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국무총리rk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464716&code=61111111&sid1=pol
한국 근대화에 큰 애국자
한국정치의 풍운아 김종필 전 총리 92세로 서거
한국 정치의 ‘풍운아’로 불려온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15분 별세했다. 그의 타계로 3김 시대를 이끌었던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트로이카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다”며 “집에서 쓰러진 뒤 119구급대로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한 달 전부터 기력이 떨어져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군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처삼촌이기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1년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중앙정보부 초대 부장을 지낸 것을 시작으로 이후 30년 이상 정권의 핵심 역할을 했다. 특히 1971년부터 75년까지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박정희 정권의 실세였다.
다만 그는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협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일어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본에 지나치게 양보를 많이 했다는 비판이 거세졌고, 이후 6·3 사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이후 재기에 성공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으로 불리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 3명이 주도한 ‘3김 정치’는 한국 정치를 거의 30년간 지배했으며 지금까지도 이들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
특히 1996년 4월 11일에 이루어진 DJP 연합은 한국 정치의 흐름을 바꿔놓는 역사적 사건이 됐다.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이던 김 전 총리는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와 연합했고, 이듬해 김대중 총재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김 전 총리는 이후 1998년 8월부터 2000년 1월까지 김대중정부의 총리를 맡아 ‘호남 대통령’과 ‘충청도 총리’로 공동정부를 이끌었다.
김 전 총리는 3김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는 ‘영원한 2인자’로 불리기도 했다. 9선 정치인인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 전 총리는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정치권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충청권 표심이 김 전 총리에 의해 좌지우지되자 숱한 대권 주자들이 그의 자택을 찾아와 조언을 들었다. 그는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에도 적극적인 발언을 내놓으며 정치권에 영향력을 유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때에는 선거를 직접 돕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쿠데타세력이자 충청권을 바탕으로 한 지역정치를 했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한국정치계의 원로로서 긍정적 역할도 많이 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특히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 국정이 잘못 흘러갈 경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말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적 발언을 하며 영향력을 유지했다.
평생 보수적 이념가치를 지녔던 김 전 총리가 타계하면서 지방선거 참패 이후 혼란을 겪고 있는 보수 진영이 다시 뭉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 전 총리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자유한국당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과 홍준표 전 대표 등을 비롯한 보수 진영 주요 정치인들이 조의를 표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으며, 빈소에도 앞다퉈 찾아와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김 전 총리 별세와 관련해 총리실에 장례를 준비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도 김 전 총리 장례식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의 장례 지원 지시는 김 전 총리가 총리를 지낸 거물급 정치인인 데다 충청권과 보수 진영에서 정치적 원로로 존경하고 있는 상황을 두루 감안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김 전 총리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김종필 전 총리 약력>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 출생
1944년 공주고등보통학교 졸업 및 일본중앙대학 예과 입학·자퇴
1945년 대전사범학교 졸업 후 국민학교 교사 부임
1946년 서울대 사범대학 입학
1948년 육군 입대 1주일 만에 탈영 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재입대
1949년 육사 8기 졸업 및 소위 임관(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1951년 박영옥(박정희 전 대통령 조카) 여사와 결혼 및
제1차 군장교단 도미 유학생으로 미 육군보병학교 입학
1958년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기획과장
1961년 5·16 군사정변 참여 및 제1대 중앙정보부장
1962년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무장관과 회담(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초석 마련)
1963년 육군 준장 예편 및 민주공화당 창당위원장
1963년 민주공화당 입당 및 제6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의장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1971년 민주공화당 부총재 및 제8대 국회의원, 제11대 국무총리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1976년 한·일의원연맹 회장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및 공화당 총재 상임고문
1980년 전두환 정부로부터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재산 환수
1987년 신민주공화당 창당 및 초대 총재, 제13대 대선 낙선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1990년 YS·DJ와 3당 합당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해 민주자유당 출범 및 당 최고위원
1995년 민자당 대표위원 사퇴,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 및 초대 총재, 제15대 국회의원
1996년 자민련 명예총재, 자민련은 제15대 총선에서 50명 당선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DJ와 후보 단일화(DJP연대)
1998년 제31대 국무총리
2000년 자민련, 제16대 총선에서 17석 획득(원내교섭단체 구성 실패)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 찬성(DJP연대 결렬)
2004년 자민련, 제17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4명만 당선돼.
군소 정당으로 전락 후 정계 은퇴
2006년 자민련, 한나라당과 통합
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 선대위 명예고문
2008년 뇌경색으로 치료
2012년 새누리당 탈당
2015년 부인 박영옥 여사 타계
2018년 6월 23일 별세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입력 : 2018-06-23 11:03/수정 : 2018-06-23 12:14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464594&code=61111111&sid1=p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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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 합시다]
*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 기억하고 감사하고 잊지 말고 대비해야 합니다.
