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뒷골목 여성 눈물 닦아주는 교포
다반 제공 현수성씨, 환락가서 10년 간 1만 8000건 무료 상담
부모 정 못 느껴 한때 방황… 경험한 직업만 스무 개 넘어
"백혈병 보균 사실 알고 의미 있는 일 하자 결심했죠"
"이번 동일본 재난을 보면서 구호센터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일본 전역에 7군데 정도 더 만들 생각입니다."
현수성(55)은 1956년 오사카에서 불법 체류자인 아버지와 재일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어머니는 떠났고, 아버지는 여러 번 재혼했다. 그는 "친부모에게도 새엄마들에게도 정을 느낀 적이 없다"며 "의지할 건 나뿐이라고 믿게 됐다"고 했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돈을 벌려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초밥집 견습생, 폐휴지 수거원, 자동차 수리공 등 스무 가지가 넘는다. 건설용역회사 직원과 사설탐정 시절에는 조직폭력배들과의 '대결'도 벌어졌다. 차 트렁크에 갇힌 채 산속에 버려지고, 독을 넣은 차를 마셨다가 겨우 살아난 적도 있다. 이후 건설현장 인력파견 회사를 운영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여윳돈이 생기자 레스토랑도 열었다.
현수성은 1989년 어느 승려를 만났고, 제자가 되길 자청했다. 그는 "스님의 세계가 궁금해 한 달간 따라다니며 동북부 1600㎞를 순례했다"고 했다. 좌충우돌 인생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11년 전, 헌혈할 때 얘깁니다. 백혈병 바이러스 보균자란 사실을 알았어요.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허무했죠. 하지만 거꾸로 '살아 있는 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모든 회사와 재산을 정리, 2002년 도쿄 신주쿠에 구호센터를 열었다.
"가부키쵸를 '동양 최대 환락가'라고들 하죠. 조폭이 활개치고 숱한 여성이 눈물 흘리는 곳이잖아요. 여기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내 경험과 지혜를 쓰고 싶었어요."
현 소장은 폭력·사채·가출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무료 상담하고 직접 해결에도 나섰다. 그렇게 10년, 상담자만 1만 8000명이 넘는다. "단순한 위로나 덕담은 현실적으론 거의 도움되지 않아요. 당사자가 문제와 정면승부해 이겨내도록 조언했습니다." 현 소장은 "세상에는 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많은 것 같다"며 "한 사람이라도 더 돕고 구하겠다는 각오로 해나갈 뿐"이라고 했다.
그의 인생과 활동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선 신문·방송·만화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됐다. 최근에는 신주쿠 구호센터 웹매거진을 만들어 주는 작가 사사 료코가 '현수성이 간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고, 한국어판도 번역 출간됐다.
김진 기자 mozartin@chosun.com 입력 : 2011.06.01 03:06
* (신1:11)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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