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곤 목사 소천 장례
한국 대학생 선교회 창설, 엄숙하고 평화로웠던 영원한 청년
300만 성도가 천만으로 일어나게 한 것은 대학생 선교회 [CCC] 사역 덕분
제자들, "복음의 깃발, 이제 우리가 들겠습니다"
가을의 햇살이 따사로운 10월 2일 故 김준곤 목사는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행복했던 소풍을 마치고 하나님과 먼저 간 성도들이 기다리는 천국으로 떠났다. 경춘 국도 옆 묘원 언덕에 가을바람은 부드러웠고 가을하늘은 편안하게 그의 무덤을 덮어주었다.
이른 아침 6시 30분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길자연 목사(예장합동 증경총회장)가 설교한 출발예배를 마치고 고인의 시신은 장례예배가 있는 서울 저동 영락교회(이철신 목사)로 떠났다.
영락교회에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영원한 청년 故 김준곤 목사를 기리기 위한 5천여 명의 제자와 각계 인사, 한국교회 성도들이 자리해 평화롭고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장례예배를 드렸다.
장례예배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엄신형 목사가 맡았고 기도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김요셉 목사가 했다.
예배 설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김삼환 목사가 사도행전 20장 17~21절 말씀을 들어 전했다. 김삼환 목사는 설교문을 차분히 읽어 가는 동안 고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삼환 목사는 [예수님은 우리나라를 사랑하셔서 어려울 때 목사님을 주셨다. ]고 회상하며 300만 기독교인이 천만으로 일어나게 한 것은 CCC 사역 덕분이었다. CCC를 세워 젊은이들의 마음에 복음의 불을 지펴 제자들이 각 분야에서 복음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 목사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를 외치며 우셨던 예수님처럼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였다.면서 고인이 남긴 시 [민족복음화의 꿈]의 내용을 언급했다.
하나님의 참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목사님을 통해 쉽게 전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다. 바로 사영리다. 그 덕에 예수 십자가 한편 강도처럼 한순간에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
김삼환 목사는 말씀을 마치며 그가 좀 더 젊었다면 우리 민족의 현재 문제는 우리에게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이룬 일은 쇠하지 않았고 앞으로 이뤄질 것이다. 우리가 그가 걸었던 사도의 길을 따라야 할 것이다.며 김준곤 목사의 뜻을 이어갈 것을 권면했다.
고인의 발자취에 대해 박영률 목사(전 CCC 총무)가 소개한 후에는 조시와 조사가 이어졌다. 박종구 목사(월간목회 대표)와 김성영 목사(전 성결대 총장)는 고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움을 담은 시를 눈물로 낭송했다.
이날 예배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조전을 보내오기도 했다. 조화와 조전을 보내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이 청와대 한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조사에는 스티브 더글라스(국제CCC 총재), 황우여 의원(국가조찬기도회장), 전용태 장로(성시화운동 대표본부장), 윤여표 식약청장(CCC나사렛형제들)이 했고 조가는 줄리어드 음대 시절 김준곤 목사를 만났던 제자 김인혜 교수(서울대)와 이태원 교수(명지대)가 그가 듣기 좋아했던 [거룩한 성]을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하며 불렀다.
생전에 힘있는 목소리로 복음을 외치는 김준곤 목사의 추모영상이 나오자 예배식장은 눈물의 바다를 이뤘다. 모든 물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답하는 김준곤 목사와 CCC의 백문 일답을 영상을 통해 김준곤 목사가 질문하고 추모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외칠 때는 모두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가슴은 뜨거워졌다.
김준곤 목사가 민족복음화운동의 슬로건으로 만든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를 박은규 CCC 전국총순장의 선창에 따라 외치고, CCM 가수 지영과 학생대표단이 [민족복음화의 꿈]을 부를 때는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예배당에 가득했다.
모두가 기립해 민족복음화의 꿈을 따라 부르면서는 故 김준곤 목사의 복음 전파와 나라사랑만을 위해 살았던 그 뜻을 이어가겠다고 각오하며 모든 참석자들은 흐르는 눈물에 떨리는 목소리였다.
