에 대한 책임은 각자가 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들을 지도한 지도자는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예수님 이름으로 성도들을 영으로 바로 가르쳐야 하는 엄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지도자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회개하고, 심령이 살아있고.

신앙관이 분명하여, 순교를 각오하고 일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면,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의 위협에 굴복하거나, 잘 못 된 요소를 방관하거나 묵인하거나, 인간적 인기에 영합하면서, 자신의 안일에 집착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 뜻을 따라 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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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은 성경을 가르치기는 열심히 하지만, 순종(행함)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죄를 죄라 지적을 하지 않으므로 회개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갈망하지 않고 자기가 세워놓은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만 협박성 요구를 강하게 합니다. 너무 세속화됐고, 성령에 감동된 말씀보다는, 인간적 수단과 방법이 난무하고, 사람중심이고, 인기 위주의 이벤트로 사람을 끌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는 선용해야 하지만, 시대에 끌려 다니며 진리가 훼손당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영으로 일해야 합니다.


- 지식이나 학문으로 말씀을 논하기를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 사람이 좋다 하는 잡다한 말들을 섞어 아름답게(?) 꾸미려 하는 시대입니다.(고전 2;1-2)

#,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행함이 따르는 믿음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갈망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감 없이 믿고 묵상하며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이 닥쳐도, 생명의 위협이 있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10)

 

- 오직 예수님만 전하고, 영광을 하나님께만 올려야 합니다. 자신을 점검하고 관리하며,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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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의 행복은 더 커야 합니다.- 목회 환경을 초월해야 합니다.

 

부족한 나를 택하여. 주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사신, 주님의 양 무리를 돌보는 목회자로 써 주시니, 더할 나위 없는 영광으로 알아야 합니다. 결코 자기가 잘나서도 아니며 은혜로 부름 받은 것이므로, 환경을 탓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죽기 살기로 충성해야 합니다.

 

- 하나님을 알되 지식으로나 학문으로만 알고 목회하면, 실력 있는 사람으로 비칠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도 못하며 자신도 죽고 성도들의 심령도 죽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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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느껴도, 수고와 고난은 따릅니다.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 말씀이 믿어지고 붙들면, 기쁜 마음으로 담대하게 신앙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28:19-20)

 

#, 주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 위하여 고난당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하시며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19:30)- 하물며 우리야,,,,,

 

#, 바울은, 주님의 발자취를 잘 따르며, 행복한 목회자로 순교했습니다.

그는 주님 만난 후, 출생 때부터 주어진 세상 적 영광을 분토와 같이 여기고 버렸으며.

고난을 당하면서도 행복하게 충성하다 순교한 제자입니다.

 

바울은 어쩌서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는 주님만 생각했고, 십자가 앞에서 자기는 날마다 죽었고,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어 일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일한다고 했고, 죽도록 충성하고 장차 받을 면류관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를 강조하며 살자고 가르쳤습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없고 순교할 수도 없습니다.

 

*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 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0)

  

* (딤후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 주님의 참 제자들은 하나같이 모든 고난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며,

천국 상급을 바라며, 행복한 길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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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나는 행복한가? - 세상 적 가치 때문인가? 하나님으로 인함인가?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내 가슴에 벅찬 감격으로 느껴지는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고, 바른 복음을 가졌는가?

주님께 쓰임 받으면서 당하는 고난을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

성령 충만을 갈망하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쁘게 순교할 각오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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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며 믿고 행복 합시다.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고,

나를 자녀 삼으시고 큰 능력으로 인도하시며, 함께 계시고.

어렵고 힘들 때마다 어루만지시고 격려하시며, 때를 따라 필요를 채워주시고.

 

나에게 일 맡겨 주시고, 면류관을 준비하시고 기다리시는 주님을 때마다 그려봅시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영으로 믿어진다면,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도자의 심령이 먼저 부흥하고 행복하면 교인들도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목회자가, 강단에서나 삶으로 행복을 전하고 나타내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기뻐하시며, 성도들도 행복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행복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기를 축복합니다. ()

                               - (설교, 작은 은퇴 목사 이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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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교 (2


 주님께 인정받는 목회자(성도) -  자기관리 잘 한 사람

 

아무리 큰일을 했어도 주님이 인정하지 않으면 헛수고,

목회자의 성경연구와 성령체험은 당연

 

[엄중한 자기점검과 관리]도 당연한데 잘 하지 않아 자기는 괜찮은 줄로 착각

문제의 사람 대부분은 자기관리 부족,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자세를 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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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2531~46), 마지막 주님 심판 때의 모습 일부입니다.

그 때 모든 사람은 두 그룹으로 나눠집니다. (=오른편, 염소=왼편)

 

두 그룹 모두 각각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34~43) -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저들도 성경을 알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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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한 그룹은 칭찬 듣고 상을 받았습니다.(34) - 부럽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한 그룹은, 일을 하긴 한 모양입니다.(44), 주님께서는 일하지 않았다 하시고(42~43) 오히려 책망과 저주 받을 자들이라 하십니다. (41, 46) - 일 한 것을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헛수고입니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 (7:21-23)에는 교회 지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 열심히 주님을 부르짖은 것 같고, 선지자 노릇했고,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도 행하며 일 많이 했는데, 주님은 그들을 인정 하지 않으시고,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며 책망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 교회 지도자들도 인정 못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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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컨대.

 

* 마태복음 25장에서 받은 그룹은, 일은 하긴 했지만 - 표시 나지 않을 만큼 미미했거나, 그런 삶이 일상이거나, 자랑하지 않는 신앙이거나, 생색내지 않는 성격이거나, 아니면 겸손하여 당연히 할 일 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 좋은 현상이기도 합니다.

    

* 반대로 책망 받은 그룹의 사람들은, 자기들은 일 했다고 하지만 주님은 일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 짐작컨대 - 주님과 상관없는 마음과 자세로 기분이나 재미로 일했거나, 사람들에게 보이고 인정받고 칭찬 듣기 위해 했거나, 자기 욕망 따라 마음대로 했거나,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가 가로챘거나, 아니면 그만한 대가(代價)를 세상에서 이미 받았거나 하는 등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 위험한 일이며 조심할 일입니다.

 

* 그리고 (7:23)의 교회 지도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불법]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 말씀을 잘 가르치며 설교도 잘 하지만 지식으로만 전할 뿐, 그 자신은 믿음과 바른 행함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 이 시대에도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그럴 듯하게 설교하고 능력 행하는 것 같고 실력 있어 보여도, 주님과는 상관없이,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술수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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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찌해야 주님께 인정받을까요? - 바울의 고백을 참고합시다.

 

바울은 주님 만난 후 충성스럽게 일하다가 순교까지 한 멋진 제자입니다. 그가 보낸 서신서에서 그의 신앙과 목회중심을 알 수 있습니다.

