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용기 얻고 도전하면 성공
산전수전 겪고 신학 대학장 된 재미동포 변재원 목사
한국과 미국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해 신학대학장까지 오른 재미동포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지난달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미주기독신학교 초대학장에 취임한 변재연(64) 씨. 9월 개교하는 이 대학에 교수로도 강단에서 사용할 한국어 교재를 구입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변재연 학장은 3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때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내 인생은 '산전수전' 그 자체였다"며 "만약 용기를 잃었다면 오늘의 나는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소중한 생명을 끊는 일이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해 안타까웠다"며 "인생의 항로는 도전의 연속이니 만큼 두려움을 갖는 것은 금물이며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변 학장은 또 "평범한 얘기지만 '자살'을 거꾸로 얘기하면 '살자'가 된다. 서두르지 말고 한 발자국만 뒤에서 자신을 바라다보면서 절망 상태에서도 결코 희망을 꺾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가 됐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인생역정을 풀어놓았다. 전남 장성에서 2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못 나오고 중.고등학교 과정을 독학으로 마쳤다. 14세 때 아버지를 잃고 가장이 된 그는 어머니와 함께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에서 시작한 일이 구두닦이. 하루종일 서울역에서 방산 시장까지 오가며 구두를 닦다가 자릿세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터주대감들로 부터 코뼈가 돌아갈 정도로 두들겨 맞기도 했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빙회사를 찾아가 리어카로 얼음을 나르는 일을 하게 된 그는 굶는 날이 더 많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 때 그는 남산 육교에 올라가 유서를 써 놓고 자살을 기도했다.
한 여성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그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고 목공소로 취직했다. 그러나 이 곳에서도 일요일에 일하지 않고 교회에 갔다왔다는 이유로 주인으로부터 호되게 당한채 거리로 내몰렸다.
다시 힘을 낸 그는 다행히 교회 집사가 사장인 목공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밤에는 보따리 장사를 하며 인테리어 기술도 배웠고, 3년 만에 일을 터득해 남산 인근에 '진흥목공장'을 차렸다.
결혼도 하고, 재산도 쌓여 가는 등 그에게도 잠시 행복이 찾아오는가 싶었지만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피땀 흘려 번 돈을 사기꾼의 계략에 넘어가 전부 날린 것이다. 실의에 빠질 겨를도 없이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가 그는 지인으로 부터 미국 취업이민 얘기를 들었고, 곧바로 신청해 성사됐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정착한 그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한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충당한 그는 절약을 생활화하며 1달러씩 1년 2개월간 모은 돈과 가재도구 등을 모조리 날리는 아픔을 또 겪었다.
아내와 세 아들을 앞세우고 이주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그의 인생에 볕이 들었다. 빈털터리인 그를 따뜻하게 받아준 당시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 사장을 만났던 것. 그는 인테리어 회사를 차려 돈을 벌기 시작했고, 빌딩 3개를 구입할 정도로 성공했다.
누구보다도 배움에 목말라 했고, 가난을 겪었던 그는 불우 아동에게 장학금도 주고, 봉사도 활발하게 했다. 그리고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캘빈바이블칼리지와 로스앤젤레스신학대학 두 군데를 다니면서 학사와 교육학,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 그것도 모자라 뉴욕 총신회대에서 신학석사를, 샌프란시스코 크리스천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크리스천대의 이사이면서 교수이고, 2회 연속 총 동문 회장을 맡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사진-산괴불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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