이만신 목사(한기총 명예회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친 후에는 운구는 영락교회 밖으로 운구 됐고 참석자들은 조용히 찬양을 부르며 뒤따랐고 이후 장지인 경춘공원묘원으로 떠났다.
추석 연휴 첫날이라 극심한 정체를 예상했지만 전혀 막히지 않은 가운데 묘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지에 도착해 드린 하관예배는 고인을 떠나보내기 아쉬운 제자들의 마음이 이어져 2시간 여 동안 진행되기도 했다. 김준곤 목사의 비서실장을 지낸 제자 정인수 목사(국제CCC 부총재)는 고인이 결혼식 주례와 장례예배에서 늘 전하고 좋아했다는 시편 23편을 가지고 말씀을 전했다.
목사님은 '성경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곤 했다. 목사님은 4대 절대, 3중 헌신을 기르치셨고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자.고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두상달 장로(기아대책 이사장)는 고인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던 은혜와 동역했던 추억을 나눴고, 김경수 장로(성시화운동 미주본부장)는 강사료로 받은 돈을 모아두었다가 성시화 집회를 열때마다 4만불씩 3번을 보내주었던 것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고인의 사랑을 받았던 강용원 간사(전 미주KCCC 대표)와 이상규 간사(CCC 원로간사) 등도 고인을 추모했다.
또 이 자리에서는 마포교회 정승학 장로가 선교를 위한 고인의 뜻을 기리며 해외선교 사역을 하는 간사들을 위해 써달라며 1억원 기탁을 작정하기도 했다.
하관예배를 마치고 동역자와 제자들은 그의 무덤에 헌화하고 흙을 뿌리고 정성스럽게 흙을 밟아주었다.
9월 29일 11시 11분 김준곤 목사의 소천으로 우리가 슬픈 것만은 아니다. 그의 삶에는 주님을 위한 열정과 열매가 있었고 하나님 품에서 다시 만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고인은 평온하게 곁을 지킨 사람들도 모르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장례일정 중에 모두가 고인의 미소와 나직하고 조용한 목소리를 기억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전파를 강단에서 외칠 때 그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강렬하고 호소력 짙었다. 이제 남은 자들이 그가 손에 들었던 진군기가 쓰러지기 전에 다시 쥐고 앞으로 달려나가야겠다. 뉴스파워-이인창
민족 복음화의 꿈 (김준곤 목사)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
어디를 찔러도 내 몸같이 아픈 조국
이 민족 마을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탯줄, 기도의 젖줄 말씀의 핏줄에서 자라게 하시고
집집마다 이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기업주들은 이 회사의 사장은 예수님이고 나는 관리인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두메마을 우물가의 여인들의 입에서도
공장의 직공들 바다의 선원들의 입에서도
찬송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각급 학교 교실에서 성경이 필수과목처럼 배워지고
국회나 각료회의가 모일 때에도 주의 뜻이 먼저 물어지고
국제시장에서 한국제 물건들은 한국인의 신앙과 양심이
으레 보증수표처럼 믿어지는 민족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지상 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한국 교회를 비춘 횃불"
9월 29일 오후 5시 고 김준곤 목사 위로예배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의 설교 전문.
주님 제2의 김준곤이 필요합니다. 데리고만 가지 마시고 또 한 명을 보내주세요.