 

*. 나는 주님의 사람이다. - 그러므로 주님만을 위하여 일한다.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나는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아야 한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나는 날마다 죽으며 산다. - 그러면 주님이 일하신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고전15:31) 나는 날마다 죽노라

 

*. 나는 천국 상급을 소망한다. - 세상적 가치의 부귀영화는 배설물로 여긴다.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나는 이렇게 산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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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받고 싶은 일군 바울을 보며 자기를 점검 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누구의 사람이냐? 나는 누구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느냐? 나는 날마다 죽느냐? 나는 무엇을 소망하느냐? 나는 어떻게 사느냐?

 

자기 점검은, 말씀을 묵상하며 하는 것이 최상이지만, 본 자료에 여러 쪽 첨부된 설문형 [자기점검과 관리] 표를 이용하는 것도 상당한 효과를 얻습니다. 최소한의 자기관리만 잘 해도 후회 없는 목회자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직분자 세미나에서 사용한 자료를 수정·보완하여 제공하였으므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 주님 인정하시는 삶과 일을 하면서 천국상급을 소망함으로 모두 행복 합시다.

 

                                                  작은 은퇴 목사 이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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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성도와 목회자가,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1, 목사가 된 것은 최고의 행복이지만 사단의 도전도 만만찮습니다.

 

괜찮은 사람에게 발탁되어 세상적인 일을 돕는 것도 출세라 하고 좋아하는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부름 받고 목회자가 된 것은 엄청난 출세요 영광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사단의 표적이 되어 유혹과 시험이 더 극렬하게 온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를 극복하고 온전한 목회자의 길을 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나 혼자는 못 갈지라도, 이기게 하시고 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사단을 짓밟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억울한 말을 많이 듣습니다. 분통도 터지고, 당황스럽고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목사가 아니었다면 당하지도 듣지도 않을 일과 말들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일꾼이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라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 기쁨으로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목회가 평안하고 대접받고 풍족하고 여유롭고 세상에서 상 받고 칭찬 듣는 일은, 복을 받아서 그렇다고 말 할 수도 있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험하므로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므로 교만할 수 있고, 세상 재미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혹시 천국에서 받을 상을 세상에서 미리 받는 것인지도 모르니, 너무 좋아하거나 즐기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연약한 사람이므로 고난 없는 평탄한 목회를 바랄 수 있지만, 그것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좋은 일꾼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많은 고난을 당하며 충성하다가 순교도 했습디다. 그러므로 진정 주님을 따르는 고난이라면 영광의 가시밭길로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묵묵히 갈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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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목회는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는 [꿩 잡는 것이 매라며, 교회만 성장할 수 있다면 수단 방법 가릴 것 없다.]고 합디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목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할 때 결과가 아름답고, 교만하지 않으며, 결과에 부끄러움이나 후회가 없습니다.

 

최근 다양한 방법이 목회 현장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의 호기심을 끌거나 편의 위주로 사람을 즐겁게 하면서 전도하는 방법들입니다.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좋아하는 방법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혹시 미련해 보인다 해도, 주님이 인정하시고 함께 하실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목회자의 본분을 지키며 일해야 합니다. 목회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말씀을 바로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성령의 감동된 말씀으로 심령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매개체로 활용해볼 수는 있지만, 기도하면서 조심스럽게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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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회가 힘들다고 편법을 쓰거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복음을 가지고 목회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상처 받고, 외롭고, 천대 받고, 헐벗거나 굶주리며, 가족들에게 면목도 없고, 심신이 지쳐 눈물 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인간적으로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적 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울고 싶으면 주님 앞에서 밤새도록 실컷 울어도 됩니다. 주님 뜻이면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를 세우신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가장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때를 따라 필요를 채워주시고 위로와 격려와 힘을 공급하십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절박하고 답답한 형편이나 환경만 보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의 크기와 무게보다, 나를 도우시는 주님의 능력이 훨씬 더 큽니다.” 못 자국 난 손바닥 보이시며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오늘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 붙잡고 힘을 내야 주님이 기뻐하시고 자신도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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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행복한 목회자는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조금 잘 되는 것 같으면, 목회 규모를 자랑할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 규모 때문에 위축될 수도 있겠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은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진실하게 충성했느냐]만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은 인간적으로 모든 것을 갖춘 실력자였지만 떠돌아다니며 일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모든 면에서 바울보다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예루살렘에서 안정적으로 일했던 것을 봅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더 높이거나 낮추지 않습니다.

 

오늘의 목회자도 자기 현실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불평하거나 소극적으로 마지못해 임할 것이 아니라, 규모와 환경에 상관없이 주어진 여건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주님은 큰 목회 작은 목회, 사회적 신분이나 총회나 노회 자리를 가지고 구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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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행복한 목회자는 전도합니다. 전도 없는 교회는 비정상입니다.

 

수평이동 교인으로 벼락치기 성장을 꿈꾸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좋은 생각은 아닙니다. 저절로 찾아오는 교인들이야 잘 맞아야 하지만, 의도적으로 다른 교회 교인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는 행위는 잘못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방대한 조직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불신자를 전도할 프로그램이 없는 교회는 문제가 많다고 봐야 합니다.

 

신도시에서도 누군가는 목회를 해야 하지만, 그곳이 꼭 내가 있어야 할 곳인지는 주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점찍어 두고 주님께 이루어 달라고 떼를 쓰면, 순서가 틀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하신 곳은 사람 많고, 유능한 인재 발굴이 쉬운 예루살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지방에서 제자 찾으시고 복음 전하시다가, 마지막에 예루살렘으로 가셨고 잘못된 교회를 책망하시며 정결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주어진 목양지가 내가 있을 곳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어디에서라도 주님의 명령 따라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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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행복한 목사는 자기 점검과 관리와 회개와 갱신을 통하여 날마다 죽습니다.

 

상당수의 목사는 자신은 부족이 없는 꽤 괜찮은 왕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지속되면 자기 함정에 빠질 수 있고, 그러면 사단은 좋아하고, 목사는 오해를 받게 되어 세속의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슬퍼하시고 양들은 영적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며, 교회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기 묵상의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지면서, 자기를 진단하고 회개하며 갱신을 해야 합니다. 악하고 변화무쌍한 시대를 지혜롭게 대처하고, 다양하게 밀려오는 세속화 홍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고, 이 시대에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진실한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라도 자기 점검과 회개와 갱신은 꼭 필요합니다.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선 누구나 해볼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목사가 될 때, 주님께 진실하게 고백하며 서원했던 내용을 돌이켜보는 것입니다. 남녀가 결혼할 때 가졌던 초심을 유지하면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행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도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심 정신이 지금도 살아 실천되는지, 변질됐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초심이 발전적 변화를 가져왔다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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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행복한 목회 프로그램은 성령으로 심령부흥을 일으킵니다.

