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야기

2617. 호남에서 100년 전에 헌신한 선교사 기록관

행복을 나눕니다 2017. 5. 16. 06:34






호남에서 100년 전에 헌신한 선교사 기록관

"100년 전 호남 찾은 선교사들 헌신 생생히 느껴져"

      

유진벨·오웬·애비슨 선교 유적, 광주 양림동·순천 기독진료소

복음·교육·의료 전해준 현장

광주광역시 양림동의 한 건물 벽에 인근 역사 유적지가 지도로 그려져 있다. 유진벨, 애비슨, 오웬 등 선교사를 기념하는 건물이 즐비하다.

 

광주광역시 양림동의 한 건물 벽에 인근 역사 유적지가 지도로 그려져 있다. 유진벨, 애비슨, 오웬 등 선교사를 기념하는 건물이 즐비하다. /김한수 기자

"광주의 예루살렘을 아시나요? 여러분이 서 계시는 이곳이 바로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곳입니다. 100년 전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과 근대 의료, 교육이 시작된 발상지입니다."

 

지난 25일 오후 광주광역시 양림동 입구에서 김덕순 문화관광해설사는 전국에서 찾아온 목사·장로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둘러본 양림동 일대는 과연 '개신교 역사 타운'이었다. 양림동교회를 중심으로 오웬기념각과 간호대학, 호남신학대가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유진벨재단'으로 유명한 유진 벨(1868~1925), 의사 선교사로 장흥 전도여행 중 과로사한 오웬(1867~1909), 세브란스병원을 세운 애비슨의 아들로 광주에 근대적 농업실습학교를 세운 고든 애비슨(1891~1967) 등의 이름을 건 기념관이 걸어서 모두 10~15분 거리 이내에 모여 있다.

 

양림동은 19041224일 성탄 이브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당시 어린이 공동묘지였던 이곳에 찾아와 사택을 짓고 복음의 씨앗을 뿌린 이후 호남 선교의 거점이 됐던 곳. 현재는 '양림동문화마을'로 가꿔져 골목길 사이사이로 작은 화랑과 찻집, 한옥 고택(古宅)이 이어진다. 참가자들 사이에선 "서울 북촌(北村) 같네"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이날 순례에 참석한 사람들은 서울과 부산, 구미, 김천, 정읍 등 전국의 교회 목사와 장로 15. 전라남도는 지난해 도내의 개신교와 불교, 천주교, 원불교 성지·유적지를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순례길을 개발했다. 작년 불교와 개신교 언론을 대상으로 소개하는 행사를 했고, 이번엔 개신교 목사·장로를 초청해 12일 코스로 순천, 목포, 광주의 유적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

 

호남 지역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사역지. 언더우드를 파송한 미국 북()장로교가 서울과 서북 지역을 선교지로 삼았다면 남장로교는 호남지방을 맡았다. 목포는 1898년 유진벨과 오웬 선교사, 순천은 1913년 프레스톤과 코잇 선교사 등이 선교부를 개설했다.

순천시 기독교역사박물관을 탐방한 목사·장로 순례객들. 이들은 순천과 목포·광주의 개신교 역사 유적을 돌아보고 믿음의 선배들이 역경을 무릅쓰고 선교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순천시 기독교역사박물관을 탐방한 목사·장로 순례객들. 이들은 순천과 목포·광주의 개신교 역사 유적을 돌아보고 믿음의 선배들이 역경을 무릅쓰고 선교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실제로 답사한 이 지역들엔 개신교 유적이 잘 보존돼 있었다. 24일 오전 7시 버스 편으로 서울에서 출발한 순례단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순천의 기독진료소. 현재는 한국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으로 쓰이는 이곳엔 유진벨로 시작해 스테판 린튼과 존 린튼(인요한)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진 한국 사랑을 다양한 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진료소 바로 뒤로는 매산동 언덕에 '성경학교'에서 출발한 매산중·매산고·매산여고가 나란히 자리하고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도 인근에 있다. 순천시 인구 28만명 중 약 34%가 개신교 신자라는 역사의 출발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도록 자료와 시청각 교재도 잘 갖춰져 있었다.

 

순례단은 목포에서는 목포선교부와 고아들을 거두었던 윤치호 전도사와 부인 윤학자(일본명 다우치 지즈코) 여사의 노고가 서린 공생원을 방문했다.

