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네 잘못이 아니다”
24년간 ‘길 잃은 양’ 청소년 거둔 한빛청소년센터장 최연수 목사
한빛센터 사역자(맨 왼쪽)가 거리 상담을 하고 있다. 들어주고, 믿어주고, 지켜봐 주면 스스로 깨닫고 각자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재능을 계발해 나간다고 했다.한빛센터 제공
마음의 상처가 있어도 호소할 데가 없는 아이들은 한빛센터에서 마음껏 논다. 노는 것이 지겨울 때쯤이면 중고생을 위한 '점프스쿨' '도보여행' 등의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도보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공중부양' 정지화면 놀이를 하고 있다. 아래는 점프스쿨 수업장면. 한빛센터 제공
‘학교 밖 아이들’을 품어온 ‘학교 밖 교사’가 있다. 머리를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염색하고 코와 입술에 피어싱을 한 청소년들을 보면 그의 가슴이 뛴다. 두려워서가 아니다. 말 걸고 싶고, 그 아이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최연수 목사 (53·한빛청소년대안센터 센터장 http://hi-dreamer.org/center/sub01-1.php) 는 지난 24년 동안 서울 마천·거여동에서 학교 밖 아이들을 품어왔다. 한 지역에서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다리면 아이들은 연어처럼 돌아온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이 자신을 품어 주었다고 말했다. "촌놈이 해직 당하고 서울에 오니 반겨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난 이방인이었어요. 제도권에서 쫓겨난 아이들과 비슷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내가 그 아이들을 품은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나를 품어 준 것이지요."
서울 송파구 오금로 한빛청소년대안센터(한빛센터)를 거처 간 그의 제자들은 이제 1000명이 넘는다. 처음엔 학교 부적응 아이들을 학교로 복귀시키는 것이 1차 목표였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꿈을 설계해주고 자립을 돕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아이들은 한 사역자의 헌신으로 반듯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경찰공무원, 대기업사원, 자동차정비공, 공연기획사대표, 뮤지컬배우, 백 댄서, 요리사, 사회체육가, 헬스트레이너, 사업가 등 다양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 목사는 "마을이 답"이라고 했다. 지역사회(마을)를 기반으로 한 지원시스템 구축을 의미한다.
성경의 ‘이방인’, 학교 밖 아이들
그가 학업을 중단한 학교 밖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때는 1992년 겨울 무렵이었다. 그는 전남 나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1년 동안 영어교사로 일했지만 신원특이자란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전력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복직을 기다렸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91년 상경해 영어학원 강사로 일했다. 그러나 봉투를 내밀며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를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학부모들을 보며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닌 듯했다.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마천YMCA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정훈(가명·15세)이 며칠 째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주소를 들고 5000세대가 살고 있는 거여동 판자촌을 찾았다.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는 집의 문을 열자 심장이 멈추는 듯 했다. 머리를 노랗게 빨갛게 물들인 청소년 7∼8명이 본드와 가스를 마신 채 방바닥에 뒤엉켜 있었다. 싱크대엔 먹다 남은 라면 냄비와 그릇이 가득 쌓여 있었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집을 비울 때가 많아 동네 형들이 그 집을 아지트로 삼았다. 마을엔 그런 집이 5∼6곳이 존재했다. 계속 아이들이 생각났다. 수업이 끝나면 부모들이 고급 승용차로 귀가 시키는 학원가 아이들과,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의 방안에 술병과 함께 뒹구는 판자촌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대비됐다. ‘이 아이들이 내가 찾아야 할 잃어버린 양이 아닌가.’
매일 오후 1시쯤 먹을 것을 가지고 아이들이 모이는 집을 방문했다. “들어가도 될까”라고 말하는 그를 아이들은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왜 학교를 중단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가정해체, 빈곤의 악순환, 학습부적응이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두면 고통이 줄어들 것 같았지만 아이들은 더 많은 고통과 장벽을 만나고 있었다. 매주 토요일은 아이들의 아지트를 돌고 수시로 학업을 중단한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그를 ‘스토커’라고 불렀지만 간식을 사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듯 기다렸다.
“요리하는 래퍼로 살래요”
98년 한빛센터를 열고 밑 빠진 독에 '사랑 붓기'를 시작했다. 센터에 오면 무조건 믿어주고 속아줬다. 컵에 담배꽁초가 가득하고 라면을 먹고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내버려뒀다. 규격화된 교육이 싫어서 뛰쳐나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모아놓고 가르치지 않았다. 바둑 장기 탁구 텔레비전시청 등 마음껏 오락을 즐기도록 내버려뒀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이 센터 한편에 위치한 상담실을 노크했다.
한빛센터 설립 첫해부터 '길거리상담'을 비롯해 학교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을 위한 검정고시반 '사랑의학교'를 진행했다. 당시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청년들을 보내주어 야학을 꾸릴 수 있었다. 서울 송파구 지역에서 '10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10년 콩나물 시루에 물 주기'를 했더니 지역에서도 인정하는 곳이 됐다. 3년 전부터는 위탁형 대안학교인 세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또 학업 부진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고등학생 공부방인 점프스쿨 등 제법 규모를 갖췄다. 머물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공동생활공간인 그룹홈도 만들었다.