 

교회에 필요한 프로그램은 지적인 교육을 하면서도, 심령부흥을 위한 내용이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70년대 중반까지는, 그래도 [심령 대부흥회]라는 명칭으로 집회하면서 [사경회]를 통하여 성경을 잘 배워. 성령의 일하게 하심을 따라 사람을 변화시켰고, 인재를 양성하여 한국 개화와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하면서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축복설교 영향과, 정부의 [잘 살아보세]라는 새마을 운동에 편승하여 [축복 대성회]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한국 교회 강단은 세상적인 가치의 축복만 강조하게 되면서, 교회는 급격히 세속화되었습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기도 꺼리며, 죄의 결과를 말하거나 회개와 지옥과 천국이라는 말 자체를 잘 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죄에 대하여 감각이 둔해지고, 사단의 지배를 받는 극단적인 범죄가 끊이지 않고, 교회 직분자들도 범죄자가 되고, 심지어 일부 목회자들 중에도 심심찮게 쇠고랑을 차는 한심한 시대가 됐습니다.

 

이제는 뜻있는 사명자들이 심령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시대가 너무 악한 것을 보면 마지막 때가 임박하였음을 더 실감합니다. 먼저 목회자들과 한국교회가 세속화의 수렁에서 빠져 나와 [심령 대 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성경공부나 지식 공급은 인터넷이나 알파고 같은 각종 미디어를 통하여 어디에서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부흥은 기계가 절대로 하지 못하므로, 목회자들이 직접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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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행복한 목회자는 문명의 도구를 복음 전하는데 최대한 활용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SNS와 인터넷에 파묻혀 사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한 건 이상, 부정적이고 비아냥거리는 정치 댓글이나 신변 잡다한 글과 사진을 올리며 좋아하는 것입니다. 목회에 지장이 될 것이라며 절제를 권했습니다. 그러자 불쾌해하는 말투로, [목사는 선지자의 사명으로 당연히 정치 비판을 해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이론적 근거도 없는 비판과 비아냥거리기만 하면서도 참으로 당당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오늘의 목회자가 구약의 선지자와 같은 자리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글들은 목사가 아니라도 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목사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는 목사 냄새를 풍기는 글을 올려야 합니다. 성령에 감동된복음적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문명의 도구를 활용해야 합니다. 지나친 인터넷 검색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설교 한 편 찾아 인터넷을 헤매는 일도 삼가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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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행복한 목회자의 설교는 앵무새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재생산 합니다.

 

목회의 큰 비중은 설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책을 참고하여 연구해야 하지만, 학문적 짜집기 설교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쉽고 평의하면서도 성령의 감동이 나타나야 합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인터넷에 들어가면 설교가 차고 넘쳐 설교 준비가 너무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 설교도 듣고 보고 은혜 받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 재생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소가 풀을 먹지만 우유로 재생산 하듯이.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한 주간에 설교하는 횟수가 세계에서 제일 많다고 하니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설교를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앵무새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작성한 설교가 학문적으로 아무리 완벽할지라도, 성령의 감동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가슴에 품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역사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이를 위해 최소한 예배시작 30분 전에는 강단에 엎드려 기도하며 성령의 역사를 호소하며 말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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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행복한 목회자의 귀는 항상 열려 있고 민감합니다.

 

사람이 귀가 얇으면 문제가 많다고들 말합니다. 특히 목사는 사람의 말에 귀가 얇으면 더욱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목사의 영적인 귀는 늘 열려 있고, 민감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정도로 나약한 자였지만, 하찮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주님 말씀이 생각나서 울며 회개하고 심령이 변화되어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충성하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의 목회자도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신령한 영적귀와 겸손이 필요합니다. 주변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황은 물론이고, 드라마나 신문,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나 울음소리를 듣고도, 주님의 말씀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이나, 자료들이 별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닭 울음소리 역할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인정받는 착하고 충성된 목회자가 되도록 영적인 귀를 열어 두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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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행복한 목회자는 주님의 명령과 사명과 박수와 함성을 절대 잊지 않습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 (28:19)과 전도명령 (16:15)과 증인의 사명 (1:8). 그리고 구원 받는 길은 오직 예수님 (14:6, 4:12) 뿐임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 상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시고, 당신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울면 같이 울며 애타하시고 슬퍼하십니다. 당신이 실족하면 십자가에서 또 피 흘리실지라도, 추궁하거나 탓하지 않으시고 도우시되,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함성과 박수 소리를 듣고, 상급을 기대하십시오.

 

예수님은 천군천사들과 함께 당신을 응원하십니다. “힘내라! 조금만 더하자 내가 함께 있다.” “두려워 말라” “너는 최후의 승리자야, 내가 이미 이겨놓았어!” 하시며 힘찬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소리가 당신의 심령을 진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준비해두신 영광의 상급을 볼 수 있는 신령한 눈도 밝아지기를 축복합니다.

 

*, 이런 다짐은 어떨까요?

 

1. 예수님께 인정받고 칭찬 듣는 목회하자. 2. 후회하지 않을 목회하자.

 

3.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따라 목회하자. 4. 천국 상급 바라며 목회하자.

 

5. 주어진 환경에서 감사하며 최선으로 목회하다 천국가자. ()

 

                                       - 작은 은퇴목사 이박준 씀 -

 

   

 

2. ●● 교회, 담임목사 청빙 조건

 

1. 천국독립군의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실 분

2. 교회 개척하여 실패한 경험을 축척한 분.

3.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실 분

4. 십자가에서 뛰어내려오지 않고 죽으셨던 예수님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죽어,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기 원하시는 분

5. 예수님이 방법 되심을 믿어 인간의 수단을 버리고 정직.나눔.섬김을 실천하실 분

6. 2년마다 부목사와 자원하는 성도들로 교회를 분립하실 분

7. 교회 비전과 정관에 동의하시면 교단에 제한 없음

(언론에 보도 된 자료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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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교회, 담임목사 청빙 조건과 체크리스트

 

1, 하나님을 기쁜 마음으로 경외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섬기는 분

2, 예수님을 참 내 구주로 믿고 감격하신 분으로 아직도 그 감격이 식지 않은 분

3, 주님 뜻이면 십자가에서 죽을 각오가 있는 분

4, 이혼 경력이 없는 분으로 연령 45세 전후의 분

5, 부모 공경을 주안에서 나름대로 잘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6, 부모님이 예수 믿으시는 분

7, 초등학생 때부터 교회 다니고 중간에 한 번도 교회를 떠나지 않은 분

8, 가족의 잘못을 내 책임으로 알고 회개하는 분

9, 목사의 가족이니 모범이 되라며 가족에게 우격다짐하지 않는 분

10, 목사 된 후 부부 싸움하지 않는 분

11, 목사 된 후 사람에게 은혜를 입고 배반한 일이 없는 분

12, 목회 이외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은 분 (사모는 가능)

13, 취미나 오락이나 운동에 중독되지 않은 분

14, 목회 성공을 양적이나 물질에 두지 않는 분

15, 대형 교회를 목표하지 않는 분

16, 한 교회 담임목회자로 평생을 마칠 분

17, 수평이동 교인보다 새 신자 전도를 목표하는 분

18, 불의를 눈감아주거나 동참한 일이 없는 분 (노회나 단체 어디서나)

19, 직분을 이용하여 봉투 받는 일 하지 않은 분

20, 목사직을 구약시대 제사장 같이 생각지 않는 분

21, 교회 일 할 때도 사회법을 잘 지키는 분

22, 법을 어겨가며 교회 건축하지 않을 분

23, 자동차 운전 법규 위반하고 목사이니 봐 달라 말하지 않는 분

24, 좋은 일 할 때는 사회법 어겨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

25, 목사도 실수할 수 있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분

26, 원칙을 중요시하되 원칙으로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분

27, 교회 모든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동등하게 귀한 직무라 생각하는 분

28, 교인 500명 될 때까지 노회나 총회 임원하지 않을 분

29. 교인들의 사생활을 타인에게 쉽게 말하지 않는 분.

