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야기

101 두려워 마라, 두려워 마라

행복을 나눕니다 2009. 7. 21. 12:56



두려워 마라, 두려워 마라
허정무 국가 대표 축구팀 감독 부인 최미나 씨의 기도
승패로 평가받는 고독한 남편을 위한 아내의 응원가

 

예선전 마지막 경기였던 이란전에서 작은딸과 붉은 색 옷을 입고 나란히 앉아 응원하던 모녀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그들의 미모보다 아름다웠던 것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던 아내 최미나의 모습.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아내는 경기 내내 자신과 남편을 위한 용기의 기도를 되뇌고 있었다. 그 이틀 뒤, 서울 반포동의 허정무 감독 자택에서 아내를 만났다. 


 [정말이지, 이번엔 느낌이 좋아요. 이대로 가면 틀림없이 잘될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너무 많이 도와주신 것 같아요. (기도를 하다) 당신은 누구신데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도와주시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니까요(웃음).]

 

지난 6월 17일 이란전을 끝으로 한국 축구 대표팀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이 마무리됐다. 20년만의 [무패] 기록으로 결선에 진출한 대표팀 사령탑 허정무 감독의 아내 최미나는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만연했지만, 이내 남편이 앞으로 1년 동안 지고 가야 할 책임감의 무게에 수심이 밀려온다.

 

[선수 시절엔 팀의 승패는 안중에 없었어요. 내 남편만 골을 넣으면 그저 기뻤거든요. 코치가 되니까 경기에 지면 감독님 볼 낯도 없고 경기장 나가는 것도 부담스럽더라고요. 수석 코치가 되고 나니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 감독이 되면 좀 편할까? 싶었죠(웃음). 그런데 감독이 되니까 이제 선수들 부상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쓰게 되더라니까요.]

 

허정무 감독의 얘기면서, 지난 29년 간 축구 스타의 아내로 살아온 최미나의 심정 변천사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남편의 뒤에서 울고 웃지만, 축구 감독으로서의 남편에 대해서는 감히 평가할 엄두를 못 냈던 한 사람. 바로 아내 최미나씨였다.

 

*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해낼 것이라 믿었어요
[사실 지난해 계속 비기기만 한다고 (제목을) 허무라고 낸 기사들을 보면서 남편이 마음고생 무척 많이 했어요. 물론 가족들도 맘고생을 많이 했죠. 저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그전부터 있었던 어깨 통증이 심해지더라고요. 1년 전에 MRI를 찍었을 때만 해도 목 디스크이긴 하지만 수술은 안 해도 될 정도라고 해서 물리 치료를 받으며 견뎠는데, 지난해 (남편 일로)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밤에 자다가 끙끙 앓으며 운 적도 있어요. 목 디스크는 손가락 끝까지 통증이 오더라고요.

 

2007년 12월 국가대표팀 감독 취임 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낸 남편에 대한 언론의 신랄한 평가가 쏟아지면서 아내의 맘 고생도 심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반드시 해낼 것이라 믿었지만 사람들은 조급했다. 무승부만 한다며 허정무 이름 석자에서 가운데를 빼고 [허무]로 치부하는 언론에 아내는 못내 섭섭했다.

 

[몇 달 전에는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글을 써서 신문사에 건네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반드시 해낼 거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2000년에 이미 시행착오가 있었잖아요. 이번만큼은 남편에 대한 믿음이 있었거든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무릎 부상을 당했는데도 무릎이 깨져라 뛰어 결국 해낸 사람이거든요.](중략.......)

 

* 감히 감독 역할은 평가 못하지만, 가장으로서는 최고
[감독으로서는 감히 평가하진 못해도 제 남편으로서, 애들 아빠로서, 또 할아버지로서는 최고예요. 다시 태어나도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은 남편이에요. 딸들한테도 얼마나 자상한지 아무리 바빠도 자기 스케줄을 조정하면서까지 공항에 딸을 데려다 주고(작은딸 허은씨는 승무원이다) 일을 볼 정도예요.](중략......)

 

[예전부터 합숙 훈련 나가 있으면 신경 쓸까 봐 집 얘기는 일절 안했어요. 운동에만 전념하라고 애들이 아파도 얘기를 안 했죠. 지난해 제가 남편 때문에 맘 고생을 해서 그런지 어깨 통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목 디스크라고 하더라고요. 의사는 그동안 어떻게 참고 있었느냐면서 당장 입원해 검사 받고 수술해야 한다고 하는데 남편이 북한 전을 앞두고 있던 때였어요. 제가 어디 아프다고 하면 엄청나게 신경 쓰는 걸 알기 때문에 입원해서 검사 받으라는 의사를 설득해서 통원 치료를 받았죠. 병원에서는 경기장에도 못 나가게 했는데 고집을 부려 결국 통증클리닉에서 링거 주사를 맞고 응원하러 나갔어요(웃음). 북한 전에서 이기고 난 다음 날인 4월 2일 아침에서야 그 날 수술한다고 말했더니 너무 놀라더라고요.]

 

걱정하는 남편에게 그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사실 목뼈 3마디에 걸친, 잘못하면 뇌신경과 성대,식도를 건드릴 수 있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아내의 수술 폭탄 선언에 어찌나 놀라고 가슴이 아팠던지 눈물까지 흘렸다는 허 감독.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지금은 회복기에 접어들었지만 최미나는 허정무호의 승전 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본지와의 인터뷰도 가까스로 나오는 목소리로 힘들게 했던 터다.

 

■원래 집에 손님이 많이 와요. 결혼하고 바로 네덜란드(PSV 아인트호벤)에 갔을 때도 우리집이 한국 대사관 같았어요. 독일에서부터 한국 선수라며 경기를 보러 오신 분들에, 한국 사람이 워낙 없던 곳이라 주변의 한국 분들이 많이 찾아오셨어요. 그땐 사골국에 김치로 대접을 많이 했죠. 밥도 할 줄 모르는 채 시집을 갔는데 그 때 얼마나 부엌일을 많이 했는지 손이 다 망가졌을 정도예요. 그때 생각이 나서 그런지 남편은 지금도 제게 부엌일을 못하게 해요. 밖에 나가서 먹는 게 더 싸다면서 나가자고 하죠(웃음).(중략.........)

 

[남편은 거짓말을 절대 못해요. 아주 싫어하죠. 박지성 선수를 당신이 발탁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야, 이 사람아. 소개를 받아서 가봤지 그러더라고요. 당시 명지대 감독과 친분이 있어 두 사람이 바둑 두다가 허 감독이 져서 박지성 선수를 뽑았단 얘기도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요. 남편 말로는 그 때부터 박지성 선수가 기량이 좋았대요.]<여성중앙 7월호에 자세히 나와있음>
기획_강승민 기자 취재_장헌주(자유기고가) 조병각(studio lamp)

 

*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