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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3. 북한이 일으킨 6.25 전쟁

행복을 나눕니다 2020. 6. 23. 00:00

 

북한이 일으킨 6.25 전쟁

[6·25 70년, 아직도 아픈 상처] [1] 백마고지 노병의 마지막 소원

"27만발 砲雨… 남은 전우 세는 게 두려웠다"

 

1950년 10월 강원도 철원의 백마고지는 열흘 사이 주인이 12번 바뀌었다. 1만명의 국군은 이곳에서 중공군 3만명을 상대했다. 백마고지를 흐르는 역곡천은 숨진 아군과 중공군의 핏물로 붉게 물들었다. 백마고지 전투의 생존 노병(老兵)은 "원래부터 붉은빛 물이 흐르는 곳인 줄 알았다"고 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흐른 지난 18일, 노병들은 다시 한 번 백마고지를 찾았다. 지금은 비무장지대(DMZ)가 된 백마고지 위에 자리 잡은 아군 GP(감시소초)를 보고 백발이 된 노병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6·25 때 나라를 지킨 선열들의 유해 위에 GP가 생겼기 때문이다.

 

백마고지 참전전우회 이건모(90) 부회장은 "고지에 놔두고 온 전우들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나마 수습해온 전우들의 시신은 송판에 칡넝쿨로 엮어 날랐다. 전사자들의 시신을 30~40구씩 나르는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숙연해졌다고 한다. 바로 옆 전우가 갑자기 숨져도 놀라지 않는 상황이었다.

 

백마고지 전투 참전용사 이건모(오른쪽) 백마고지참전전우회 부회장이 18일 강원도 철원의 백마고지전적비 인근에서 6·25 참전용사의 후손인 천혜인 대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부회장과 천 대위 어깨너머로 보이는 산이 백마고지다. /이태경 기자

 

이 부회장은 1952년 제주도에서 군사 훈련을 마치자마자 화물 열차로 강원도 철원에 투입됐다. 카빈총을 1정 지급받고 기관총 탄약을 들고 다니는 역할을 맡았다. 바로 백마고지 전투에 투입됐는데 고지를 오르던 전우들이 총탄에 낙엽처럼 쓰러졌다. 그는 "전사자 시신을 1구씩 가지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하루 한 끼만 먹었던 병사들이 힘이 없었다"며 "두 사람이 시신 1구를 들고 왔지만 시신도 거두지 못한 전우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국군은 중공군을 백마고지에서 격퇴했다.

중공군 1만4000여명, 국군 3500여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전투 당시 백마고지에 쏟아진 탄환만 아군과 중공군을 합쳐 27만발이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아군은 철원 일대의 평야 지역을 지킬 수 있었다. 정부는 이번 6·25전쟁 70주년이 사실상 노병들의 마지막 10주기 기념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6·25전쟁 60주년이었던 2010년 참전유공자는 23만3000여명(5월 기준)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8만4000여명이다.

 

 

박명호(88) 백마고지 참전전우회장은 전투 당시 박격포 소대 일등중사(하사)였다. 그는 전투가 한 번 끝날 때마다 중대원 숫자를 확인하기가 무서웠다고 했다. 박 회장은 "중대원 인원 보고를 하면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다는 보고가 올라왔다"며 "170여명의 중대원 중 전사 70명, 부상 50명, 행방불명 30명, 현인원 20명과 같은 보고가 비일비재했다"고 했다.

 

24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포격을 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사고도 많이 있었다. 박 회장은 "바로 옆에서 박격포를 쏘던 병사가 깜빡 졸다가 포탄을 거꾸로 넣었다"며 "바로 박격포탄이 터져 병사들의 다리와 팔이 흩어졌고, 이를 수습해 병원에 후송시켰다"고 했다. 27만발의 포를 쏘는 통에 전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백마고지 일대는 밤에도 대낮처럼 밝았다. 노병은 "낮에는 먼지밖에 보이지 않았고, 밤엔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김영린(86) 백마고지 참전전우회 부회장은 당시 일등중사로 부대 보급을 담당했다. 군용 트럭이 없어서 일본산 민용 트럭을 몰고 부대에 보급품을 날랐는데, 중공군의 직사포가 항상 트럭을 겨냥했다. 김 부회장은 "그땐 젊어서 그래도 견뎠던 것 같다"며 "포 소리가 나면 무조건 엎드려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죽었다"고 했다. 그는 백마고지 전투 당시 18세였다.

 

이날 노병들의 백마고지 방문에는 현재 9사단에 복무 중인 참전용사의 후손들이 동행했다. 천혜인 대위는 6·25 참전 용사인 할아버지가 생각났다고 했다. 천 대위는 "참전 용사들께서 지휘관이 전투 직전 철모에 9사단을 뜻하는 숫자 9를 그리라고 지시해서 풀뿌리를 뽑아 페인트를 찍어 그렸다고 했다"며 "어설펐지만, 그 마음만은 대단했다고 하는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울컥했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참전 용사였던 노기영 병장은 "외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어렴풋이 들었던 당시의 얘기를 다시 들으니 애틋했다"며 "참전 용사들께서 손자 같다며 제 손을 꼭 붙잡아 주셨다"고 했다.

 

백마고지 참전 노병들의 마지막 희망은 전우들의 추모 행사를 지금은 GP가 들어선 백마고지에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직 그 자리에 있는 전우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백마고지는 DMZ 안에 있기 때문에 유해 발굴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DMZ에 있기 때문에 역시 민간인 출입도 어렵다. 현재는 대대본부와 연대본부가 있었던 백마고지전적지에서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1952년 10월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3개 사단이 철원 백마고지에서 벌인 전투. 10 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졌다. 고지의 주인이 12차례 바뀌는 혈투 끝에 국군이 승리했다. 중공군 1만4000여 명, 국군 3500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전투 당시 아군과 중공군이 쏜 포탄은 27만발에 달했다. 이로 인해 고지의 수목이 완전히 사라졌고, 마치 하얀 말이 누워있는 듯 보였다 해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일보 양승식 기자 입력 2020.06.20 01:42 | 수정 2020.06.20 01:5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0/20200620000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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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 전쟁에는 무기와 군인이 필요하지만, 승패는 하나님께서 주장하십니다.

        평화가 지속되어야 좋지만, 만약 전쟁이 났다면 이겨야 합니다. 전쟁에 이기려면 좋은 무기와 훌륭한 군인과 지혜 있는 지휘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전쟁에 승리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갖춰야 합니다.

 

다윗은 당시 강력한 군대를 자랑하는 블레셋 나라와 싸우러 가면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다윗은 어린 소년이었고 가진 무기는 총칼이나 창이 아니라 물맷돌 세 개가 전부였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키가 구척이나 되고 엄청나게 큰 창을 가진 골리앗이라는 장군이 선봉에서 지휘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너는 칼과 창으로 나오지만, 나는 여호와 이름으로 나간다.”라고 외치며 돌멩이 하나를 던졌는데 그것이 적장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되어 쓰러지므로 단번에 승리합니다. 이는 다윗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긴 것입니다.

 

♥ 국가 간의 전쟁도 하나님께 속했지만, 인간의 생존 경쟁도 사람의 노력만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온전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얻은 성공은 내 생각과 같지 않다 해도 안전하고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온전히 의지하고 믿는 자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통하여 승리의 주역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이박준   (lee7j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