30, 교인들의 잘못은 내가 잘못 가르친 탓으로 알고 회개하는 분

31, 설교 할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하는 분

32, 하나님을 높이며 복음적인 설교를 하시는 분

33, 설교에 많은 예화로 도배하지 않는 분

34, 자기가 준비한 설교에 자기가 은혜 돼야 설교하는 분

35, 자기 설교를 완벽하다 생각지 않고 성령님께 완성을 맡기며 기도하는 분

36, 예배 시작 30분전에 강단에 올라가 기도하는 분

37, 목회 성공담 책도 읽지만 실패담도 귀하게 보는 분

38, 목회를 기업 경영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

39,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고 믿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 다할 분

40, 목회는 직업이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들을 돌보는 종이라 생각하는 분

41, 교인을 포용은 하되 교인에게 아부하거나 비위 맞추는 언행하지 않는 분

42, 목회 초점을 하나님 예배와 복음 선포와 영혼 구원. 이웃 사랑에 두는 분

43, 교회개척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 해보신 분

44, 부 교역자가 소신껏 일하도록 진심으로 밀어 줄 마음이 있는 분

45, 출석교인 500명이 넘으면 교회를 분 교회 할 분

(언론에 보도 된 자료 옮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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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목회자 자기관리 점검표


01. 목사가 될 때 가진, 소명에 감격하고 불탔든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

02.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하면,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한다.

03. 예배 준비에 정성을 들여야 하고, 감사와 경건으로 영적예배여야 한다.

04. 예배 순서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사람을 기쁘게 하는 순서는 없어야 한다.

05. 예배 시작 시간을 지켜야 하고, 잡다한 일로 지나치게 길어지지 않아야 한다.

06. 예배 시작 전 최소한 30(차이 있음) 전에 강단에 올라가 기도해야 좋다.

07. 예배에 회개와 감사와 찬양으로 감격이 있어야 한다.

08. 설교는 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시간이다.

09. 설교에 필요 이상 외래어를 사용하면, 자기 실력 자랑하는 모양새다

10. 설교에 잡다한 이야기로, 교인들 웃기기를 좋아하거나. 인기 얻으려 하지 말라.

11. 설교 말씀묵상으로 준비하고, 각종 자료와 인터넷은 참고용이다.

12. 자기 설교에 자기가 은혜되지 않으면서 설교한다면 문제다.

13, 성경연구에 관련된 책 외에, 일반교양 서적도 많이 읽어야 한다.

14. 교회 규모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교회를 귀하게 여기고, 생명 걸 마음은 없고,

대충하다, 괜찮은 자리 있으면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15. 금식 기도나, 철야 기도를 지나치게 자주 강조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16. 부부 싸움 자주 하거나,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하거나, 이혼한 경우도 문제다.

17. 사모가 목회에 심하게 간섭하여,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18. 모가 목사보다 기도시간이 길거나, 책을 읽지 않거나, 방송설교에 중독되면 안 된다.

19. 사모가 교인들 몇 명 따로 모아, 기도나 은사 집회하는 것은, 도움되지 않는다.

20. 가정 경제가 넉넉지 못하다고, 가족의 불평불만이 심하면, 우선 이해시켜야 한다.

21. 목사나 가족이, 근검절약하지 않거나, 교인들의 평균 생활수준 이상으로 사치하고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22. 목사가 교인 앞에 자기를 과대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23. 목사직을 제사장, 선지자로 여겨 그런 권위를 가지려고 하지 말라.

24. 목사가 교회에서 제일 높은 자리라 생각하지 말고. 낮은 자세를 가져라

25. 교회자립 의지보다, 보조나 후원받기만 기대하며, 이를 적극 로비하면 자립 못한다.

26. 교회 모든 직분자를 동역자로 생각지 않고, 부하 다루듯 하면 협력 목회가 안 된다.

27. 목회보다 다른 직업이나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교인이 외면한다.

28. 목회자는 자기 달란트대로 일해야 한다, 유능하다는 목회자 모방하지 말라.

29. 목회를 양적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면 성령께서 일하시지 않는다.

30. 목회하면서 최소한 하루 2 시간 이상 기도하되, 회개와 묵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31. 목회 중에, 1년에 성경을 최소 2독 이상해야 한다.(연구시간 제외)

32. 화자의 기도는 성도만 위하지 말고, 자기 영성을 위하여 많이 기도해야 한다.

33. 회자가 교회 일보다, 다른 일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으면 목회에 지장이 된다.

34. 목사의 취미 활동이 왕성하거나 오락을 습관적으로 즐기면 영성이 떨어진다.

35. 목사 되기 전에 행하던 옳지 못한 습성이 변화되었어야 한다.

36. 목사가 자기체면 유지를 위하여 거짓말을 쉽게 하면 안 된다.

37. 목사가 권위주의가 돼서는 안 되지만, 목사의 품위 유지는 해야 된다.

38. 목회에 원칙이 없고, ()이나 이런저런 말에 끌려 갈팡질팡 하지 마라

39. 목회에 도움되지 않으면서도, 각종 세미나에 끌려 다니지 말고, 기도해라.

40. 교회 운영을 자기 고집이나 누구 눈치 보며, 적당히 편의대로 할 것이 아니라.

교회 법질서대로 해라.

41. 교인들로부터 대접이나 선물이나 봉투 받기를 은근히 기대하지 말라.

42. 교인이 알면 안 되는데 하면서, 교인 없는데서 쉽게 행동하지 말라

43. 교인에게 친근감을 준다며 여성도(나이 불문) 신체에 손을 대거나,

대화나 전화로 사랑한다. 좋아한다. 보고 싶다 등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44. 교인들을 차별하거나, 만만하게 함부로 대하거나, 말을 쉽게 놓지 말라.

45. 현재의 고난을 통하여, 장차 주께로부터 받을 상급에 소망이 충만해야 한다.

46, 회를 기술이나 요령으로 하지 말며, 무릎으로 목회해야 한다.

47, 설교를 지식이나 학문 전달 시간으로 착각하지 말라.

48, 예배 설교는 말씀선포의 시간이므로 말씀만 전고, 헌금 강조를 하지 말라.

49, 쉬운 목회만 바란다면 병든 목회자다.

