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야기

3571. 최북단 마을, 철원 이길교회 이야기

행복을 나눕니다 2020. 12. 31. 00:00

 

최북단 마을, 철원 이길교회 이야기

권영일 목사 은퇴 미루고 ‘민통선 목회’ 25년… 갈급한 접경에 신앙의 맥을 잇다

 

  권영일 은퇴목사가 민통선 마을인 강원도 철원군 이길리에서 이곳 유일한 교회인 이길교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철원=신석현 인턴기자

 

이별의 시간이 다가와서일까.

교회 시설 하나하나를 둘러보며 설명하던 권영일(78) 목사의 목소리가 금세 메었다. “이곳이 주일학교 아이들 예배드리던 교육관 같은 곳이었고, 여긴 그동안 저희가 썼던 사택이 있던 곳….”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형체만 남은 공간이지만 권 목사는 그 낡은 공간을 애틋하게 바라봤다.

 

햇수로 25년. 권 목사가 최북단 민통선 마을인 강원도 철원 이길리의 이길교회에 1996년 6월 부임한 뒤 보낸 시간이다. 교회가 83년에 지어졌으니 교회 역사의 3분의 2 이상을 함께한 셈이다. 후임자가 없어 은퇴도 미루고 목회를 이어온 지도 벌써 7년이 다 됐다. 그랬던 권 목사가 최근 뒤늦은 은퇴식을 했다.

 

지난 23일 교회에서 만난 권 목사는 멀리서 손님들이 온다고 교회 난방장치를 수리 중이었다. 그동안 차가운 공기를 데우려고 2대의 소형 히터를 틀어 놓고 있었다. 권 목사는 “올여름 50일간 비가 내렸다”며 “여기 있는 히터, 피아노, 강대상 모두 새로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침수 피해는 심각했다. 주민들 피해야 이루 말할 수 없고 교회도 건진 건 장의자뿐이라고 했다. 수해로 유실된 지뢰들이 마을 인근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권 목사는

“교회 외벽에 물 띠를 보면 알겠지만 반 이상이 잠겼다”며 “한국교회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복구하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길리는 상습침수지역이다. 부임 한 달 만에 물난리를 겪기도 했다.

 

그때는 올해보다 더 심했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다 잠겼는데 집들은 지붕만 보였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권 목사는 “집사람을 마지막 트랙터에 태워 보내고 난 교회로 왔다”며 “물이 점점 차서 2층으로 올라갔다가 종탑까지 올라갔다.

결국 군 헬리콥터에 의해 구조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때 북한 오성산에서 환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전용 마을을 조성하라고 해서 생긴 게 이 마을”이라며 “부임하고 올해를 포함해 벌써 세 차례 수해를 겪었다. 최근 마을 집단 이주 얘기가 나오는데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목사는 서울 태생으로 총신대를 졸업했다.

휴전선 인근 마을까지 와서 살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서울에서 개척했지만 교회가 있던 곳이 시유지여서 재개발되는 바람에 성도가 모두 흩어졌다. 낙담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에 이길교회 전임 목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권 목사는 “전임 목사가 나랑 동기다. 병으로 시력을 잃으면서 후임자를 찾다 내게 연락한 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왔다. 민통선인지도 몰랐다”며 “하나님 뜻이거니 하고 왔다”고 말했다.

 

수해로 인한 어려움은 있었지만, 권 목사는 이길리 목회가 행복했다고 말했다.

부임 3년 만에 3~4명이던 성도 수가 30여명으로 늘었다.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예배도 생겼다. 매년 성탄절 때 문학의 밤을 열었고 교회엔 온기로 가득했다.

새로 유입되는 인구가 거의 없는 마을 특성상 성장은 거기까지였지만, 권 목사는 그때가 가장 활기찼었다고 말했다.

 

여느 시골 마을이 그렇듯 이길리도 고령화됐고 도시로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윗마을에 있던 초등학교도 10여년 전에 문을 닫았다. 권 목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아직도 신앙 있는 친구들은 명절 때 집에 오면 여기서 예배를 드리고 간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역사하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은퇴하지 않고 이길교회에 남았던 이유를 묻자 권 목사는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교회를 지켜야 했으니까”라고 답했다. 이곳에는 교회가 이길교회 하나뿐이다.

권 목사는 “최근 아내의 병이 심각해지면서 ‘내 목회는 여기까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행히 후임 목사님을 구해 이렇게 퇴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권 목사는 “수해 때 물이 차는 교회에 남은 것도, 70이 넘어서도 계속 이길교회에 있었던 것도 모두 교회를 버려선 안 된다는 그 마음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 마음을 갖고 목회를 하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성도들의 위로 덕분이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국민일보 철원=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입력 : 2020-11-26 03:01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6726&code=23111649&sid1=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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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 사람은 차별하지만,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아무나 와도 좋소!

    한국은 옛날부터 차별이 심했습니다. 남녀 차별은 물론 양반 상놈으로 구분 지어 극심한 차별로 사람이 짐승 같은 처지에 놓인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빈부나 권력의 차별이 심하고 이런 현상은 어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세계도 아파트 평수를 가지고 따진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상처받고 병들고 명을 스스로 끊기도 한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 그러나 기독교 문화로 선진국 된 나라는 차별이 현저히 덜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차별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배워서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병든 자도 과부도 약한 자도 고아도 권력자도 서민도 똑같이 사랑하셨고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자기 공로나 경력이나 학벌이나 배경이나 환경에 대한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사랑받고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닮아 차별하지 않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차별하셨다면 모두 지옥 갔을 것입니다. 차별하지 않으시는 주님 은혜 감사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소원합니다.-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