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會者 충전

68. 목회자와 가족

행복을 나눕니다 2014. 10. 17. 08:57

 

 

 

목회자와 가족

[교회 갔다 왔다고 거짓말한 지 몇 년째인가]

 

모일간지 토요 판 인터넷에 [교회 갔다 왔다고 거짓말한 지 몇 년째인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있다. 무슨 내용인가 살펴보니 목회자인 아버지가 몇 년 전 부터 독립해서 살고 있는 서른 살 된 처녀 딸에게 월요일이면 [교회 갔다 왔냐?]라는 문자를 보냈고 그 딸은 [갔다 왔다]며 거짓말로 대답한 지가 벌써 2년이나 됐는데 이제는 거짓말하기도 지겨운 차에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사실을 털어 놓는 과정에 대화한 내용이다.

 

# 아버지와 딸의 대화 내용 몇 대목만 그대로 인용해 보면 이렇다.

 

[]

목사 딸로 살아가기 위해 너무 많은 걸 포기 했어요.

뭐든지 기독교 중심이었어요 이제 넓은 세상으로 갈래요.

 

[]

지금까지 부모님 말에 순종하며 살아왔잖아요. 하지만 이젠 제 삶을 살아야죠.

착실하게 학창시절을 보냈고 아빠가 원하는 대학도 갔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께 손 벌린 적도 없었고요. 제가 종교를 버렸다고 해서 아빠와의 관계가, 가족 관계가 깨진 건 아니에요. 앞으로도 그럴 테고요.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그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아버지]

세속에 빠져 성을 탐닉하고 한낱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네가 알게 된 신세계니? 네가 기도하지 않은 동안 세상에 물들어버린 것 같다. (버럭 화를 내면서)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기도원에 며칠 다녀와서 회개해.

 

[]

성을 탐닉했다고요? 왜 교회를 가지 않으면, 당연하듯 쾌락에 빠져 산다고 생각하죠? 유희라고요? 그게 바로 기독교인들이 가진 편협적이고 좁은 시야 아닌가요? 화를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회개라고 하셨죠? 회개하면요? 또 연기를 하면서 살아야 하나요? 그렇게 하면 뭐가 남나요?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행동만 하라니. 원하신다면 아빠 앞에서는 그렇게 해주죠. 하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아요. 성인이 된 자식에게 종교를 강요할 의무는 없어요. 부모의 종교를 자식에게 강요하다니, 이건 폭력이에요.

 

[아버지]

인문학 들먹거리면서 궤변을 늘어놓더니 못하는 말이 없구나. 지금 당장 정신 차리지 못해? 종교는 강요가 아니야. 더욱이 믿음은 강요가 아닌 자신의 체험이란 건 그 누구보다 네가 알잖아! 네가 성장하면서 겪었을 내적 갈등은 모든 사람이 겪는 거야. 모든 기독교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

이해를 바라지도 않아요! 아빠는 그러기 힘들 테니까.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런 딸을, 그 자체로 인정해주세요. 아니, 바라봐주세요. 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아버지는 한동안 침묵하다 어렵사리 입을 열더니 여지는 없겠지만 생각해볼 문제다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띠띠띠. 나는 끊겨버린 전화를 든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적 속에 몇 분이 지났을까. 문자 한통이 왔다. “이번 주부터 ○○교회에 나가라는 아빠의 메시지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던데, 과연 종교 앞에서도 가능할까. 내겐 너무 먼 얘기다.

* * *

글의 형식은 딸이 쓴 것으로 돼있지만 100%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대화가 글로 표현되면서 과장되거나 미화(?)된 부분도 더러 보인다.

누군가가 소설 쓰듯 문장을 만들어 올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아무리 막돼먹어도 자기 아버지에게 저렇게 막말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정서다.

아버지나 딸의 본명이나 가명 정도라도 밝혀야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어디에 거주하는지 대충이라도 알려야  맞는데 그것도 아니라 신빙성은 떨어진다.

사실여부를 떠나 가상의 일이라 쳐도 목회자가 한 번 쯤 생각볼 일이다.

 

목회자 가정이 아니라도 믿음의 가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불행이다.

목회자인 경우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평생을 남을 가르치며 영혼 구원에 몸 바쳐 왔는데, 정작 자기 딸은 저모양이니 제집식구하나 제대로 못 가르치면서 남을 가르쳤다는 자괴감과 살아 온 세월이 부끄러워 많이 힘들 것 같고, 주변의 눈총에 의욕이 상실될 수도 있겠다.

 

목회자 자녀 중에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는 일이 있다는 소리는 간혹 들었고, 또 그들은 대부분 오래지 않아 좋은 신앙인으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아예 교회를 버렸다는 글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무엇이 그 딸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는 특혜 입은 자다.