50, 목회자가 하나님으로 행복하지 못하고.

세상적 가치로 부자 되고, 편안히 살고 싶다면, 목회를 그만두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기도하는 목회자 모임에서 나온 자료.- 편집 목사 이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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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회자의 자격 10가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 어느 날 후배가 찾아와 어떤 목회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입니까? 라고 물었다. 경건한 사도가 되어야지 했다.

 

영성을 제외한 실제 목회 생활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마르틴 루터는 수첩을 꺼내 거기에 적혀 있는[자기 신조 10가지]를 말해 주었다.

 

1) 목회자는 쉬운 말로 설교하고 질서 있게 가르쳐야 한다.

2) 훌륭한 머리가 있어야 한다.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사고가 있어야 한다.

3) 분명한 발음 등 언어사용에 능숙해야 한다.

4) 좋은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진실한 목소리,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갖춰야 한다.

5)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6) 그만 둘 때를 알아야 한다.

7) 자기가 하려고 하는 말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

8) 진실을 위해 몸, 영혼, 재물, 명예를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9)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10) 고난과 비난을 참고 견뎌야 한다. (언론에 보도 된 자료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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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목사도 천국 갑시다!"

목사의 원래 자리 찾기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

 

언젠가 어느 목사님들의 모임 슬로건이 '목사도 천국 가자'라는 말을 듣고 공감하며 크게 웃었다. 내가 '우리도 천국 가자'는 목사님들의 구호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목사들이 천국 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교회문제상담소를 통해 수많은 '문제(?) 목사'들을 접하다보니 이런 발칙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내담자 A집사는 지인을 전도하면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소개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 교회 담임목사의 인격이 너무 부끄러워, '우리 교회 나오지 말고, 자네 동네 교회로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 교회 목사의 인격이 너무 상식 이하라며, 교회 안 다니는 일반인들(?)의 평균 수준만 됐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사실 모든 목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목사님들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그러면 '모든' 목사들이 자신을 그 '적지 않은 선한' 목사로 생각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말하기는 했다.) 물론 글을 쓰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나 자신도 목사로서 그 위험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음을 가끔 자각하게 된다.

삶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선한 목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돌아볼 일임을 고백한다.

 

작년 한 해 동안 200회가 넘는 교회 문제를 상담하면서 절감한 바는, 목사들이 심심히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목사의 이러한 모습이 교회 분쟁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고치는 목사가 '믿음'이 좋다?

 

한국의 대다수 교회가 지닌 신학에 따르면, 우리도 천국 가자고 외치는 목사는 목사로서 자격이 없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그런 나약한 믿음으로 어찌 목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사고치는 목사'는 믿음이 투철하다.

 

오래 전 여자 문제와 돈 문제로 교회를 발칵 뒤집어 놓고도, 자리를 지키며 버티던 B목사에게 선배 목사가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지옥 가고 싶으냐'며 충고를 했단다.

그러자 B목사 왈, '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로 구원받습니까?' 우리도 천국 가자는 목사님들의 외침이 반가운 것은, 보기 드물게도 이분들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분들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왜 이렇게 상식 이하의 목사들이 많은가?

개혁연대에 제보되는 목사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는가? 아마 처음부터 '진정성' 자체가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내담자들이 심심치 않게 하는 이야기가 '우리 목사님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좋은 분이었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람이 변하더란다. '변화'가 아니라 '변질'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성도들의 과도한 섬김이 목사를 망친다

 

내담자 C장로의 분석에 따르면, 성도들이 맛있는 것, 좋은 옷, 좋은 차를 갖다 바치고 섬겨주니까 교만해져서 그렇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목사로서 지금도 얼마나 과분한 섬김을 받고 있는가. 가끔 그런 과분한 섬김을 당연하게 받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심지어 어떤 목사들은 스스로를 '주의 종님'이라고 부르며, 섬길 것을 강요하기도 한단다. '주의 종'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처음 목사가 될 때 초심이 어떠했든지, 생각이 이렇게 뻔뻔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에게서 다른 뭘 더 기대하겠는가.

 

설교에 대한 피드백도 큰 역할을 한다.

우리 한국 사회, 한국교회에서 누가 설교자에게 부정적 반응을 보이겠는가. '은혜 받았습니다' 일색이다. 자신이 설교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목사는 드물 것이다.

얼마 전 S교회 장로들이 자기 교회 담임목사가 다른 목사 설교문을 그대로 베껴 설교하는 걸 알게 되었단다.

 

장로들이 모른 체하며 '우리 교회 상황에 맞는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하자, 목사는 오히려 '내가 우리 지역에서 설교 제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역정을 내더란다.

 

이런 지경이다 보니 성도들 앞에서 '모른다' 소리도 못할 뿐 아니라, 마치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아는 듯 착각한다. 심지어는 성도들의 사업에까지 관여하고, 부동산 투기 상담까지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대형 교회 목사가 설교 중에, '자신이 교인들에게 사라고 땅을 지정해주면 땅 값이 몇 십 배 오른다'며 자랑하는 것을 들었다.

 

이래저래 목사들은 교회라는 성 안에 갇혀서 정작 세상이 자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목사들의 의식이 세상의 상식으로부터 격리되어 게토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목사님들이여, 착각하지 마시라.

 

목사를 무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목사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가 있다.

목사 스스로뿐 아니라 성도들이 목사를 하나님과의 중보자로 착각하는 것이다.

마치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성도들의 이러한 인식은 한국인의 종교의식 밑바탕에 깔린 무속신앙에서 뿌리를 찾아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일부(?) 목사들이 이를 악용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목사들 자신이 스스로를 성도들과는 다른 어떤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무당이 된 목사에게 도덕성이나 윤리성은 중요하지 않다.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과 선포는 오히려 불편하다. 기적적인 체험이나 능력을 홍보하고, 강한 '카리스마'로 성도들을 압도하는 그런 목사가 능력 있는 종이다.

성도들은 이런 목사의 능력과 카리스마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목사들의 능력으로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병든 육신이 건강해지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대한다. 능력의 종! 기복주의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목사가 아닌가? 하지만 이로 인해 목사와 성도들 모두 심각하게 병들고 변질되는 것이다.

 

목사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한이 목사를 망친다.

 

목사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 역시 목사를 병들게 한다.

각 교단이 가지고 있는 '헌법'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헌법'이라는 것은 한 국가 통치 체제의 근본이 되는 최고 법규를 말하는 것인데 버젓이 '헌법'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용어 사용에서부터 '헌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목사들의 권위 의식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러면 그 '헌법'의 내용은 어떠한가? 독소조항 투성이다. 모든 권한을 담임목사가 가지고 있다. 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회의체의 의장을 담임목사가 맡는다.

