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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휴전선 긋기 "한 뼘이라도 더…"

행복을 나눕니다 2013. 8. 6. 06:10

 

 

 

휴전선 긋기 "한 뼘이라도 더…"

停戰 60年 군사분계선 측량 땐 긴장감 팽팽


停戰협정 60주년 기념 사진집으로 본 분단의 현장… 국내 최초 공개 사진 10여점도 포함

땅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군사분계선 합동 실측은 6·25 정전(停戰) 이후 1963년에도 계속됐다. 측량하고 기록하는 눈빛이 팽팽하다. 1961년 4월 23일 판문점에서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직후 유엔군과 북한군 경비병 사이에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1953년 7월 28일 72시간 내 전선(戰線) 철수 규정에 따라 북한 주민의 환송을 받으며 철수 중인 중공군의 모습도 보인다.


6·25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한쪽의 완승 없이 기어이 정전을 향해 간 전쟁으로 기록돼 있다. 정전협정 60주년 기획으로 나온 사진집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눈빛)에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 10여점이 실려 있다. 휴전 조인식장을 취재한 최병우 조선일보 기자는 "쌍방 대표 사이에는 악수도 없고 목례도 없었다"면서 "기이한 전쟁의 종막(終幕)"이라고 썼다.


(위 왼쪽부터)철조망 사이에 둔 유엔군과 북한군 - 1953년 7월 정전협정 조인 직후 군사분계선에서 유엔군(오른쪽)과 북한군이 대치하고 있다. 군사분계선 실측조사하는 한국군과 유엔군 - 1963년 9월 유엔군과 한국군이 군사분계선 실측조사를 하는 장면. (아래 왼쪽부터) 군사분계선 긋기 신경전 - 1963년 9월 5일 미 군속 사진사가 서부전선에서 촬영한 군사분계선 합동 실측 현장. 왼쪽에 유엔군과 한국군, 오른쪽에 북한군 실무자들이 앉아 측량 결과 등에 대해 회담하고 있다.


판문점 난투극 - 1961년 4월 23일 군사정전위원회 직후 판문점에서 유엔군과 북한군 경비병이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트럭 타고 가는 인민군 전쟁포로 - 1953년 8월 10일 문산에서 판문점으로 가는 인민군 전쟁포로를 실은 트럭 행렬. /눈빛 제공 유엔군과 공산군이 막대한 출혈을 하면서 전선은 38선을 오르내렸다.


인민군과 중공군을 38선 이북으로 밀어낸 유엔의 주도국 미국은 1951년 6월 1일 맥아더에 이어 새로운 유엔군사령관이 된 리지웨이 장군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정전협정에 의해 적대행위를 종식할 것, 최대한 용이하게 확정된 분계선 이남에서 대한민국의 권능을 확립하되 그 분계선은 38선 이남이 되어서는 안 될 것, 적절한 단계를 밟아 한국에서 외국군을 철수하도록 준비할 것, 한국군을 강화할 것….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통해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며 적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몰아낼 때까지 어떤 유화정책에도 양보할 수 없다"고 선언했지만 미·소·중(美·蘇·中)은 전쟁 종식을 바랐다. 1951년 7월 8일 개성에서 첫 회담이 열렸을 때 공산군 측이 다과를 내왔으나 유엔군 측이 사양할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전회담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전선에서는 불꽃이 일었다.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이 서명됐고 12시간 뒤인 오후 10시에 발효되면서 전선의 총소리도 멎었다.


이번 사진집에는 일본 다큐멘터리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를 비롯해 사진기자 김봉규·이해용·전민조 등의 기록이 담겨 있다. 공중폭격을 방지하기 위해 회담장 위에 띄운 헬륨 가스 기구, 정전협정이 조인된 직후 군사분계선에서 대치 중인 유엔군과 북한군, 판문점으로 가는 북한군 포로들을 실은 트럭 행렬도 눈길을 붙잡는다. 사진이 증언하는 분단 현장이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입력 : 2013.07.26 02:59 | 수정 : 2013.07.26 09:54


*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평화롭고 복되게 살게 하셨으나, 인간들의 욕심과 죄 때문에 불화가 생기고 국경이 그어지고 전쟁도 일어났습니다. 6 · 25 한국전쟁은 북한이 불법으로 남침한 전쟁인데 이 또한 북한의 야욕 때문입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싸울 능력이 없어, 3년간 전쟁을 치룰 때나, 휴전선을 긋는 일이나 전후 복구사업도, 유엔군들이나 우방이 목숨 걸고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63년 전에는 지구상에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가난한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를 세계가 도운 일은,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사랑하여 대부분 기독교 사상을 가진  나라들을 동원하여 대한민국을 돕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도와준 우방에게도 감사하며, 이제 우리는 성장한 모든 것을 가지고 세계로 나가 보은의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세계를 도와야합니다. 욕심과 죄는 불행을 가져옵니다.- 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