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아들이, 99세 된 눈먼 어머니 모시는 행복
오늘 어버이날 … 중풍 어머니 10년 돌본 김형종씨 ‘효행자 서울시장표창’
“어머니, 시원해요?” “응응. 아이고, 좋아라.”
43세에 낳은 늦둥이 막내아들이 30대에 시력 잃자 어머니는 통곡했고.
그날 이후 아들 앞 눈물 안 보여
거동 힘든 노모, 아들이 손 감각으로 식사 챙기고 기저귀도 갈아드려
“주위서 요양병원 권하기도 하지만, 어머니 곁에 있는 행복이 더 크죠”
아들은 이불에 누운 노모의 팔과 다리를 연신 주물렀다.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오늘 아침에 목욕했더니 피부가 고우시네”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 36㎡(약11평) 임대 아파트 안방에서 99세 어머니와 56세 아들의 살가운 대화가 이어졌다.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리 아들 늘상 예쁘제”라고 칭찬하자 아들이 겸연쩍게 말했다. “어머니와 저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예요. 제 머릿속에 어머니의 몸이 샅샅이 그림 그려져 있거든요.”
1급 시각장애인 김형종씨(오른쪽)가 99세 어머니 박안순씨의 어깨를 껴안고 주무르자 박씨가 활짝 웃었다. [최정동 기자]
아들 김형종씨는 어머니의 ‘고운’ 피부를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서른 살 무렵 시력을 잃었다. 안구의 혈관층인 포도막에 염증이 생기는 안구질환이 그의 시력을 앗아 갔다. 그는 1급 시각장애인이 됐지만 10년째 어머니 박안순씨를 극진히 보살피고 있다. 어머니는 2007년부터 중풍을, 2015년부터는 치매를 앓고 있다.
동네에서 효자로 소문난 김씨의 하루는 어머니의 아침 식사를 챙기면서 시작된다. “소화 기능이 약해진 어머니를 위해 하루 세끼 다진 고기나 팥·깨 등을 넣은 여러 종류의 죽을 만들죠. 시금치·마늘·참기름·꿀을 함께 넣어 만든 죽을 가장 맛있게 잡수세요.”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된 어머니는 기저귀를 사용한다. 김씨가 하루에 다섯 번쯤 갈아드린다. 기저귀 안과 밖을 손으로 만져보며 기저귀 갈 때를 챙긴다. 매주 한두 번 목욕을 시켜드릴 때는 담요를 들것 삼아 어머니를 화장실로 실어 나른다.
김씨는 박씨가 마흔셋에 얻은 늦둥이다. 김씨가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강제노역으로 몸이 성치 않았다. “아버지는 허리가 불편하고 몸이 쇠약해 누워 계신 날이 많았어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농사를 지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2남2녀를 키우셨죠.”
김씨는 어머니·형과 함께 고향인 전북 정읍시를 떠나 1983년 서울에 터를 잡았다. 책이나 정수기 방문판매원, 호텔 안내원 등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러던 91년 어느 날 왼쪽 눈이 몹시 쑤시고 침침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오른쪽 눈마저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참다못해 찾은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포도막염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실명하게 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 갔다. 그래도 생계를 위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어머니에게는 이 사실을 숨겼어요. 집에선 앞이 잘 보이는 척 행동하다가 뜨거운 음식을 쏟아 데이고 이곳저곳에 부딪쳐 몸은 멍투성이가 됐지요.”
포도막염 발병 후 3년 만에 그는 한 줄기 빛조차 보지 못할 정도가 됐다. 어머니에게 실명 사실을 고백한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어머니는 손과 발로 방바닥을 내리치시면서 목 놓아 우셨어요.”
1급 시각장애인 김형종씨(오른쪽)가 99세 어머니 박안순씨의 어깨를 주무르자 박씨가 활짝 웃었다. [최정동 기자]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이튿날부터 아들 앞에서 울지 않았다. 대신 아들의 눈이 되어줬다. “지팡이를 짚은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산책하고 시장에도 갔어요. 저희를 본 주변 사람들은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줄 알더라고요.” 어머니는 10년 가까이 새벽 예배를 나가 “우리 아들 제발 눈 뜨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함께 살던 김씨의 형이 결혼하면서 모자는 96년부터 21년째 단둘이 살고 있다. 건강이 나빠진 어머니를 위해 손의 감각으로 요리·빨래·청소를 익혔다. 손은 수없이 찍히고 베였다. 작은 상처들은 공사장에서 생긴 굳은살처럼 변했다.
정작 김씨를 가장 아프게 한 건 어머니에게 치매 증세가 나타났을 때였다. “저 이외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혼잣말을 할 때도 있으셨어요.” 다행히도 치매는 호전됐다. 아들의 보살핌 덕분이었는지 주변 사람들을 다 알아보고 일상적인 대화도 가능해졌다. 모자는 기초생활수급비·노령연금·장애인연금을 합친 월 100만원으로 빠듯하게 생계를 꾸리고 있다. 결혼해 따로 사는 형과 두 누나들은 가끔씩 들러 모자를 돕고 있다.
김씨를 걱정한 주변에선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라”고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씨는 “내 몸 힘든 것보다 어머니가 곁에 계신 행복감이 더 큽니다. 사랑으로 돌봐준 어머니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죠”라고 말했다. 그의 소원은 “어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함께 산책 나갈 수 있을 만큼만 건강이 좋아지고, 오래오래 모시는 것”이다.
김씨는 어버이날인 8일 ‘효행자 서울특별시장표창’을 받는다.
중앙일보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2017.05.08 01:45수정 2017.05.08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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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 23:25)
(엡 6:1-3)것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 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복 주시는 통로입니다.
부모는 말하지 않고 표현이 서툴러도 희생하며 자식을 사랑한답니다. 그런데 자식은 그런 부모를 잘 몰라줍니다. 자기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키워보면서 겨우 부모의 희생적 사랑을 알고 미안해하면서 효를 행해보려고 하지만, 이때쯤이면 늦습니다.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고 늙거나 병들거나 세상을 떠났고, 자신도 가정을 꾸려가기가 버거운 형편이라 마음만 급합니다.
부모공경이 얼마나 중요하면, 하나님께서 인간관계에 첫째 계명으로 정해 놓고, 복을 주시는 통로로 약속까지 하셨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좀 빨리 철들고 효를 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효도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부모를 기쁘시게 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크고 거창한 것으로 부모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자기 형편에 맞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진심으로 부모님이 기뻐하실 수 있게 해 드리면 됩니다. 전화를 자주 하는 것도 좋고, 손 한번 잡아주며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말할 수 있고, 시원한 냉면이나 따뜻한 갈비탕이나 라면 한 그릇이라도 진심이 표현된다면 부모는 기뻐하십니다. 자기 기분이나 생색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생활에서부터 효가 묻어나야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나이 60이 넘은 아들이 재롱을 부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부모가 재산이 없거나, 병들거나 자식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 부모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식 눈치를 보기 마련입니다. 자식들 역시 그런 부모를 짐으로 생각하는 불행한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공경을 복 받는 통로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주안에서 내 형편껏 부모님 잘 공경하고 복 받는 통로가 활짝 열리면 좋겠습니다.-이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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