 

장로교의 경우 당회장, 제직회장, 공동의회장을 모두 담임목사가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헌법'에 보면, '목사의 의의'를 이렇게 규정한다. '양의 무리를 감시하는 목자', '그리스도의 사역자', '신약의 집사', '치리 하는 장로', '교회의 사자(천사 계2:1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사신', '오묘한 도를 맡은 청지기' 등등.('헌법' 4장 제1) 이러한 내용은 타 교단의 경우에도 대동소이하다. '헌법'에 따르면 목사는 법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감히 평신도가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다.

 

한국교회는 개 교회 목사에게 그런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이를 통제할 장치가 거의 없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 다수의 목사들은 북한에 대해 목숨 걸듯 비판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그들과 꼭 닮아 있는가? 비민주적이고, 반대 의견은 철저히 묵살하는 행태는 김일성 정권과 못지않다. 게다가 세습까지 하는 걸 보면 그야말로 독재다.

 

목사 제자리 찾아주기

 

이렇듯 왕처럼 섬김 받고, 자타 공히 하나님의 천사라 여기며, 무소불위의 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목사들이 겸손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자칫하는 사이 자신을 하나님 바로 다음 자리에 앉히기 쉽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을 기억하라. 절대 권한을 부여받은 목사는 '부패''변질'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저 추상적인 규정이 아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 목사 개인의 인격이나 믿음만을 믿고 맡기기엔 너무 위험하다. 교회도 위험하고 목사도 위험하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면, 거의 모든 한국교회에는 교회의 분란이 잠재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목사들에게 그런 자리에 서게 되더라도 교만해지지 말고 겸손하라고 요구만 하면 될 것인가. 이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고 참으라 하는 격이다.

 

혹시 대단한 영성을 소유한 몇몇 고양이가 참아낼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고양이는 생선을 먹고 말 것이다. 현재의 이런 구조는 목사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면, 성도들이 깨어날 것을 기대하겠는가. 성도들이 누구에게 교육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시라. 왜곡된 자기 정체성을 가진 목사들이 가르친 성도들에게 깨어나길 기대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목사가 겸손한 자세로 자기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교회에 민주적인 정관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민주적 정관 도입을 통해 목사, 혹은 소수의 장로에게 편중된 과도한 권한을 제한하고, 교회의 주권을 성도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정관 도입만으로 교회 내 모든 비성경적인 권위주의 문제와 그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들이 일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민주적 정관을 도입해 운영하는 것은 교회 분쟁 원인인 목사에게 집중된 권력 문제와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민주적 운영은 건강한 목사,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목사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인 올바른 해석을 위한 말씀 연구와 선포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담임목사의 독재 정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절실하다. 권위주의적인 독재 정치는 중세의 사제주의와 권위주의에 저항했던 개신교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 모든 권한을 향유하고 있는 목사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심을 인정하고, 교회의 주권을 교인들에게 돌려주어 성경이 기대하는 바, 민주적인 교회를 세워야 할 것이다.(교회의 민주적 운영에 관하여는 백종국 교수의 저서 <바벨론에 사로잡힌 교회>를 참고하라.)

(언론에 보도 된 자료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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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목회는 이생의 자랑이 될 수 없다

 

20여 명의 목사님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서너 교회를 빼고는 모두 개척교회 정도의 어려운 목회를 하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각 교회의 근황을 서로 말하자고 해서 돌아가면서 말을 하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대부분 목회의 어려운 얘기들을 합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재정적으로도 풍성한 목회자가 자기 교회의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회자가 철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얘기를 듣는 다른 목사님들의 표정이 썩 유쾌한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제 차례가 와서 과거에 어려웠던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목사님들은 당신도 과거에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그런 어려움이 있었단 말이요? 라는 말을 하면서 뭔가 희망을 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의 입장을 배려하려는 정신은 어디서나 필요함을 느낍니다.

 

앞서가는 목회자일수록 과거의 자기의 어려운 상황들을 떠올리는 것도 덕을 쌓고, 겸손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끔 큰 교회 부임한 목회자들에게서 이런 어려운 목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입장에서 목회를 말하려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목회는 이생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목회자뿐이겠습니까?

가끔 성도들이 구역예배를 드리면서 자식 자랑, 가정 자랑을 하는 경우들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마음의 시험(?)을 받아 구역예배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들을 듣습니다. 나는 월세도 제대로 못 내고 있는데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아파트 값이 올랐다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기도를 했을 때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할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6:14)고 했습니다. 실은 그는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은 사람입니다. 학벌에서도, 가문에서도, 열정에서도.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했다면 우리가 자랑하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하겠나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는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 자랑하다가 망한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골리앗은 힘자랑하다가 쓰러졌고, 하만은 권세 자랑하다가 당했고,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의 부로닥발라단 왕 앞에서 군사와 군수품 자랑하다가 침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자랑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인정(recognition)받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에 자랑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좀 성숙해지면 자랑하면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한 그 자체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사학위 받았다고 신문에 광고내면서 감사예배를 드리기보다는 그 자체로 감사하고 만족할 수는 없을까요? 요즘은 노회 임원 되었다고 각 신문사에 사진과 함께 광고를 내보내는 기발한 상업적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내가 자랑하던 것도 그저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들이 거의 비슷하게 되어 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평등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사람의 나이 40대가 되면 지식의 평등이 찾아온답니다. 과거에나 공부 잘하고 못하고가 있지 40세가 넘어가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50대가 되면 외모의 평등이 찾아오는데 예쁜 사람, 못 생긴 사람도 다 늙어가고 배 나오고 엉덩이도 쳐지고 두루뭉술해진다는 것입니다.

 

60대가 되면 성의 평등이 찾아와서 남자는 순해지고,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억세져서 결국 같아진다는 것이요, 70대가 되면 건강의 평등이 찾아와서 건강한 사람이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나 고만고만합니다. 80대가 되면 재물의 평등이 찾아와서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요, 90대가 되면 생사의 평등이 찾아와서 누구나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 거의 맞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랑할 것은 변하지 않는 우리 주 예수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성도들은 전도한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할 생각은 안하고 외적인 자기 교회 자랑, 또 자기 목사 자랑하고 다닙니다. 은근히 목사들이 이렇게 시킨다고 합니다. 복음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남의 교회, 남의 목사를 평가절하 할 때 자기 목사가 올라가는 상대적인 효과를 노린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아직까지 이런 레드오션(red ocean) 속에서 우리끼리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빨리 블루오션(blue ocean)으로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 강이나 큰 바다가 수많은 개울과 하천의 왕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낮은 곳에 있어 겸손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럴듯한 얘기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겸손을 생활철학으로 삼으라. 겸손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이고, 교만은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라고 했습니다. 좀더 겸손해지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존경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교만한 사람도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의 겸손이 그리운 때입니다. 장경덕 canaan@kornet.net

(언론에 보도 된 자료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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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교회 돌파구는 전도뿐이다

수평이동교인 말고, 불신자 전도에 사활을 걸어야만 산다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해 교회 성장학을 연구하는 목회자와 전문가들은 대부분 한국교회의 거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연합과 일치, 화합을 외치지만 분열과 갈등으로 분열의 종교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한국교회는 교회이기주의에 매몰됐고, 세상을 밝혀줄 빛마저 잃어버렸다.