정수(가명·17세)는 중학교를 자퇴한 이후 절도로 소년원에 다녀왔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래퍼가 꿈인 정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작곡만 했다. 최 목사는 정수에게 "밥은 먹고 살아야지. 길게 보자. 요리하는 래퍼, 빵 굽는 래퍼가 되는 것은 어떨까"라고 말했다. 정수는 난타공연, 도보여행, 제과제빵을 통해 꿈을 찾아갔다. 중·고교 검정고시도 마쳤다. 지난해 한 기업의 인턴을 거쳐 정식직원으로 채용됐다.
중학교를 중퇴한 은수(가명·17세)는 손가락이 유난히 길었다. 누군가 "네 손가락은 길어서 마술을 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졌다"고 격려하자 마술전문대학에 입학했다. 은수는 현재 역삼동에서 공연기획사를 운영한다.
최 목사는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만 보고 아이들을 폐석(버린 돌) 취급하면 안된다고 했다. "한 자리에서 20년 넘게 사역을 해보니 '망나니'였던 아이들이 최소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한 25세부터는 탄력을 받기 시작해요. 30대부턴 다르게 사는 것을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과보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꿈이 다양하고 도전의식도 높아요."
그는 아이들에게 스무 살 전까지 무슨 일을 했든 80%는 네 잘못 아니라고 말해준다. 부모와 사회의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실패의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확신을 못한다. 성취의 경험을 만들어 주며 아이들이 망설이며 뒤돌아볼 때 받쳐주었다. 처음엔 욕을 입에 달고 살던 아이들이 바리스타와 제빵교육을 받는다. 자신이 만든 커피와 빵을 먹어보고, 도보여행과 마을 축제에도 참여한다. 이를 통해 무엇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 찾는다.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은 제자의 가족이 연달아 사망해 장례를 치러 준 일이다. 몇 년 사이에 가족 4명을 병과 사고로 잃은 민우(가명·18세)는 마지막 장례식 후 쓸쓸하게 말했다. "이제는 아무도 없네요. 선생님이 내 아버지가 돼주세요." 선생님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그래 넌 혼자가 아니란다." 민우는 현재 자동차정비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매 순간 곁에 있어준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명절·여름휴가·토요일 없이 아이들 곁에
비행청소년사역은 '버티기사역'으로 불린다. 그는 24년을 어떻게 버텼을까. 성경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다. "기도하는 아내 옆에서 성경을 읽는데 심장이 쿵하고 방망이에 맞는 것 같았어요. 누가복음 15장의 한 마리 잃은 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복직만 생각했던 나에게 학교 밖의 아이들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란게 깨달아졌어요." 그는 2004년 백석신학대학에 입학해 2009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한빛센터는 현재 상가건물 3,4층을 월세로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재정문제로 6번 이사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었지만 건물주가 공간을 비워 달라고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6년 전이었다. "과로와 바이러스 침투로 안면마비가 왔어요. 이사장이 돌아가신 후 아무도 이사장을 맡지 않으려했고 건물주는 나가라고 통보해 왔어요. 길이 꽉 막힌 것 같았죠."
그러나 하나님께선 위기를 통해 매번 더 좋은 곳으로 이끌어 주셨다. 그는 안면마비 이후 센터운영을 시스템화 시켰다. 지난해부터 '캠핑카 이동상담소'를 시작했다. 현장과 이론을 함께 펼치기 위해 명지대에서 상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도 매일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하고 직원들이 쉬는 토요일엔 아이들 가정방문과 설교 준비로 분주하다. 명절에도 한빛센터를 비우지 않았던 그는 2년 전에야 여름휴가를 처음 다녀왔다.
마흔 넘은 제자들… 이제 '좋은 부모 되기' 돕고 싶어
한빛센터는 '마을'이 해답이란 것을 증명해냈다. 마을 안에서 위기청소년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욕구를 파악해 도시형 대안학교에서 가르쳤다. 집이 없는 아이들은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직업훈련을 받으며 희망을 찾았다. "마을의 당구장 화원 카페 교회가 교실이 되고 주민들이 선생님이 돼 당구와 꽃꽂이를 가르쳤어요. 사업은 망할 수 있지만 학교 밖 아이들 사역은 망하지 않아요. 더 나빠지진 않으니까요. 아이들은 연어처럼 꼭 돌아옵니다."
초창기 그의 제자들이 이제 마흔 살이 넘었다. 이젠 자녀교육 문제, 부부문제로 그를 찾는다. “그동안 30명의 주례를 섰어요. 그런데 아이들에겐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요. 부모의 부정적인 패턴을 답습하는 경우가 있어 도와주고 싶어요. 제자들을 ‘좋은 부모’로 만드는 사역에 이제 관심을 쏟으려 해요.” 그에게 또 하나의 소명이 생겼다.
국민일보 이지현 선임기자·사진 전호광 인턴기자 jonggyo@gmail.com
입력 2016-04-26 20:01 수정 2016-04-2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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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상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 순종과 불순종은 인생을 바꾸는 중대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고 사사들이 나라를 돌볼 때 백성들이 강력히 왕을 원하므로 첫 왕으로 선택된 사람은 사울입니다. 처음에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았으나, 얼마 못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버렸고 이를 지켜본 사무엘은 인간적으로 괴로워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내가 버렸는데 너는 언제까지 이 일로 괴로워하겠느냐?]하시며 내가 새로운 왕을 점찍었으니 그 사람을 만나 기름을 붓고 왕을 삼으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버렸으니 사람이 회복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왕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지금 주어진 환경과 삶과 일을 통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삶이 복되게 달라집니다.-이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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