첫 위로예배에서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원로목사) 설교 전문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8장 18절~20절)
이 말씀을 김준곤 목사님이 평생 마음속에 담고 사셨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김준곤 목사님은 이 말씀대로 살려고 평생을 헌신한 주님의 진실한 종이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김 목사님이 소천하셨다는 말을 듣고, 한국 교회를 환하게 비추고 있던 횃불이 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CCC에서 실제로 몸을 담고 사역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사역을 하며 40여 년을 달려오면서 김 목사님을 짝사랑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김 목사님을 항상 흠모하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사역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항상 먼 발취에 서서 목사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글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 많은 도전을 받으면서 김 목사님을 마음으로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를 바라볼 때마다 김준곤 목사님의 발자취를 발견하지 못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오늘 아침에 김 목사님이 천국으로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주님 제2의 김준곤이 필요합니다. 데리고만 가지 마시고 또 한 명을 보내주세요. 라는 기도가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느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 목사님은 제가 볼 때 우리가 경험한 한국 교회의 부흥의 시작해서 1950년대와 1960년대 1980년대 중반까지 부흥의 놀라운 일에 결정적인 밑거름 역할을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교회사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목회적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은 오늘의 한국 교회에 이만한 기반을 닦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김준곤 목사님의 사역을 빼놓을 수 없어요.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 엄청난 청년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어요. 목회자가 되어서 교회의 문화를 바꿔났어요.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 각 분야에 흩어져서 기독교의 문학, 기독교의 철학이,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알게 모르게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한 사람이 한 생을 통해서 사역을 할 수 있는 분량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김준곤 목사님의 사역을 따라갈 사람이 한국 교회의 역사에 있느냐라고 반문을 하면 찾기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목회자 입장에서 이렇게 평가하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김준곤 목사님이 목회자들로부터 평가를 덜 받았을 수도 있어요. 좀 더 시간을 두고 역사가들이 평가를 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김준곤 목사님의 역할은 놀라운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가 있게 한 장본인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과감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김 목사님을 한국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동안 은혜 입은 우리가 머리 숙여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가셨지만 그분보다 더 탁월한 지도자를 보내주셔서 축복해 주실 것을 믿고 소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유족들은 훌륭한 남편, 훌륭한 아버지, 훌륭한 형제와 함께 했던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분이 기도하고 그분이 평소에 말씀하셨던 자자손손이 축복을 누리고 큰 역할을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이홍림 기사입력: 2009/09/29 [23:01] 최종편집: ■ 뉴스파워
(딤후 4 :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故 김준곤 목사 빈소 찾아
정운찬 총리,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정운찬 총리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정문준 현 한나라당 대표가 故 김준곤 목사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정 총리는 고등학교 시절 CCC의 십대 선교 사역인 Hi-CCC 활동을 하며 자랐다며 옛 시절을 회상했 ... / 김선진
"50년을 내다보았던 김준곤 목사님"
NCCK 회장 김삼환 목사 조문하고 고인의 삶 추모
조문을 마친 김삼환 목사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준곤 목사님은 성자입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이 땅 전체에 씨를 뿌리신 한국 전체의 목사님이었습니다.고 단언하며 고인을 표현했다. 또 현재 한국 기독교계를 이끌어가는 주축이 되는 목사님들은 모두 김 ........ / 이인창
영원한 청년 김준곤 목사 소천
향년 85세 일기로 노환으로.. 빈소 신촌 세브란스병원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하고 성시화운동 총재로 사역하며 대학생 선교와 민족복음화 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김준곤 목사가 오늘 9월 29일 오전 11시 11분 85세를 일기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노환으로 소천했다. 장례는 고인이 한국 교회에 기여한 공 ............... / 이인창
잊을 수 없는 김준곤 목사의 발자취
故 김준곤 목사 입관예배 드리고 고인의 뜻 새겨, 김상복 목사 설교
오늘 30일 오후 2시 故 김준곤 목사 입관예배가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결식장에서 있었다. 한국 교회의 스승이자 어버이와 같은 김준곤 목사를 떠나보내는 300여 명의 조문객들은 안타까움에 눈물을 훔치면서도 평생을 주님께 헌신한 고인의 유지를 이어가겠다 ................. / 이인창
"바울 처럼 십자가만 알았던 목사님"
30일 오전 위로예배 김명혁 목사 설교, 발인은 2일 영락교회에서
위로예배 설교는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가 맡았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준곤 목사님을 그리면서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김명혁 목사는 김 목사와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하며 고인에 대해 회상했다. 김명혁 목사는 김 목사님은 사도바울처럼 십 .................. / 이인창
조용기 김장환 목사, 故고 김준곤 목사 조문
이호문 감독과 이영훈 목사도 조문..오후 2시 입관예배 예정
30일 오전 6시 50분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조문을 했다.이어 7시 20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와 이영훈 담임목사, 숭의교회 이호문 감독이 조문을 했다. 오전 10시에는 위로예배를 드린다. 설교는 김명혁 회장(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 / 이인창
한국교회를 위해 보내주신 위대한 전도자
박용규 박사(한국교회사연구소장, 총신대신대원)의 故 김준곤 목사 추모사
박용규 박사(한국교회사연구소장, 총신대 신대원)가 29일 오전 11시 11분에 소천하신 김준곤 목사를 추모하는 글을 보내왔다. 다음은 박용규 교수의 추모의 글 전문이다. ■뉴스파워
2009년 9월 29일 김준곤 목사(1924-2009)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는 한국 교회와 아시아 기독교를 위해 주님이 특별히 불러 사용하신 빛나는 별이었다. 김준곤 목사야말로 이 땅에 한 인물이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는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 지도자였다.