 

결국 성장은 정체되고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먼저 한국교회의 전도운동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향후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 어떤 전도운동을 전개해야 하는지를 점검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교회마다 교회성장을 위한 전도세미나 등의 다양한 전도프로그램을 실시해 성장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현실목회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때문에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극복할 수 있는 현장중심의 전도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또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도 심도 있게 제기되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 직시해야

최근 한국교회는 성장은 급격히 둔화되고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마이너스에서 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1990년도 이후 성장이 정체되고 이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당시 한국교회의 교인수가 1200만 명(문화관광부 추산 10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오늘 한국교회의 교인수가 많게는 800만 명을 겨우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어 한국교회의 현실을 반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7~8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과 함께 급성장한 한국교회의 교인수가 얼마만큼 허수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이다.

 

여기에 한국교회를 지탱해준 전도운동이 소홀해지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특히 한국교회의 전도중심에 서 있던 전도사역자들도 과거만큼 열정적인 전도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틀에 박힌 전도운동은 더 이상 불신자들을 끌어들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시대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 어렵고 가난하던 시대에는 교회가 대안이 됐지만, 풍요롭고 여유로운 사회에서 교회는 선택 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전도의 방법에 있어서도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과거에는 전도하면 어렵지 않게 됐지만, 현재는 맹목적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오히려 지역사회에 파고들지 못하고 섬김과 나눔, 봉사정신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교회를 찾는 교인은 계속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껏 부풀려진 교인들은 마치 거품이 빠지듯 사라지고 있다. 급기야 한국교회 전반의 뿌리를 흔드는 상황까지 왔다. 뒤늦게 곳곳에서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초기 한국교회로 회귀하자는 움직임과 외침이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마련 없이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더욱 큰 문제는 대부분의 중대형 교회들이 현재에 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새로운 교인을 전도하기보다는, 작은 교회의 교인들을 빼앗아 교회를 부흥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교회간에 전도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때문에 한국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을 잃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됐다. 세상 사람들에게 분열의 종교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교인들의 개 교회주의, 집단이기주의와 끼리끼리 문화가 극에 달하면서, 한국의 기독교는 종교선호도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때문에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은 잃어버린 빛을 회복하고, 기독교 정체성을 회복해야 다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도 자원 계발로 성장 모색

한국교회가 전도의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은 초기 선교사들이 뿌려놓은 선교의 자원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교육사업을 비롯한 의료사업, 교회복지사업 등을 통해 전도의 자원을 만들어 냈다. 또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소명을 가진 교회지도자들을 길러냈다.

당시만 해도 한국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전도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한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7~80년대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분열과 갈등 속에서 부풀려진 기독교인의 숫자가 빠져나가면서, 마이너스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 한국교회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외선교도 중요하지만, 전도의 자원을 계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교자원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전도자원의 확충을 위해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 시대에 맞는 전도프로그램을 제시하되, 초기 한국교회의 본질을 그대로 심어줘야 한다.

 

전문가들은 교회의 전도는 부흥의 전도가 아니며, 교회기능을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인원을 늘리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말이다. 또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 복음을 전하는 형태만을 고집해서는 안되며 지역사회를 위해 나눔과 섬김의 봉사정신을 보여줬을 때 전도자원은 풍부해 진다고 역설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전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전도자원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선교를 실천할 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인식해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는 가난과 어려움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선교를 실천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과거로 돌아가야 하며 우리 사회가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원인을 교회는 깊이 있게 파악해야 한다. 별이 빛을 잃어버려 어둠에 잠기듯, 한국교회도 위기를 맞았다. 다시 한 번 한국교회는 세상의 어둠을 환하게 밝혀줄 별처럼 빛을 발해야 한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2010년까지 300만 성도운동을 전개하고 감리교회, 성결교 등의 여러 교단이 세상을 향한 전도전략들을 세우고 민족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생명목회, 복지목회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개척교회 성장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교회들도, 목회현장에 맞는 전도전략을 계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을 교회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 전도 전략도 중요하지만, 교인들의 전도에 대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 사실 교인과 목회자가 열심히 전도한 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의 틈새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 된 자료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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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 닫는 교회 공통점 20가지

 

1. 전도하지 않는다. 흔히 전도지만 돌리지 입으로 발로 뛰면서 하려고 하지 않는다.

 

2. 기도하지 않는다. 그저 묵상으로만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지 부르짖지 않는다.

 

3. 찬송도 천천히 늘어지는 찬송만 부른다. 주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해서 모이는 잔 칫날 에 장송곡과 같은 찬양만을 하고 있으니 잔치 집인 줄 알고 왔던 사람들도 기 겁을 하고 나간다.

 

4. 안 된다는 핑계만 한다. 너무 없어서 안 되고, 가난한 동네라 안 되고, 사람이 없어서 안 되고, 그러나 되는 교회는 이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 목회자의 의욕이 꺽여 있다. 하고자하는 의욕보다는 어디론가 자리를 옮기면 잘 될 것 같은 못 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6. 교인들의 표정이 도무지 밝지가 못하다. 이는 교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도 관계가 있다.

 

7. 교회를 들어가는 입구가 매우 어둡다. 교인이 적어서 돈을 아끼기 위해서 교회 입 구의 전기불도 꺼놓는 교회도 있다.

 

8. 땜질식의 임시방편의 환경미화가 주로 교회의 분위기이다. 교회의 간판이 넘어져 있고 색깔이 변해도 그대로 방치해두고 있다.

 

9. 목회자의 설교가 율법적인 경우가 많다. 정죄는 성경을 읽음으로 받게 하고 목회자 는 사랑과  용서만을 전해주어야 하는데 대부분이 정죄하고 판단하는 설교이다.

 

10. 선배 목회자나 목회를 잘하고 있는 사람들의 권면 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선 배들 의 말이나 목회를 잘하고 계신 분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을 할 때부터 목회 는 된다.

 

11. 무엇을 하더라도 소극적이다. 교회의 간판글씨도 애들 장난과 같이 적당히 하고 전단지도 그저 다른 선교단체에서 만든 것을 사용하는 정도이다.

 

12. 예수를 증거하는 횟수보다도 교단과 교파를 더 많이 말하고 있다. 긍지와 자부심 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들은 영생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13. 꼭 큰 교회가 다가 아니라고 외쳐댄다. 그러나 영혼은 예수님을 사랑할 때 하나 님께 서 보내주시는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21:15-18)

 

14. 아무에게나 반말을 한다. 이상하리만큼 그릇이 큰 목사님들은 어린 전도사님들에 게도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5. 도움을 받으려고만 한다. 전혀 없어도 없는 가운데에도 주는 교회가 되기 시작을 하면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부요케 하신다.(6:38)

 

16. 교인이 올 때만 기다리고 있고 책만 보고 있다. 그러나 영혼은 전도의 열정이 없 으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17. 사모의 간섭과 독선이 굉장하다. 목회자는 훌륭한데 사모가 감나라 대추나라 목 소리가 담을 넘어간다. 그럴 경우에는 교인들이 일 년을 견디지 못한다.

