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야기

144 철 가방이 금배지 기적 이루다

행복을 나눕니다 2010. 3. 16. 07:12


철 가방이 금배지 기적 이루다
그 후 눈물과 기도… 이제 다시 제자리에 ‘철 가방, 금 배지를 달다.' 
주안에서 받는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다른 말이다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장경수 전 국회의원이 기적 같이 당선됐을 때 붙여진 신문기사 제목이다.

나는 1958년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 전남 순천시 상사면 두메산골의 무속신앙 가정에서 자랐다.

미션스쿨인 순천 매산중학교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가정 형편이 나빠서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청운의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했다.

“손님! 손님이 주문하신 자장면을 안 드시고 가시면 저는 식당 주인에게 맞아 죽어요. 제발 드시고 가세요. 네? 한 번만 봐주세요.” 하루는 간자장면을 시킨 손님이 10분이 돼도 나오지 않자 버스시간 때문에 음식을 못 먹겠다며 나가버린 것이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시외버스에 막 올라타고 있는 두 손님을 붙잡고 애원했다. 사장은 손님을 놓쳤다고 난리였다

막노동을 하면서도 책은 놓지 않았다.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해 명지대 행정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연세대(행정학)와 한양대(경영학)에서 석사학위, 단국대(행정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안산시의 신당연대를 추진했다.

새벽 4시면 매일 새벽제단을 쌓았다.
“주님! 2004년 4월 총선에 출마하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처음부터 막아주시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화끈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기도가 다윗의 물맷돌이 되게 하시어 골리앗 같은 안산 땅의 이마에 박히게 하소서….” 17대 국회의원 선거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재선 출신의 전 장관을 압도적으로 이기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자율방범대 출신인 무지렁이가 당선되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사실 두려웠다.
돈도 없고 중앙정치 무대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사표를 던졌다.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절박감이 느껴지면서 행동이 과감해졌다.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외우고 또 외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유권자들은 나의 진정성을 믿었다.
안산시 상록갑 유권자들은 압도적 표 차로 신뢰를 확인해줬다.
그러나 철 가방 신화는 단 한번의 짜릿한 경험으로 끝나버렸다.

18대 국회에 도전하려 했으나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밀려 공천 받지 못했다.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는데 기막힌 결과였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시신경이 마비돼 실명위기를 겪었다.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하루에 수 차례 자살 충동이 일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위와 장의 기능장애로 쓰러졌다.
삶과 죽음 두 갈래 마음이 밀물과 썰물이 되어 내 마음을 스치고 갔다.

붙잡을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다. 기도에 목숨을 걸었다.
기도원 순례에 나섰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식으로 예배와 찬양에 매달렸다.

금식 중에도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욥기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복음송을 부를 때면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기도원 원장님의 말씀이 나를 살렸다.

“지금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성전에 인생을 포기하고자 하는 형제님이 계십니다.

마음을 돌리세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 마냥 온몸이 찌르르 전율을 느꼈다. 눈을 감았다.
“하나님 지금까지 내 고통을 다 알고 계셨군요. 내 마음속을 다 꿰뚫어보고 계셨군요.”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달았다.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굳었던 마음이 깨지기 시작했다.
골고다의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신 예수님이 보였다.

그리고 나를 온전케 하기 위해 시련과 연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노라고 서원하였다.

나는 기도원에서 내려와 고급 승용차를 팔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올챙이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25년 전 단칸방 시절로 돌아가는 거야.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는 거다.

그렇다.
하나님은 금 배지를 회수하셨지만 금가루보다 더 귀한 것을 주셨다.
한양대 산업경영 디지털대학원 겸임교수 자리와 쇠를 다루는 일이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경기도 안산에 있는 조그마한 공장에서 프레스 금형과 쇠를 자르고 깎는 일을 한다.
일당 8만원의 비정규직이다.
이웃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 어떻게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느냐’고 하면 빙그레 웃는다.

“예수님께서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하신 적이 있나요?” 틈틈이 전도지 가방을 메고 노방 전도를 나간다.
“예수 믿으세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가까운 교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사진-백산사자)

” 그리스도가 주신 자유로 인해 내 삶은 완전히 변화됐다.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다른 말이다.

*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 (잠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