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영화 “귀향”
"소녀야 아팠지? 이제 집으로 가자…"
▲주인공 정민(강하나 분)이 영화 ‘귀향’ 중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지게를 타고 즐거워하고 있다. 제일교포 4세인 강양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늘 조선 사람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귀향했다”고 말했다.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귀향’이 한 차례 상영될 때마다, 위안부 소녀 한 명 한 명의 영혼이 돌아옵니다.” 일제시대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된 소녀의 아픔을 담은 ‘귀향’의 조정래(42) 감독이 한 말이다. 비공식적인 위안부 피해자 규모는 약 20만 명. 조 감독의 계산대로라면 극장에서든, 유튜브에서든 20만 번 상영되어야 한다. 이렇게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 한 명 한 명을 고향으로 데려오는 영화이다.
후원자 4만 여명의 기부로 기획 10여 년만인 올해 상반기에야 영화가 크랭크인됐다. 올해 7월 미 의회에서 티저영상 시사회가 열렸고, 뉴욕타임스가 전면에 보도했다. 현재 연내 개봉을 목표로 후반 작업 중이다. 조 감독을 포함해 임성철 프로듀서(39), 노영완(26) 제작실장 모두 크리스천이다. 임 PD와 노 실장을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본사에서 만나 영화 제작 뒷얘기를 들었다.
“시리아 난민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어린이들입니다. 일제는 소녀들을 끌고 가 성적으로 유린했고 병들면 불태웠어요. 일본은 사과해야하고, 우리는 전쟁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귀향’을 평화의 도구로 쓰시길 기도하고 있어요.” 후원자 모집부터 영화 중 일본군 역까지 ‘1인 다역’을 한 임 PD의 말이다.
‘우연’처럼 보이는 여러 만남이 영화 귀향 제작의 ‘필연’을 만들어 왔다. 임 PD는 먼저 2002년 강일출 할머니와 조 감독의 만남을 소개했다. “감독님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신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자원봉사를 다녔어요. 그때 감독님이 강 할머니가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죠. 당시 끌려간 조선 소녀의 평균 나이가 16세인데 요즘 신체 나이로는 12세 정도에요. 초경도 안한 소녀였죠. 병들면 그 그림처럼 부대 밖으로 끌고 가 총살한 뒤 소각했다고 해요.” 조 감독은 ‘소녀들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 장면을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저는 그 무렵 매일 똑같은 꿈을 꾸곤 했어요. 수 백 명이 어떤 현장을 오가는 거예요. 진로를 놓고 기도하던 때입니다. 그 이미지는 선한 사업가였어요. 올해 촬영 현장이 그 장면하고 비슷했어요.”
4대째 신앙인이자 미술을 전공한 임 PD는 ‘선한 사업’이 자기 진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2009년 우연한 자리에서 조 감독으로부터 영화 출연 제안을 받았다. “제게 일본군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죠. 그런데 촬영이 올해 가을, 내년 봄…. 자꾸 미뤄졌죠. 후후. 투자자가 없었죠.”
임 PD는 배역을 제안 받은 뒤 조 감독과 함께 역사 공부를 하고, 나눔의집에서 할머니들을 만났다. “긴 시간 준비하면서 사명 같은 게 생겼어요. 위안부 할머니들 몸엔 여기저기 상처가 많아요. 일본군들에게 당한 거죠. 강 할머니 머리엔 쇠꼬챙이 자국이 선명하게 있어요. 이제 생존 위안부 할머니가 쉰 명도 안 됩니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외종손이다. 그의 조모 김진희가 김구 선생과 사촌이다.
노 실장에게 어떻게 귀향에 합류했는지 물었다. “위안부에 대한 오인숙의 연작시집 ‘귀향’을 읽고 2013년 연극을 무대에 올렸어요. 이 연극의 수익금을 기부할 곳을 찾던 중 조 감독님이 같은 제목의 영화를 제작한다는 걸 듣고 기부했어요. 그러다 올해 ‘수요집회’에서 감독님을 우연히 만났죠.” 92년 1월부터 열린 수요집회는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시위이다. 세계 최장 정기 집회이다.
“조 감독님이 힘들어서 영화제작 포기하려고 했는데 저희가 보낸 후원금을 받고 마음을 돌리셨다고 해요. 수요집회에서 절 만난 날 제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돈을 줄 수가 없어 말을 못 꺼냈다고 해요. 그 맘 알고 저희 팀이 먼저 일하겠다고 했죠.”
막상 촬영에 들어갔지만 준비한 돈은 나흘 만에 바닥났다. 투자 유치는 임 PD 몫이었다. “매일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구하는 심정으로 기도했어요. 친구 영식이 아버지, 동네 카센터 달구지 사장님 등등에게 투자 해달라고 했는데 신기하게 다들 수천만, 1억원 넘게 해주셨어요.”
노 실장이 말을 이어 받았다. “촬영 기간 6월 말까지 두 달여 임 PD님이 기도하면 딱 필요한 돈이 채워졌어요. 일본인 남자 배우 한 명은 그걸 보고 이제 자기도 교회 간다고 해요(미소).” 임 PD는 10억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고 시민 4만 여명이 5억원 가량을 후원, 영화 촬영을 마쳤다. 그는 귀향이 미 의회에서 상영되던 날, 희귀질환 ‘쿠싱병’으로 수술을 받았다. 쿠싱병에 걸리면 뼈가 약해진다.
병에 걸린 걸 몰랐냐고 물었다. “몰랐습니다. 올해 초부터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세 차례 가서 MRI(자기공명영상) 등을 찍었는데 ‘이상 없다’고 했어요. 영화 촬영 다 마치고 알게 됐어요. 갈비뼈 2개가 부러져 있더군요. 오진한 의사는 제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저는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쿠싱병인 줄 알았으면 어떻게 귀향을 끝까지 찍었겠어요?”
그는 귀향을 통해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촬영 마친 날 제작팀 잔고가 477원뿐인 날도 있었어요. 제가 기도로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하신 걸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날마다 오늘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인도를 받는 기쁨을 알았으니까요.” 그는 인터뷰를 한 날 아침에도 항생제 등 알약 10여개를 삼켰다. 쿠싱병 때문이다.
“한번은 거울을 보고 엉엉 울었습니다. 제 외모가 볼품없어졌거든요. 병에 걸리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죠. 발은 퉁퉁 부어서 300㎜ 신발도 발에 안 맞았어요. 제가 자랑하던 건강, 힘, 외모 모든 것을 하나님이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물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문화로 선한 영향을 세상에 끼치고 싶습니다.”
*(행17:30-31)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 변명할 수 없는 시대.
변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변명만 하다가 망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맑은 사회로 환경이 발전하므로 정직해야 합니다. 더 분명한 것은, 주님 앞에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 세상에 널리 전해지지 않아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말로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구원 받는다는 진리가 온 세계에 전파되었기 때입니다. 마지막 날 주님의 심판 첫 기준은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구분될 것입니다. 개개인의 마지막이 언제 일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믿어야 합니다.-이박준
'이런일 저런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86. 쇼팽 콩쿠르 1등 소감 (0) | 2015.10.28 |
---|---|
2185. 기술을 배워야 평생 안정적이다 (0) | 2015.10.27 |
2182. 결혼식 문화 바뀔 때 됐어요 (0) | 2015.10.22 |
2181. 청년 장사꾼의 대박비결은? (0) | 2015.10.21 |
2079. 감기 vs 독감, 어떤 차이 있을까? (0) | 2015.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