 

18. 교육을 하지 않는다. 나중에 교회가 부흥이 되면 한다고 하고 교육을 해야 하는 기회를 놓치고 있기에 양육을 받지 못한 교인들로 인해 문제는 계속해서 일어나 고 교회는 아픔이 떠날 날이 없다.

 

19. 성령의 역사하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교리와 신학이 최고인 줄로 알고 실질 적으로 진리를 알게 하시고 경험하게 하시고 진리를 보존해 주시는 성령을 부정 하고 있기에 교회는 도무지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 설교에 교리와 신학만 강조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부정되고 있다. 설교에서 교 리와 신학을 벗어나면 안 되지만 교인들 앞에 그것만 강조하지 말라.()

(언론에 보도 된 자료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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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목회자여, 강단에서 복음만 말하라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복음)에 근거해야 합니다. 복음이 없는 설교는 설교가 아니에요."

 

한국교회사의 산증인인 초동교회 조향록(89) 원로목사가 최근 한국교회의 설교 관행에 일침을 가했다. 일부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복음이 아닌 사적 의견을 선포하는 것에 대한 경계다. 그는 또 책임지지 못하는 말을 '하나님의 권위'로 회중에게 강요하거나 회중 심리에 맞추기 위해 설교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설교란 무엇일까. '목사의 유산은 설교'라는 원칙을 가진 조 목사는 복음의 빛으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목회자는 그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설교를 해야 합니다. 설교자의 진실은 그의 설교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거룩하면서도 두려운 직책입니다."

 

 조 목사는 복음이 사라진 설교의 원인을 신학교육에서 찾았다. 신학대학에서 영적 훈련과 복음 이해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강조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 신학이 학문적으로는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영적 훈련은 부족했다"면서 "복음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목회자가 올바른 설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설교자는 자신을 비우고 일생을 바쳐 복음만 전파하려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조 목사는 특히 물질에 휘둘려 중심을 잃거나 정치권을 기웃거리면 바른 설교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이는 세상을 선도해온 한국교회의 전통을 포기하는 행위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저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걸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1000만의 기독교인이 있는 나라에서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하지만 일부 목회자들은 어떻습니까. 교회 식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기도를 합니다.

 

커다란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문제예요. 예수님은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했어요. 화려한 예배나 교회당보다 소외된 이웃을 생각해야 해요. 목회자들이 먼저 검소하게 살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죠. 3.1운동 등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해온 역동적인 한국교회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올해 칼뱅 탄생 500주년을 맞아 장로교단 간 설교 교류 등 연합과 일치 움직임에 대해서는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 개신교 주류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인 만큼 하나 되기도 쉽다는 것이다.

 

"한국 장로교단은 세례, 성찬, 교리도 같고 행정양식도 하나예요. 다만 일부 목회자가 총회장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되는 거예요. 장로교단이 하나 되면 다른 교단들의 연합과 일치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조 목사의 설교 등을 모은 선집(5)이 자서전과 함께 발간됐다. 조 목사는 목회자들의 신학연구와 목회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를 홈페이지

(www.chr1920.kr)에 모두 공개할 예정이다. 최정욱 기자 jwchoi@kmib.co.kr

 

조 목사는

1920년 함남 북청 출생으로, 한신대학교의 전신 조선신학원을 나와 1954년 초동교회에 부임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한국신학대학장,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종교분과위원장, 현대사회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9-07-13 22:16:18

(언론에 보도 된 자료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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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한 번의 설교에 한 가지 진리만 넣어라

주승중 교수 [성경에 충실한 것이 가장 예언적인 설교]

"예언자적 설교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평가는 객관성 잃었다."

 

한 번의 설교에서 너무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장신대학교 주승중 교수(설교학)10일 지구촌교회 창립 15주년과 이동원 목사 성역 40주년을 기념하는 설교 심포지엄에 참석해 [설교학적 관점에서 본 이동원 목사의 설교]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오늘날 한국 교회 강단의 위기는 하나의 설교에서 너무 많은 내용을 전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많은 설교자들이 너무 많은 내용을 포기하지 않고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고 흐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 교수는 30분 설교자가 회중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설교자가 한 문장으로 요약하지 못한다면 듣는 사람도 이해하지 못한다며 이 점은 이동원 목사의 설교에서 배워야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주 교수는 적용이 강조되는 이동원 목사의 설교적 특징을 지적하며 그는 설교에 있어서 텍스트(성경)와 컨텍스트(상황)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며 설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간의 끊임없는 긴장과 대화인데 이 긴장과 대화 속에서 설교가 탄생한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또 주 교수는 본문을 떠난 설교의 범람은 한국교회의 선교 사역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며 설교자들이 설교시간에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여 오늘의 삶의 상황 속에 적용하기보다는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본문은 자신의 이야기를 위한 징검다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 교수는 또 어떤 설교자들은 본문은 충실히 해석을 하는데 비해 오늘의 상황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다. 그래서 허공을 치는 설교들이 있다.며 결국 회중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오늘의 한국 교회 강단은 포률리즘적 설교로 오염되고 있다. 는 김의환 목사의 지적을 소개하고 강단이 타락하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현상은 설교자가 회중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는 것이라며 흥미위주로 회중들이 듣기에 부담 없는 설교를 하려고 애쓰게 되면서 한국 교회의 위기가 왔다고 지적했다.

 

성경에 충실한 것이 가장 예언적인 설교

 

주 교수는 또 예언자적 설교에 대해 언급하며 정용섭 목사가 이 목사를 사대주의자, 반북친미주의자 등으로 평가하며 역사 허무주의자라고 비판한 것을 소개하고 객관성이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가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주 교수는 소위 진보진영에서는 정부를 비판하고 기존 교회를 비판하면 예언적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소위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을 비판하거나 공산주의를 비판하면 예언자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시각으로 서로를 평가하고 비판한다면, 이런 비판들은 다 객관성을 잃어버린 자신들만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주 교수는 고 주기철 목사(주 교수의 조부)에 대해 그 분은 한 번도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다. 오직 역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를 원했을 뿐이라며 그는 오직 성서적 진리에 충실했던 것뿐인데 그들(일제)에게는 저항으로 보였고 국가와 체제를 전복하려는 반국가적인 행동으로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경에 충실하게 서 있으면 그것이 가장 예언적일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느냐가 기준이어야 한다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느냐에 따라 길게는 하나님이 가깝게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주 교수는 이동원 목사의 설교는 설교학적으로 거의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이론과 실제가 매우 균형 잡힌 설교라며 그는 설교 역사상 최초로 강해설교를 시도한 하늘을 위한 이 땅의 위대한 소리꾼이라고 평가했다.

뉴스파워 최창민 (언론에 보도 된 자료 옮겼습니다.)

 

                                         ................ (자료 편집 끝 목사 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