글 전체내용으로 봐서 딸은 자라는 과정에 넉넉한 환경에서 어려움 없이 살았다 했고, 성인이 될 때까지는 부모님 말씀 따라 착실한 생활도 했고, 인문학을 전공한 모양이고. 나름대로 사회생활에 독립을 잘 한 모양이다. 교회를 버리고 비신자들처럼 넓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목회자의 자녀라는 특수성 때문에 부자유했을 수도 있고, 주변의 시선으로 절제되고 모범된 삶을 살아야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마음고생을 했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특혜를 입은 삶 같다.

주변을 돌아보면 미자립교회 목회자 자녀를 비롯한 수많은 젊은 신앙인들이 어려움을 온 몸으로 감내하며 공부와 바른 신앙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고 기도하며 극복하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특혜 입은 딸은 감사하며 보은의 삶을 살아야 한다.

딸이 성인이 되고 성공한 오늘이 있기 까지는 부모님의 수고와 신앙적 뒷받침과 교인들의 사랑과 관심, 좋은 환경에서 대학 공부까지 할 수 있었고 사회에 정착했으니, 이제는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더 많이 감사하고 주변 모든 분에 대하여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은 바를 갚는 헌신의 자세로 살아야 정상이다.

 

목사의 딸로 사느라 많은 것을 포기하고 힘들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넓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하는데, 목사의 딸이 아니라도 신앙인이면 누구나 좀 절제해야 하고 포기해야 할 일도 있다. 신앙인이 사회생활 하는데 제일 곤란한 일은 술 먹는 회식자리 일 것이고, 주일에 근무해야할 때가 있어 주일성수에 부담을 가질 수도 있다.

또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빛과 소금의 노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문제일 수 있다. 이런 일은 신앙인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극복되어야 하는 일상이다.

그렇다고 건전한 오락이나 이성교제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목사의 딸이기 때문에 특별히 무엇을 잃어버렸고 포기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미루어 볼 때, 인문학을 공부한 것과 오락과 즐기는 일들이 아닌가 싶다.

 

근본 문제는 바른 신앙과 목회자 가족으로서의 사명의식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소명자로서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버릴 수 있지만, 가족은 그런 것이 아니다. 가족의 적극적 협조가 없으면 어렵다. 그러므로 가족들 신앙도 목회자와 맞춰 공동 사명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물론 자녀들은 자기가 원해서 목회자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명 의식이 없거나 덜 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원치 않아도 가족이 된 것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뜻이므로 선택받은 자라는 자부심으로 적응하고 감당해야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즐기며 헌신 할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성령은 함께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 자녀만을 위한 영성훈련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교회와 목회자는 경각심을 더 가져야 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바른 신앙과 영성 훈련으로 사명을 불어넣어줘야할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기독교와 목회자들에게 도전하거나 흠집 내려는 사단의 역사도 많고,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쾌락적 오락이나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너무 많다고 한다. 기독교적 문화나 오락이 정착되도록 할 필요도 있다.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당연하지만, 그 시절에 믿음을 돈독히 가지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교회를 잘 다니다가 대학을 진학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교회를 떠나는 비율이 높은 이유는 성경을 학문적으로만 가르치고 영성 훈련을 통한 바른 신앙을 정립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교회 지도자가 목회자 자녀는 당연히 신앙도 좋을 것이고 모든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모든 이들과 똑 같이 대하면서 가르쳐야 한다. 목회자 자녀는 자기를 예외로 취급하는 일을 매우 싫어한다.

 

신문 기사 말미에 [종교에서 자유를 찾은 딸]이라고 적혀있다. 정말 진정한 자유를 찾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분별없는 자유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후회할 일이다. 잘못된 자유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들 모두가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도한다.-이박준

 

*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신문 기사 밑에 독자들에게 알리는 글이 보인다.

인터뷰를 해주세요. 인터뷰가 별건가요? 대화입니다. 좀 더 깊고 세심한 대화입니다. 엄마, 아빠, 배우자, , 누나, 동생, 아들, , 할아버지, 할머니와 특별한 대화를 해보세요. 꼭 다정다감할 필요는 없습니다. 싸워도 좋고, 인신공격을 해도 좋습니다. 꼭 해법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습니다. ‘인터뷰; 가족은 대화하는 새로운 가족상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원고료를 드립니다. (등록 : 2014.10.10 19:03 수정 : 2014.10.11. 10:50)

 

# 원고료 줄 테니 글을 보내라는 알림 내용이 좀 그렇다.

[인신공격]이나 [싸움]의 글도 좋단다. 신문은 사실여부를 가리지 않고 화제꺼리나 뜨거운 내용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 그런가 보다. 앞으로 올려질 글들이 얼마나 험악할지 짐작이 간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올려 주니, 사실이 아닌 황당한 글을 그럴듯한 화제꺼리로 또는 낯 뜨거운 글로 포장되어 보낼 수도 있겠다. 우리 사회에 득이 많을지 실이 많을지 염려도 된다.-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