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정신 정치적 이용 안 돼…
국가장 결정해놓고 대통령 조문 안 한건 모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 찾은 5·18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
2021년 10월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5.18 시민군 상황실장인 박남선씨가 본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지난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는 우리 현대사의 상처와 책임, 용서·화합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책임과 관련, 노 전 대통령은 유서를 통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했지만, 5·18 단체 등에서는 “시민 학살한 책임을 덮을 수 없다”고 했다. 국가장(葬), 조기(弔旗) 게양을 놓고도 민심은 갈렸다. 그렇기 때문에 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67)씨의 노 전 대통령 조문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박씨는 당시 시민군을 이끌다 계엄군에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3년간 복역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난 27일 노 전 대통령 빈소에서 유족들 손을 잡아주며 “이제 하나가 된 대한민국을 위해 화해하고 화합하고 용서했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 29일 광주로 다시 내려갈 채비를 하던 그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빈소 조문이 상당히 주목을 받았다.
“뉴스가 나가고 여기저기서 전화 200통을 넘게 받았다. 대부분 ‘수고했다’ ‘잘했다’는 격려였다. 항의나 욕은 거의 없었다. (그는 31일 통화에서 ‘주말 새 80여 통을 더 받았다’고 했다.) 물론 5·18 유가족과 부상자들 가운데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를 비난하는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분들의 한(恨)과 분노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오른쪽)씨가 2021년 10월 27일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인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난 5·18 당시 ‘폭도대장’으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동생은 곤봉에 맞아 팔·다리·갈비뼈·코 다 부러졌다. 부상자·유가족 4500여명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사죄 뜻을 밝힌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이제는 화합·통합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단된 나라가 통일되기는커녕 지금 지역·정파·계층으로 나뉘어 더 갈등하고 싸우고 있지 않나. 이런 내 뜻에 공감하는 광주 사람들도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잘못을 다 용서했다는 의미인가.
“용서는 피해자가 먼저 하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칠 때 시작되는 거 아닌가. 40년 가까이 그런 일이 없었는데, 신군부 일원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2019년부터 아들 노재헌씨를 세 번이나 광주에 보내 사죄의 뜻을 전했다. 한참 늦었고, 아들을 통한 대리 사과이지만 그런 부분은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미안하다고 한다고 해서 잘못이 다 없어질 수는 없지만, 용서를 비는데 받아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책임 있는 다른 당사자들도 죽기 전에 결자해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광주에서 노재헌씨를 만났을 때 조문 약속을 한 걸로 알고 있다.
“노씨가 처음 광주에 왔을 때 나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했는데 만나지 않았다. 두 번째부터 만났는데 나는 ‘아들이 와서 사죄하는 것보다 당사자가 직접 와서 육성(肉聲)으로 사과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계속 누워 있고 필담 겨우 하는 정도라고 하더라. 병상에서 끌고 내려오라고 할 순 없지 않나. 노씨는 그 후에도 계속 내려왔다. 5·18 행사 때 쓱 참배하고 가버리는 정치인들보다 진정성이 있다고 봤다. 마지막 만났을 때 노씨에게 5·18 기념 배지를 달아주면서 ‘5·18 정신 꼭 기억해라. 그리고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찾아가겠다’고 했다.”
빈소에서는 유족들에게 어떤 말을 했나.
“고인이 광주 사람들 가슴에 피멍을 들게 했지만 그래도 아들 통해서 용서를 구하고 사죄한 것은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또 고인 주변에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있을 것인데 장례가 끝나면 그런 것들을 공개해 진상 규명이 완성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했다. 유족들도 그러겠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논란 속에서 끝났다. 국가장 장례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여당 지도부는 대부분 영결식에 불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애도 메시지는 발표했지만 직접 조문은 하지 않았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조문을 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장례 예우·절차를 놓고 갈등이 많았다. 광주와 5·18단체들은 국가장을 반대했다.
