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 그 시절 기도소리
하나님 앞에서 많이 울며 부르짖었고 성도와 교회는 급격히 증가했다.
국제시장은 부산에 실제 존재하고 지금도 번성중이다. 6.25 북한 남침으로 급격히 몰려 온 피난민들로 형성 된 시장은 그분들의 억척같은 생활력으로 활기가 넘쳤다. 따라서 삶에 필요한 모든 물건은 없는 것이 없는 만물상이었다. 대로를 중심으로 도로 좌우로 넓게 시장이 형성되었고, 새벽에는 대로변에서 반짝 번개시장이 열려 각종 먹거리 도매시장이 열렸다.
부산은 피란민의 도시였다. 1950년 당시 부산 인구는 55만명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으로 인구는 급증했다. 평안남북도 등 서북지역 주민을 비롯해 이남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향했다. 이 교수는 “당시 존재하던 부산의 교회들은 피란민으로 가득 차서 예배당도 모자라 사택까지 초만원을 이뤘다”며 “전국 각지의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 목회자와 신자들이 몰렸다”고 말했다.
부산 피란민 교회의 역사는 평양교회(현 대청교회)와 함께 시작한다. 칼빈대 4대 교장을 지낸 고(故) 김윤찬 목사가 설립했다. 김 목사는 37년 평안남도에서 담임 목회를 시작해1951년 6월 10일, 부산에 첫 피란민 교회를 세웠다. 이후 채필근 목사와 함께 피란 목회자를 모아 평양노회를 조직했다. 이 노회는 지금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통합 교단의 평양노회 모체가 됐다. 교회는 이후 서울 평안교회를 개척했다.
광복동 대청동 보수동 등에도 피란민 교회들이 속속 세워졌다. 대성교회(1950) 영도교회(1951) 구덕교회(1951) 모라교회(1951) 양정중앙교회(1951) 연산제일교회(1951) 영도중앙교회(1952) 산성교회(1952) 감만교회(1953) 등이다.
영락교회도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 대구 제주 등지에 교인들이 집결했다. ‘피란 영락교회’는 1951년 1월 7일 부산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성도 30여명이 고려신학교에 모였으며, 그날 당회를 열고 “피란 중 교회 당회는 부산에 둔다”고 결의했다. 그 다음 주인 14일부터는 대청동에 있는 ‘새들고아원’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렸다. 현 부산영락교회의 시작이다.
당시 피란 교인 수는 매주 증가해 고아원 앞 정원에 천막을 치고 예배할 정도였다. 매주 평균 700명이 모였다고 한다. 교회는 유리방황하는 피란민도 위로했는데 전도대를 조직해 국제시장 등에서 전도했으며, 철도병원에 후송돼온 부상병들을 찾아 위로했다.
‘평양노회사’에는 1951년 광복교회의 야외예배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오월 첫 주일 보수산에는 100∼150명이 넘는 교인들이 올라왔다. 사회는 김윤찬 목사가 맡았고 김인서 장로(후에 목사가 됨)가 ‘예루살렘을 생각하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눈물 어리고 목 메인 기도 소리는 평양성을 그리워하는 그들의 마음, 객고에 시달리고 괴로움에 이지러진 마음, 고향을 그리며 무엇인가 갈급하게 찾는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드리는 제단으로 공중에 메아리쳤다. 찬송가는 울음소리로 변했다.”
부산 교회들은 회개와 구국기도에도 앞장섰다. 교회와 신자들은 전란의 책임이 교회 분열 등 교회에 잘못이 있다고 회개와 자성을 시작했다. 당시 구국기도회 형태는 두 가지였다. 피란 성도들의 회개집회와 전란에서 나라를 구해달라는 구국기도회였다.
회개집회는 초량교회가, 구국기도회는 부산중앙교회가 담당했다. 회개집회는 1907년 평양 대부흥과 유사했다. 온갖 죄악을 고백했고 회개의 눈물이 좌중을 압도했다. 신자를 버리고 도망 온 죄, 7계(간음)를 범한 죄, 금전상 범죄, 우상숭배 등이 많았다.
6·25전쟁은 평양 대부흥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북 교회가 부산에서 이남 교회와 만나는 계기가 됐다. 부산장신대 탁지일(교회사) 교수는 “기독교인들이 마지막 피난처였던 부산 지역으로 모이게 됨으로써 부산은 서북교회와 비서북교회가 공존하는 실험장이 됐다”고 말했다.
대청교회 이석호 목사도 “서북 지방을 통해 전수받은 복음의 씨앗과 대동강에서 포로로 잡혀 순교의 길을 걸었던 토마스 목사가 전한 복음의 씨앗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장로교 선교부와의 만남을 통해 만개했고, 이렇게 세워진 교회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쪽 부산에 이식됐다”고 말했다. (사진-당시 천막교회와 교인들)
2015-01-09 11:18:45 read : 790
*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 살다보면 마음 아파할 일이 종종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아픈 사람은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그 결과는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죄 된 일로 골몰하며 근심하는 사람은 그 결과가 불행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울어도 아파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6.25당시 피난 온 기독교인들은 죽기 살기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려 달라고 부르짖으며 신앙으로 견디고 버티며 사업도 성공했고, 남한 기독교 부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안정되고 발전 된 삶에서 세속화한 신앙을 안타까워하며 모든 기독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또 울어야 할 것 같습니다.-이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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