존 우드브리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확실히 김준곤은 디 엘 무디, 빌리 선데이, 스펄전, 로이드 존스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는 한국이 낳은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다. 그는 한국교회사적으로 다음 몇 가지 점에서 너무도 크고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첫째, 1970년대 한국교회 부흥을 견인한 주인공이었다.
지난 125년의 한국 개신교 역사를 회고할 때 한국교회에는 몇 차례의 대 부흥이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과 1970년대 대중전도운동은 가장 대표적인 한국교회 부흥운동이었다. 이 두 부흥은 마치 초대교회 오순절이나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과 2차 대각성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의 기적을 가능케 만든 영적 원동력이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이 길선주였다면 1970년대 대중전도운동의 주역은 김준곤이었다. 김준곤은 과거 길선주가 했던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결실로 응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꿈꾸었던 것보다 더 크고 놀랍게 한국교회를 축복하셨다.
둘째,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창설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피 뭍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을 심어주었다. 현재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옥한흠, 홍정길, 하용조, 이동원, 김인중이 대변하듯 이 때 그가 외친 비전과 꿈을 먹고 거룩한 대열에 합류했던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기적은 불가능했다. 어디 이들 뿐인가! 그가 이끈 EXPLO '74에 참가해 주님을 영접하고 주의 종으로, 평신도 지도자로 쓰임 받은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셋째, 초교파선교단체와 교회를 연결시켜 초교파선교단체의 열정을 한국교회에 이식시켜 주었다. CCC의 성경교재 텐 스텝과 전도 소책자 사영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구원의 확신을 가졌는가!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사영리를 통해 주님을 만난 이들이었다. 현대 한국교회 성장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제자훈련이 하나의 운동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영적 토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넷째, 한국교회의 근대선교운동을 견인한 주인공이었다. 그는 부흥의 궁극적인 목적이 선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빌 브라이트가 지적한 대로 그는 한국교회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와 금식을 몸소 실천하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선교의 불을 질렀다. 이들 젊은이들은 불타는 가슴을 안고 오대양 육대주로 달려갔다.
다섯째, 근대 한국의 복음주의운동의 저변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복음주의운동은 1970년대 대중전도운동, 초교파선교단체, 복음주의출판사, 그리고 몇몇 의식 있는 복음주의교회의 태동과 깊은 연계성을 지니며 발전했다. 이 일련의 흐름 속에 김준곤은 언제나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미국 빌 브라이트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가지며 한국의 초교파선교단체, 대중전도운동이 건강한 신학의 토대 위에 구축할 수 있도록 도전을 주었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연합운동에 마음을 열도록 도전을 주었고 진보주의자들에게 성경의 진리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어디 그가 남긴 족적을 위에서 언급한 몇몇 공헌들에만 국한시키겠는가! 먼 훗날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 더 클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그가 남긴 유산들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통일의 그 날을 앞당기고 그가 미처 다 하지 못한 아시아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더욱 충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오, 주여! 한국교회를 축복하시고 영광을 받으소서!
뉴스파워 (사진-모감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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