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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4. 위안부 피해자 영화 “귀향”

행복을 나눕니다 2015. 10. 26. 06:28

 

 

 

 

 

위안부 피해자 영화 귀향

"소녀야 아팠지? 이제 집으로 가자…"

 

주인공 정민(강하나 분)이 영화 귀향중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지게를 타고 즐거워하고 있다. 제일교포 4세인 강양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늘 조선 사람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귀향했다고 말했다.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귀향이 한 차례 상영될 때마다, 위안부 소녀 한 명 한 명의 영혼이 돌아옵니다.” 일제시대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된 소녀의 아픔을 담은 귀향의 조정래(42) 감독이 한 말이다. 비공식적인 위안부 피해자 규모는 약 20만 명. 조 감독의 계산대로라면 극장에서든, 유튜브에서든 20만 번 상영되어야 한다. 이렇게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 한 명 한 명을 고향으로 데려오는 영화이다.

 

후원자 4만 여명의 기부로 기획 10여 년만인 올해 상반기에야 영화가 크랭크인됐다. 올해 7월 미 의회에서 티저영상 시사회가 열렸고, 뉴욕타임스가 전면에 보도했다. 현재 연내 개봉을 목표로 후반 작업 중이다. 조 감독을 포함해 임성철 프로듀서(39), 노영완(26) 제작실장 모두 크리스천이다. PD와 노 실장을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본사에서 만나 영화 제작 뒷얘기를 들었다.

 

시리아 난민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어린이들입니다. 일제는 소녀들을 끌고 가 성적으로 유린했고 병들면 불태웠어요. 일본은 사과해야하고, 우리는 전쟁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귀향을 평화의 도구로 쓰시길 기도하고 있어요.” 후원자 모집부터 영화 중 일본군 역까지 ‘1인 다역을 한 임 PD의 말이다.

 

우연처럼 보이는 여러 만남이 영화 귀향 제작의 필연을 만들어 왔다. PD는 먼저 2002년 강일출 할머니와 조 감독의 만남을 소개했다. “감독님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신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자원봉사를 다녔어요. 그때 감독님이 강 할머니가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죠. 당시 끌려간 조선 소녀의 평균 나이가 16세인데 요즘 신체 나이로는 12세 정도에요. 초경도 안한 소녀였죠. 병들면 그 그림처럼 부대 밖으로 끌고 가 총살한 뒤 소각했다고 해요.” 조 감독은 소녀들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그 장면을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저는 그 무렵 매일 똑같은 꿈을 꾸곤 했어요. 수 백 명이 어떤 현장을 오가는 거예요. 진로를 놓고 기도하던 때입니다. 그 이미지는 선한 사업가였어요. 올해 촬영 현장이 그 장면하고 비슷했어요.”

 

4대째 신앙인이자 미술을 전공한 임 PD선한 사업이 자기 진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2009년 우연한 자리에서 조 감독으로부터 영화 출연 제안을 받았다. “제게 일본군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죠. 그런데 촬영이 올해 가을, 내년 봄. 자꾸 미뤄졌죠. 후후. 투자자가 없었죠.”

 

PD는 배역을 제안 받은 뒤 조 감독과 함께 역사 공부를 하고, 나눔의집에서 할머니들을 만났다. “긴 시간 준비하면서 사명 같은 게 생겼어요. 위안부 할머니들 몸엔 여기저기 상처가 많아요. 일본군들에게 당한 거죠. 강 할머니 머리엔 쇠꼬챙이 자국이 선명하게 있어요. 이제 생존 위안부 할머니가 쉰 명도 안 됩니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외종손이다. 그의 조모 김진희가 김구 선생과 사촌이다.

 

노 실장에게 어떻게 귀향에 합류했는지 물었다. “위안부에 대한 오인숙의 연작시집 귀향을 읽고 2013년 연극을 무대에 올렸어요. 이 연극의 수익금을 기부할 곳을 찾던 중 조 감독님이 같은 제목의 영화를 제작한다는 걸 듣고 기부했어요. 그러다 올해 수요집회에서 감독님을 우연히 만났죠.” 921월부터 열린 수요집회는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시위이다. 세계 최장 정기 집회이다.

 

조 감독님이 힘들어서 영화제작 포기하려고 했는데 저희가 보낸 후원금을 받고 마음을 돌리셨다고 해요. 수요집회에서 절 만난 날 제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돈을 줄 수가 없어 말을 못 꺼냈다고 해요. 그 맘 알고 저희 팀이 먼저 일하겠다고 했죠.”

 

막상 촬영에 들어갔지만 준비한 돈은 나흘 만에 바닥났다. 투자 유치는 임 PD 몫이었다. “매일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구하는 심정으로 기도했어요. 친구 영식이 아버지, 동네 카센터 달구지 사장님 등등에게 투자 해달라고 했는데 신기하게 다들 수천만, 1억원 넘게 해주셨어요.”

 

노 실장이 말을 이어 받았다. “촬영 기간 6월 말까지 두 달여 임 PD님이 기도하면 딱 필요한 돈이 채워졌어요. 일본인 남자 배우 한 명은 그걸 보고 이제 자기도 교회 간다고 해요(미소).” PD10억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고 시민 4만 여명이 5억원 가량을 후원, 영화 촬영을 마쳤다. 그는 귀향이 미 의회에서 상영되던 날, 희귀질환 쿠싱병으로 수술을 받았다. 쿠싱병에 걸리면 뼈가 약해진다.

 

병에 걸린 걸 몰랐냐고 물었다. “몰랐습니다. 올해 초부터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세 차례 가서 MRI(자기공명영상) 등을 찍었는데 이상 없다고 했어요. 영화 촬영 다 마치고 알게 됐어요. 갈비뼈 2개가 부러져 있더군요. 오진한 의사는 제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저는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쿠싱병인 줄 알았으면 어떻게 귀향을 끝까지 찍었겠어요?”

 

그는 귀향을 통해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촬영 마친 날 제작팀 잔고가 477원뿐인 날도 있었어요. 제가 기도로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하신 걸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날마다 오늘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인도를 받는 기쁨을 알았으니까요.” 그는 인터뷰를 한 날 아침에도 항생제 등 알약 10여개를 삼켰다. 쿠싱병 때문이다.

 

한번은 거울을 보고 엉엉 울었습니다. 제 외모가 볼품없어졌거든요. 병에 걸리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죠. 발은 퉁퉁 부어서 300신발도 발에 안 맞았어요. 제가 자랑하던 건강, , 외모 모든 것을 하나님이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물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문화로 선한 영향을 세상에 끼치고 싶습니다.”

 

*(17:30-31)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 변명할 수 없는 시대.

변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변명만 하다가 망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맑은 사회로 환경이 발전하므로 정직해야 합니다. 더 분명한 것은, 주님 앞에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 세상에 널리 전해지지 않아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말로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구원 받는다는 진리가 온 세계에 전파되었기 때입니다. 마지막 날 주님의 심판 첫 기준은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구분될 것입니다. 개개인의 마지막이 언제 일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믿어야 합니다.-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