“광주의 아픔은 다 치유된 게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분들도 많고 후유증으로 인해 삶에 지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만 80여 명이다. 그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국가장 예우를 해준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 꼭 국가장을 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부도 많은 고민을 한 끝에 결정한 걸로 알고 있다. 총리도 ‘현대사가 거쳤던 굴곡에 대해서 한 단계를 넘어가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문 대통령은 조문하지 않았는데.
“국가장을 안 하면 모를까 정부가 예우를 갖추기로 결정했는데 그 수반인 대통령이 조문을 안 한 건 모순으로 보인다. 공과를 따지는 건 별개로 하고 화합 메시지 차원에서 조문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나 지역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모든 국민을 껴안아야 하는 것 아닌가.”
노 전 대통령 별세 계기로 전두환 전 대통령도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길 가다 어깨 부딪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사람인데, 전씨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놓고 뉘우치는 모습이 전혀 없고 오히려 희생자들을 욕보인다. 전씨가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빌면 용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인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참….”
몇 해 전부터 야당 지도부가 ‘다시는 광주시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정성이 있다고 보나.
“작년에 김종인(당시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씨가 5·18 묘지에 와서 무릎 꿇었을 때 난 참배 막으려고 시위하다 벌금 100만원 받았다. 그가 야당 대표여서 반대한 건 아니고 신군부에 적극 협조했던 사람이어서 그랬다. 지금 야당은 5·18에 책임 있는 민정당에 뿌리를 두고 있고 과거 망언으로 광주 사람들 가슴에 못도 많이 박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계속 찾아와 참회하고 반성하는 노력을 하는 모습은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조금씩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러다 언젠가 결국 화해가 이뤄지는 것 아니겠나.”
여당 일각에서는 야당의 이런 모습을 “사죄 쇼”라고 한다. “5·18은 국민의힘 따위가 정치적으로 이용해도 되는 역사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사과·반성 안 한다고 욕해왔는데 사과하는 걸로 또 문제 삼는 건 너무 편협하다. 물론 민주당에는 5·18에 직접 참여했거나 그 정신을 알리고 구현하는 데 앞장서온 분이 야당 쪽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5·18 정신이 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5·18은 민주화 초석이 된 국민의 운동이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이를 독점하려 한다면 5·18 정신을 계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광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정작 현 정부가 5·18 유족들을 위해 한 것도 거의 없다.”
그는 “많은 사람이 5·18 유족들이 큰 보상을 받았고 계속 특혜를 받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이 부분을 꼭 써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첫해에 5·18 유족들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실질적으로 나아진 건 없다. 5·18 동지 중에 기초생활수급자가 600명이다. 폭도로 낙인찍혀 직장도 다니지 못했고, 자녀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킨 사람도 많다. ‘가산점’ 때문에 논란이 있는데 애초 그런 자리에 응시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을 받은 유가족이 많지 않다. 몇 년 전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빈 부의 봉투가 여럿 들어왔다. 동지들이 위로 마음은 전하고 싶은데 형편이 되지 않으니 봉투에 이름만 써서 보낸 것이다. 5·18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5·18에 대한 왜곡·폄훼가 진정한 화합을 가로막고 있다고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부 단체는 북한군 특수부대가 5·18에 침투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당시 찍힌 광주 사진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은 박씨였다. 명예훼손 소송에서 법원도 박씨 손을 들어줬다.
“당시 황장엽이 56세였는데 26세인 내 사진을 황장엽이라고 우기고 그걸 또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왜곡이 계속되면 용서·화합을 바라는 광주 사람들 마음도 멀어진다. 5·18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
조선일보 임민혁 기자 입력 2021.11.01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1/11/01/DLLPT3PLZJGNTENBLCP4MK3L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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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 오직 예수님을 믿는 길뿐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베드로가 고쳤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놀랐고 당시 종교 지도자들도 놀라 이런 일을 싫어했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드디어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고 누가 앉은뱅이를 고쳤느냐고 다그쳤습니다.
♥ 그때 베드로가 담대히 말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고쳤으며 예수님 이외 누구도 구원받게 할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이외 그 어떤 사람의 이름이나 가르침이나 선행l나 수련으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럴듯한 이론과 주장에 속지 말고, 쉬우면서도 온전하고 바른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구원 받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뿐입니다.-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