 

순례를 기획한 최석호 목사(한국레저경영연구소)"신학교에서도 이런 역사의 현장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순례를 통해 개신교 130년 역사가 얼마나 풍부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예능교회 김오성 장로는 "선교사들의 헌신과 사랑에 감동받아 여러 번 눈물이 났다""곧 교회 체육대회가 있는데 순례를 다녀오시라고 순천·여수 가족여행권을 선물로 내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라남도는 앞으로 불교, 가톨릭, 원불교 등의 성직자와 신자도 초청해 다양한 종교 유적을 알릴 계획이다. 또 예약을 하면 각 지역 문화해설사의 상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있다. 전라남도 관광과 (061)286-5243

조선일보 광주광역시·순천=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 2017.04.28 03:03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28/20170428001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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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잘 사는 나라 젊은이들이 한국에 왔습니다.

      100년 전 당시 조선은 후진국이었으며 굶주리는 보릿고개가 있었고 삶의 질은 고사하고 연명하기도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빈약한 의료시설, 문화 수준, 사람 차별, 남녀차별, 사회 분위기 등의 환경이, 어려울 때였습니다. 그 시절에 한국보다 월등히 앞선 선진국 사람이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분들의 한국 생활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입니다. 일화가 있습니다.


서양의 화장실은 수세식인데, 한국은 재래식(웃기는 말로 퍼세식)입니다. 쪼그리고 앉아 변을 보는 것은 그렇다 치고, 여름에는 변기 통속에 득실거리는 벌레들 때문에, 서양 여성이 기겁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만큼 적응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분들이 잘사는 고국을 떠나, 모든 것이 열악한 조선으로 온 이유는, 감투나 사업차 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천한 신분이거나 노예도 아니었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요 귀한 신분이며 괜찮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 고국에 있으면 편하고 출세할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열악한 환경에서 죽을 수도 있는 조선 땅에 온 것입니다. 총 칼 들고 무장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조선인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그분들은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했고, 한국의 개화와 현대식 교육과 복음으로 국민 의식개혁을 도우며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인간적 수고와 고난이 많았을 것이나 그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충성하며.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1천만 명이 넘는 그리스도인이 있으며 세계 방방곡곡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선진국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그분들을 한국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한국 국민을 구원하는데 생을 바친 그분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표하며 그분들의 나라와 후손들이 복 받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에 감동되어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이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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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회 과정 알려주는 현장

[한국기독역사여행- 순천선교부거리와 린튼]

 

학교 담장이 예뻤다. 편안했다. 새순을 틔우는 느티나무 등이 담장과 어우러져 한국의 미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남녀 학생들의 싱그러운 웃음이 담 너머로 쏟아졌다.

 

지난 24일 순천매산여고 정문에서 바라본 캠퍼스 풍경. 정면의 석조건물은 등록문화재 126호 프레스턴가옥이다. 미국 남장로회 순천선교부 선교사 프레스턴의 사택이었다. 지금은 신앙지도실로 쓰인다.

 

24일 낮. 전남 순천매산중학교 담장을 따라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을 향하던 길이었다. 학교 정문을 마주보고 오른쪽길 담장이 기와를 얹은 토담장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학교 수위 아저씨가 학교 구경을 하라고 권했다. 선교사들이 세운 아름다운 건물이 있다고 했다.

 

호남기독학원’ ‘순천매산중학교동판이 교문 기둥에 박혀 있다. 교문 왼쪽으로 세월호 참사 3주년-세월호에 잠든 어린 영혼의 아픔을 함께 합니다고 쓰여진 노란 현수막이 쿵 가슴에 와 닿는다. 교직원과 학부모회, 학생회가 내걸었다. 교문 안에 들어서자 교실 건물 창문 아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라는 흘림 궁체가 인상적이다. 교문 안 정원 돌비엔 세상의 빛이 되라고 새겨져 있다. 매산중과 매산여고, 매산고는 1910년대 초 미국남장로회 순천선교부가 세운 매산학교에서 시작됐다. 이 캠퍼스 타운은 미국 남장로회 순천선교부 타운이었다.

 

담장 따라 오르는 이 매산길을 순천 사람들은 매산등에 오른다라고 말한다. 옛날 순천읍성이 내려다보였기 때문에 등성의 등이 붙었다.

 

매산중·매산여고 흙담장 길. 여순사건 때 진압군에 의해 이 길(당시 고랑)에서 총살당한 주검을 선교사 및 교인 등이 거둔 후 선교부 밭에 묻어 주었다.

