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이생의 자랑이 될 수 없다
20여 명의 목사님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서너 교회를 빼고는 모두 개척교회 정도의 어려운 목회를 하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각 교회의 근황을 서로 말하자고 해서 돌아가면서 말을 하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대부분 목회의 어려운 얘기들을 합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재정적으로도 풍성한 목회자가 자기 교회의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회자가 철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얘기를 듣는 다른 목사님들의 표정이 썩 유쾌한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제 차례가 와서 과거에 어려웠던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목사님들은 당신도 과거에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그런 어려움이 있었단 말이요? 라는 말을 하면서 뭔가 희망을 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의 입장을 배려하려는 정신은 어디서나 필요함을 느낍니다.
앞서가는 목회자일수록 과거의 자기의 어려운 상황들을 떠올리는 것도 덕을 쌓고, 겸손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끔 큰 교회 부임한 목회자들에게서 이런 어려운 목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입장에서 목회를 말하려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목회는 이생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목회자뿐이겠습니까?
가끔 성도들이 구역예배를 드리면서 자식 자랑, 가정 자랑을 하는 경우들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마음의 시험(?)을 받아 구역예배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들을 듣습니다. 나는 월세도 제대로 못 내고 있는데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아파트 값이 올랐다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기도를 했을 때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할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 6:14)고 했습니다. 실은 그는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은 사람입니다. 학벌에서도, 가문에서도, 열정에서도.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했다면 우리가 자랑하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하겠나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는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 자랑하다가 망한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골리앗은 힘자랑하다가 쓰러졌고, 하만은 권세 자랑하다가 당했고,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의 부로닥발라단 왕 앞에서 군사와 군수품 자랑하다가 침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자랑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인정(recognition)받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에 자랑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좀 성숙해지면 자랑하면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한 그 자체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사학위 받았다고 신문에 광고내면서 감사예배를 드리기보다는 그 자체로 감사하고 만족할 수는 없을까요? 요즘은 노회 임원 되었다고 각 신문사에 사진과 함께 광고를 내보내는 기발한 상업적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내가 자랑하던 것도 그저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들이 거의 비슷하게 되어 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평등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사람의 나이 40대가 되면 지식의 평등이 찾아온답니다. 과거에나 공부 잘하고 못하고가 있지 40세가 넘어가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50대가 되면 외모의 평등이 찾아오는데 예쁜 사람, 못 생긴 사람도 다 늙어가고 배 나오고 엉덩이도 쳐지고 두루뭉술해진다는 것입니다.
60대가 되면 성의 평등이 찾아와서 남자는 순해지고,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억세져서 결국 같아진다는 것이요, 70대가 되면 건강의 평등이 찾아와서 건강한 사람이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나 고만고만합니다. 80대가 되면 재물의 평등이 찾아와서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요, 90대가 되면 생사의 평등이 찾아와서 누구나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 거의 맞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랑할 것은 변하지 않는 우리 주 예수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성도들은 전도한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할 생각은 안하고 외적인 자기 교회 자랑, 또 자기 목사 자랑하고 다닙니다. 은근히 목사들이 이렇게 시킨다고 합니다. 복음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남의 교회, 남의 목사를 평가절하 할 때 자기 목사가 올라가는 상대적인 효과를 노린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아직까지 이런 레드오션(red ocean) 속에서 우리끼리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빨리 불루오션(blue ocean)으로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 강이나 큰 바다가 수많은 개울과 하천의 왕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낮은 곳에 있어 겸손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럴듯한 얘기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겸손을 생활철학으로 삼으라. 겸손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이고, 교만은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라고 했습니다. 좀더 겸손해지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존경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교만한 사람도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의 겸손이 그리운 때입니다. 장경덕 canaan@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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