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내 전우여…"
30년째 홀로 바친 국화. 어렸을 때 부모 잃은 정 일병 묘, 6·25 금성천 전투서 전사…
그의 소대장이었던 임씨 "나 아니면 꽃 줄 이 없잖소"
올해 여든 여덟 임병황씨는 현충일 전날이던 지난 5일 국립서울현충원에 다녀왔다.
가서는 정학수 일병의 묘지를 찾았다. 올해가 30년째다.
꽃을 바친 다음, 주름진 손으로 '화천지구에서 1951년 10월 16일 전사'라고 쓰인 정 일병의 묘비를 한참 쓰다듬다가 일어선다. 그를 제외하곤 정 일병의 묘를 찾는 사람은 없다.
6·25전쟁 때 임씨는 정 일병의 소대장이었다.
30년 전인 1981년 현충일. 임씨는 무작정 현충원에 갔다. "'정학수'라는 이름밖에 모르는데 찾을 수 있을까요?" 임씨는 정 일병이 현충원에 묻혔는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불현듯 그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현충원에는 3명의 '정학수'가 있었다. 그 가운데 사망일과 장소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다.
1951년 2월 초 육군종합학교를 나와 6사단 1중대 소대장이 된 임씨는 몇 달 뒤 연락병으로 온 정학수 일병을 만났다. 스물여섯 살이던 임씨와 거의 또래였다고 한다. "초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사람이 똘똘했어. 성격이 온순하고 생긴 것도 그렇고…." 소대장과 정씨는 5개월을 동고동락했다. "담배를 어찌나 맛있게 피우던지. 건빵은 그 자리에서 한 봉지를 해치웠어."
정 일병은 황해도 출신으로 다섯 살 때 부모를 잃고 친척 집에서 살다가 입대했다고 한다. "정 일병이 전사한 뒤 소식을 전하려고 남산 밑 해방촌에 있다는 육촌 집을 찾아갔는데 아주 가난하더군. 입대 전에도 고생이 심했을 거야."
1951년 10월 16일 둘은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격전을 치렀다. 그러자 강원도 화천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한참을 진격해 금성천을 건너는 도하 작전을 치를 때 헤어졌다. "적이 바로 우리 등 뒤에 있다는 거야. 상부 명령을 따라서 강을 건너겠다고 나섰다가는 소대원들 다 죽이게 생겼더라고."
임씨는 도하를 포기하고 후퇴를 지시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기관총 소리가 들리고 포탄까지 떨어졌다. 모두들 정신없이 흩어져 뛰었다고 한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정 일병이 포탄에 죽었다고 하더라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임씨는 현충원에 가면 동기생들 묘를 찾아가기에 앞서 정 일병의 묘부터 찾는다. "다른 사람들은 꽃 꽂아 줄 사람이라도 있잖아. 정 일병은 가족이 없으니까 나라도 먼저 가는 거지."
이미지 기자 image0717@chosun.com. 정경열 기자 krchunng@chosun.com
입력 : 2011.06.20 03:02
*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의 정신은 소중히 간직하며 전해져야 합니다.
국가는 그들의 희생을 인정하고 명예를 지켜 주고 유가족도 보살펴 줘야 합니다
최신 무기만으로 나라가 지켜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살핌이 있어야 나라가 온전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 이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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