 

순천시 의료원로터리에서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까지 이르는 1매산길은 기독교역사투어의 보고(寶庫). 인천 개항장거리가 식민지거리였다면, 매산길 순천선교부거리는 민족교회가 뿌리 내리는 과정을 알려주는 생생한 기독교 교육현장이다. ()크리스천에게도 근대 골목길투어가 될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

 

1913년 무렵.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가 읍성 북문 밖 동산에 14.5에 이르는 순천선교부 부지를 매입한다. 남장로회는 1890년대 중국 네비우스 선교사에 의해 제시된 한국 선교 구역 구분에 따라 호남과 호서지방 일부를 선교지로 삼았다. 전주선교부를 시작으로 군산 목포 광주에 이어 전남 동부를 관할하는 순천선교부를 열었던 것이다.

 

월리엄 린튼과 샬레 벨의 결혼사진

1910810일 경술국치로 국권이 상실됐다. 앞서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강화도조약(1876) 체결한 뒤 야금야금 조선의 상권 등을 잠식해 나갔다. 순천읍성 상권도 장악한 일인들이 본정통(지금의 중앙동 일원) 신시가지를 건설했다.

 

순천 복음화는 19074월 남장로교 선교사 변요한(J. F. Preston)이 순천 향교 안 양사재에서 초기 교인을 돌보는 것으로 본격화된다. 현 순천중앙교회다. 하지만 이듬해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양사재에서 쫓겨나자 서문 밖에 초가를 매입, 기역자 교회를 시작했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 꼭대기 층에 이 기역자 교회를 재현해 놨다.

 

그리고 순천선교부 부지 조성과 매산학교 설립 등이 본격화되면서 중앙교회도 조직교회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 선교사들은 또 순천선교병원(1914), 알렉산더병원(1916)을 건립하고 전염병과 한센씨병 등으로 죽어가는 조선 민중을 구했다. 알렉산더병원은 1901년 전북 군산야소병원장으로 부임한 알렉산더가 부임 직후 부친상을 당해 미국으로 돌아가 기부한 돈으로 건립됐다. 1935411일자 조선중앙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병원은 전남 동부와 경남 하동·남해지역에까지 사랑의 의술을 펼쳤다.

 

초기 복음의 역사는 교육과 의료 선교였다. 순천선교부 역시 그렇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한 장의 사진은 참담했던 우리의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무명옷을 입은 한 사내가 아내인 듯한 여자를 지게에 지고 신식 병원을 찾는 모습이다. 지게 발채 바닥에 솜이불을 대고 여자를 뉘였다. 여자의 맨발이 지게 밖으로 나와 있다.

 

기록에 따르면 1932년 알렉산더병원 일반 환자가 6030, 무료 환자가 8820명이었다. 1934년에는 일반 9021, 무료 11503명었다. 의료 선교사들의 헌신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션스쿨 매산학교는 일제의 황국신민 선서를 거부했다. 일본 천황이라는 우상에 고개를 숙일 순 없었다. 그러자 1916년 조선총독부가 성경교과 교육 문제로 탄압했다. 학교를 자진 폐교할 수밖에 없었다. 1921년 재개교한 매산 남여학교는 일제의 기독교교육 불허로 상당기간 비인가학교로 머물다 1937년 신사참배 강요에 따라 다시 폐교되고 만다. 매산학교는 해방 후인 1946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순천노회유지재단 명의로 세 번째 개교를 할 수 있었다.

 

매산등 선교기지가 조성되자 고라복(R. T.Coit), 서로득(M. L. Swineheart), 구례인(J. Curtis Crane), 보이열(E. T. Boyer), 두애란(Lavalette Dupuy) 등의 선교사들이 텐트선교에 나섰고 고흥 보성 여수 등 지역교회에 사숙을 운영토록 지원했다. 거쳐 간 선교사가 총 73명이었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디오라마. 심방에 나선 서양 선교사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기 힘든 모습을 표현했다.

 

이들은 한국인 교역자 및 의료인 양성에도 힘썼다. 고라복 선교사의 두 자녀는 이질에 걸려 숨지기도 했다. 조선 선교는 선교사에게만 아니라 그 가족 또한 바로 내일 일조차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전남 동부에 70여개 교회를 개척했던 구례인은 1941년 평양신학교 교수 시절 일경에 연금됐다가 탈출, 1946년 순천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들은 선교지 양들을 거두기 위해 생과 사를 넘나들었다.

