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일 저런글

124 고사리 손들의 봉사 훈련

행복을 나눕니다 2010. 1. 26. 07:18


고사리 손들의 봉사 훈련
독거노인들에 반찬 배달. 이웃 반찬 가게서 무료 제공
어려서부터 봉사 가르치려고. 청량리 어린이집 원아들


지난 19일 오전 11시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쪽방촌의 한 단칸방 쪽문을 열고 꼬마 아이 8명이 "할머니"하며 부르자 윤화자(81) 할머니가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왔다. 아이들이 어묵볶음·파래무침·김치·잡채가 담긴 반찬통과 과자 상자를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음식 꾸러미를 받아든 할머니가 아이들 손을 잡고 방으로 이끌었다. 어른 2명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할머니 방에 증손자뻘 아이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할머니를 찾은 아이들은 동대문구 구립 청량리 어린이집 지혜반 6~7세 아이들이다. 어린이 집 송주아(43) 원장은 "아이들이 어려서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지만 나중에 크면 좋은 일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고 했다. 아이들은 지난해 9월 '클린 어린이 자원봉사대'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두 번씩 어린이집 주변 쓰레기 줍는 일을 했다.

송 원장은 "아이들이 겨울에도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다가 독거노인 반찬 배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봉사에 나선다고 하자 어린이 집 인근 반찬가게 주인이 무료로 음식을 제공했다.

할머니가 식사를 시작하자 아이들이 서툰 젓가락질로 반찬을 숟가락에 올렸다.
할머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45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지낸 할머니가 처음 맛보는 손자·손녀 재롱이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온다고 해서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꾸미고 멋진 안경도 썼다"고 했다. 가족이 없는 윤 할머니는 전 재산인 단칸방 보증금 200만원도 '내가 죽으면 어려운 아이들에게 써달라'며 어린이집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할머니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 되자 김영찬(7)군이 큰 목소리로 "할머니 다음에 또 올게요.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영찬이 머리를 연방 쓰다듬었다. 곁에 있던 박혜림(7)양이 "할머니, 다음에는 어깨하고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혜림이 얼굴을 손으로 감싸 안으며 "아이구 우리 아기"라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아이들을 태운 차가 떠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윤 할머니는 아이들이 지나간 찻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린이 집의 다른 아이들 7명은 이성원(79) 할아버지가 사는 4층 옥탑방을 찾아갔다. 방에는 할아버지가 용돈 마련하려고 모아놓은 폐지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이상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안을 두리번거리다 과자 상자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아이들이 "동전 모아 사왔어요"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대견하다는 듯 고사리 같은 아이들 손을 꼭 잡았다.

이 할아버지는 아들이 하나 있지만 7년 전부터 소식이 끊겨 혼자 살고 있다. 장애로 말 못하는 손자 소식이 궁금하다고 했다. 집을 나서는 아이들을 배웅하며 할아버지가 연방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절대 아프지 말아야 해. 건강하게 커야 해."
'이영민 기자 ymlee@chosun.com 기자. 고한솔 인턴기자(전남대 신문방송학과 4) 기자. 오진규 인턴기자(국민대 언론정보 4년) 사진-때죽나무

*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시71:17)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