부부가 배웆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젊은 부부가 결혼기념일을 잊었다면 심각한 지경에 까지 이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고, 국민은 한국의 6, 25 전쟁이나 일본의 압제 등을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대비해야 합니다. 또 우리나라가 오늘날 경제 강국이 되고, 보릿고개가 없어지고 웬만하면 자가용 굴리며 살도록 기틀을 마련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수고와 희생도 알아줘야 합니다. 물론 공과는 있을 것이나, 아무나 할 수 없는 공은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의 세계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 많은데 하나님의 일은 더욱 잊어서는 안 될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으로 살아갈 때, 나 여호와가 강한 능력으로 너희를 구출해 내었음을 잊지 말라, 그리고 안식일을 지켜라, 너를 종살이에서 구출한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기억해야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구원을 완성 시키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절대로 잊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 감사한 마음으로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일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의 일부이기도 합니다.-이박준
JP가 회고록에서 증언한 한국 현대사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는 2016년 3월 구순을 맞아 자신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낸 ‘김종필 증언록’을 출간했다. 박정희 정권과 ‘3김시대’를 관통하는 증언을 생생하게 쏟아냈다. JP는 출판기념회에서 “이 책은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증언의 기록지”라며 “반세기 동안 헌정에 참여해 온 사람으로서 그 시대 그 현장 그대로를 증언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자평했다.
JP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6군사정변 혁명공약’ 5개항을 자신이 직접 작성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의 나의 서른다섯 때의 일이었다. 특히 혁명공약 1항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의로 삼는다’는 내용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쏠린 좌익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썼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지기도 했다. JP는 회고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좌익 콤플렉스를 아주 크게 느끼고 있었다. 이 때문에 혁명 후에도 박 전 대통령은 ‘나 그만 두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5·16군사정변을 주도했던 JP는 그해 초대 중앙정보부장에 올랐다. 이후 JP는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던 장도영을 체포했다. JP는 “장도영은 자기 세력을 규합하고 있어 5·16세력의 내분을 일으킬 것으로 판단해 제거하기로 결심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월남전 참전 결정에도 JP는 깊숙이 관여했다. 1962년 2월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JP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월남에 방문했다. 귀국 직후 JP는 월남 파병을 검토해보자고 제안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소극적이었다고 JP는 회고했다. 그러나 JP는 끊임없이 박 전 대통령을 설득했고 1965년 박 전 대통령은 결단을 내렸다.
JP는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막후 역할을 도맡았다. 1962년 11월 12일 JP는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외상과 극비리에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1억 달러 이상 지원’이라는 내용에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 “매국 협정”이라는 비판이 거셌고 급기야 박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박정희 정권에서 JP는 강력한 2인자로 자리매김했지만 동시에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처조카이기도 했던 JP를 강력하게 견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기밀 해제해 최초로 공개했던 대통령 일일보고 문건에 당시 5·16세력 내부의 알력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1962년 3월 CIA는 보고서에 “군사평의회 지도자 박(박정희)은 커져 가는 김(JP)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송(송요찬 내각수반)을 지지해왔다”고 분석했다. 1963년 1월 보고서에는 “김종필은 이제 정권의 정당에서 축출됐으며 우리(CIA)는 그가 곧 다른 사람들 몇 명과 함께 해외로 보내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JP 스스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때론 돕고, 때론 대들었지만 박정희는 나를 내치지 않았다”는 표현을 썼다. 킹메이커이자 박 전 대통령과 친인척 관계였지만 역설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존재 때문에 최고 지도자 자리에는 오르지 못한 셈이다. JP는 “생전의 박 대통령이 나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을 내게 한 적 없다”며 “박 대통령은 돌아가실 때까지 누구에게든 권력을 넘겨줄 분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다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이 총탄에 갑자기 사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79년 11월 12일 JP는 민주공화당 총재가 됐다. 하지만 권력은 JP에게 오지 않았다. 1980년 5월 신군부는 JP를 보안사령부에 연금했고, 한 달 뒤 그는 공화당 총재 등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미국에 머물던 JP는 1985년 3월이 되서야 모든 정치활동 규제가 해제되자 1986년 2월 귀국했다. 이듬해 JP는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그해 10월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해 총재 및 대선 후보에 지명됐다. 1987년 12월 13대 대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입력 2018-06-23 11:42수정 2018-06-23 11:57
http://news.donga.com/Main/3/all/20180623/90719070/1#csidxf58dedc3c5fc2a19e9986fbfb1be1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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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운아 김종필 전 총리가 걸어온 길을 사진으로 보려면,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464716&code=61111111&sid1=p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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