 

지금 매산등은 선교사마을로 불린다. 순천선교부거리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 하다. 등록문화재 등 10여개의 기독교유적과 알렉산더병원 부속 격리병동터 등 7개의 기독교터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매산중학교 옆 담장. 이 아름다운 담장길은 194810월 여순사건 당시 피비린내 나는 현장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 저지를 위한 군인봉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도 당시 장교로 이 봉기에 가담했다. 고랑이던 이곳에서 진압군에 의해 26명이 집단 총살당했다. 진압군이 당산나무 아래 마을 주민을 모이게 한 다음 이들을 몰아 선교부(매산학교)쪽으로 이동시키다 담장길에서 사살한 것이다.

 

이튿날 보이열과 박기열 박승규 이재만 등이 나서 26명의 시신과 봉기군 1명의 시신을 선교부 밭에 묻었다. 당시 의사 정인대는 페니실린 병에 시신의 이름을 적어 넣어 수습했다고 전했다(‘여순사건 순천지역 피해실태조사 보고서’).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 위 산자락에 여순사건가매장지가 있다.

 

이처럼 매산등은 고통 받고 울부짖는 백성들과 함께한 복음의 땅이다. 죽은 아기를 버리는 공동묘지(애기 장터)에 불과했던 땅이 이제 부활의 동산처럼 크리스천의 영적 여행지가 돼 가고 있다. 시민들은 교육’ ‘의료’ ‘희생’ ‘순교’ ‘복음등 마을이 안고 있는 역사성을 알고 있다. 술집이 적고 대신 카페와 문화공간이 모여들어 순례길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이유다.

 

담장길은 오롯하다. 매산길도 오롯하다. 빛과 영이 함께 하는 순례길이 이곳이다.

 

조지와츠기념관과 순천기독진료소

순천선교부 거리 초입에 위치한 조지와츠기념관은 변형 3층 건물로 이 중 2~3층이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역사전시실로 활용되고 있다. 등록문화재 127호이기도 하다.

 

순례객이 조지와츠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1925년 설립 무렵 보통성경학원이었다.

이 기념관 1층은 순천기독진료소이다. 이 진료소는 100년 넘게 한국 사랑을 이어온 린튼 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윌리엄 린튼(1891~1960)21세에 한국 선교사로 들어와 호남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진 벨(1868~1925)의 딸 샬레 벨(1899~1974)과 결혼했다. 그는 교육선교사로 한남대학을 세우는 등 48년간 한국을 위해 헌신했다.

 

부부의 아들 휴 린튼(1926~1984)은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해군장교로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로이스 린튼(인애자)과 결혼했다. 휴는 전쟁 후 주로 순천에서 활동했으며 농촌선교 사업 중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휴의 자녀 스데반(한국명 인세반), 제임스(인야곱), (인요한)은 모두 한국 출생으로 4대째 선교사다. 이 중 인요한(58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은 특별 귀화자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다.

 

순천기독진료소는 로이스가 1960년대 결핵환자를 돌보기 위해 세운 결핵전문 진료소다. 무의탁 환자를 수용하는 순천결핵요양원 등이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지금은 인요한 등이 북한결핵퇴치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기독교 역사순례길

20163월 전남도는 도내 기독교 유적의 역사성에 주목하고 순례길 개발에 나섰다. 기독교성지 책자를 발간하는가 하면, 크리스천언론인을 대상으로 순례길 개발 설명회도 개최했다. 기독교 관련 유적지의 관광자원화와 국내 성지순례의 활성화를 통한 도보 여행객 유치에 역점을 두었다.

 

전남도가 주관하는 기독교 역사순례길 투어에 참여한 기독인들이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에따라 목포 개항장순례길, 순천선교부거리 순례길, 신안 영광 영암 순교지 순례길 등을 콘텐츠로 다듬었다.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최석호 소장(서울 묵동교회 부목사)이 참여해 길을 열었다.

 

전남도 정순주 관광문화체육국장은 25종교자원을 활용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유적지의 주변 환경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 소장은 기독교 전래 130여년이 됨에 따라 사라져 가는 역사유적을 보존하는 한편 시민친화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특히 전남도 기독교 유적은 어느 지역보다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풍부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순천=·사진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입력 : 2017-04-2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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