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 공군 女군무원 권순정씨
모친 음독, 부친 목매, 남편 교통사고로 장애, 삶 비관, 한때 자살 결심
"내 가슴 저미는 가족史 들으면, 자살 기도하던 병사도 생각 바꾸죠."
"'눈과 귀라도 살아있어…' 전신마비 동료의 말에 삶·가족 소중함 깨달아"
6·25 전쟁 때 받은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늘 술만 마셨다. 취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여덟 남매를 때리는 날이 많았다. 초등학교 6학년 늦봄 막내 여동생 생일날 아버지와 다투던 어머니는 농약을 마셨다. 고교 2학년 때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방 문고리에 목을 맸다.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야전 정비대대 기능직 8급 군무원 권순정(39)씨 이야기다. 4남4녀 중 일곱째인 권씨도 삶이 힘들어 두 번이나 자살을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당신이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외치는 '삶과 희망의 전도사'가 됐다.
권씨는 지난 14일 충남 서산의 이 부대 스포츠센터 1층 교육장에서 전입 신병 32명을 상대로 자살예방 교육을 했다. 권씨가 가족과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자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권씨도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작년 3월부터 150차례나 교육을 했는데 아직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병사들은 "그저 그런 지루한 교육일 거라 생각했는데 교관님 사연을 듣고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권씨가 교육을 하며 자기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한 장교 때문이었다. 작년 두 번째 교육 때 울먹이며 교육장을 뛰쳐나간 한 장교가 물었다. "가족이 자살한 아픔을 알기나 하느냐"고. 권씨는 "나도 자살 유가족"이라고 말하며 자기 사연을 털어놨다. 두 사람은 오래 가슴에 품어온 아픔을 씻어내듯 함께 눈물을 흘렸다.
권씨는 하루 한 통 이상 장병들의 상담 전화를 받는다. 주말이나 한밤중에도 심상찮다고 느끼면 곧장 부대로 달려가 병사를 다독인다.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한 이등병은 권씨 호소를 듣고 "이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권씨는 그 병사에게 "네가 살겠다고 하는 한 나도 이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999년 군무원이 돼 내중력복(G-suit) 같은 항공장구를 정비·수선하는 일을 하는 권씨는 이듬해 지퍼가 고장 난 군복을 입은 병사를 본 뒤 '바느질 봉사'를 시작했다. 소문이 나자 장병들이 너도나도 고칠 옷을 들고 왔다. 일과 후까지 남아 옷을 고치면서도 늘 웃는 그를 장병들은 '미소 천사'라 불렀다. 그동안 그가 무료로 고쳐준 군복이 8000벌을 넘는다.
2007년부턴 조종사들이 쓰는 가방에 가족사진을 꽂아 볼 수 있는 주머니를 달아주었다. 사진을 보며 안전비행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조종사들 모두가 가방에 가족사진을 꽂았다. 새로 전입해 온 조종사는 가방에 이 주머니를 달고 가족사진을 꽂는 게 이 부대 전통처럼 됐다.
그는 2007년부터 공군 자살예방 홈페이지에 "소중한 삶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하루 한 편씩 올리고 있다. 한번은 강릉에 근무한다는 한 장교가 "자살하려고 하는데 당신은 왜 이런 글을 올리는지 알고 싶다"며 전화를 걸었다. 권씨는 몇 시간이나 "자살은 안 된다"고 눈물로 호소했고 그 뒤 강릉에서 자살 소식은 없었다. 권씨 글 밑에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는 댓글이 수도 없이 붙었고 "당신 글을 읽는 동안 자살하지 않겠다"는 이메일도 수백 통 쌓였다.
권씨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주자 부대는 작년 3월 권씨를 자살예방 교관으로 임명해 자살예방 교육을 하게 했다. 권씨는 교관 교육을 받으며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의 증세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밤새 펑펑 울고 난 뒤 아버지를 용서했다. 교관 교육을 받던 날 집에서 배운 내용을 이야기하자 고등학생 외동딸이 "나도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권씨는 딸과 남편을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남편 사업이 망해서 전세금 3000만원마저 날리고 가족들이 거리에 내쫓긴 적도 있었다. 그 얼마 뒤 남편은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어릴 때 단칸방에 온 가족이 살며 낮엔 봉제공장에 다니고 밤엔 야간 학교에 다녔던 권씨 삶은 그렇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그는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고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4년 간 전신마비로 누워 있던 동료 군무원이 "세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라도 살아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한 말을 듣고 삶과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고 한다. 권씨는 "제 주변 모든 사람들과 가족들이 자살예방 교육을 받아 나 같은 자살 유가족이 없어지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권씨는 작년 말 바느질 봉사와 자살예방 교육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2009 공군을 빛낸 인물(희생·봉사 부문)'에 뽑혔다. 공군 관계자는 "세상이 그분(권씨)에게 준 것은 너무나 형편없는데 그분은 세상에 참 많은 것을 베풀고 있다"고 했다.
"서산=장일현 기자 ihjang@chosun.com 입력 : 2010.01.23 03:18
* (요 6:37) (하나님)아버지께서 내게(예수)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예수)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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