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에 내려와 聖者가 된 北의 도둑놈
조영호는 무심코 올라탄 트럭에서 예사롭지 않은 박스들을 봤다
북한에 전설적인 좀도둑이 있었다. '평양 꼬마'라는 사내다. 그는 열 한살 때인 1974년부터 20년간 집보다 감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의 목소리가 지금 1주일에 세 번 새벽 전파(電波)에 실려 북으로 간다. 극동방송을 통해서다.
남으로 온 그는 목사(牧師)가 됐다. 탈북자 2만 명 가운데 목사 된 이가 5명이라는데 '평꼬' 조영호(48)가 그 안에 포함돼 있다. 그는 지난 6월 3일 서울 잠실농아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야말로 '성자(聖者)가 된 도둑놈' 같은 인생이다.
'기구(崎嶇)하다'는 말 외에 그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그의 아버지(조경환)는 6·25전쟁 때 김일성의 러시아어 통역이었다. 그는 별 탈이 없었으면 은수저를 입에서 떼지 않고 살 팔자였다. 그게 남침(南侵) 때 바뀌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김필녀)를 약탈해 북으로 갔다. 이화여전 출신에 얼굴도 고왔는데 문제는 장인이었다. 장인은 황해도 멸공단(滅共團) 책임자로 총살당했다. 반동분자의 딸과 '황제'의 통역, 그 해괴한 조합이 모두를 위태롭게 했다.
때맞춰 김정일이 '곁가지 치기운동'이란 걸 벌였다.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권력 주변에서 추방하자는 것이었다. 공산당은 처음엔 이들 부부에게 합의 이혼을 종용했지만 막상 부부가 헤어지자 돌변했다. '기회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아버지는 2남3녀와 함께 청진으로 추방됐고, 어머니는 평북 동림탄광 식모(食母)로 간 지 1년 만에 죽었다. 가족의 몰락 속에 남의 것 훔치고 싸움 일삼던 조영호는 2년 넘는 소년원 생활 끝에 군에 입대했다. 1980년 10월의 일이다.
조선인민경비대 사회안전부 제6국 공병국. 명칭은 그럴싸했지만 군인이 아니라 '노가다'였다.
묘향산 김일성 별장을 시작으로 남신의주 호요방(胡耀邦) 특각(特閣), 신필름촬영소, 동평양대극장을 짓느라 10년 청춘이 훌쩍 지났다.
제대 날 양복지 한 벌과 현금 500원을 들고 평양 대동강상점에 들렀을 때 도벽(盜癖)이 발동했다. 아버지 생각에 녹용 하나를 슬쩍하다 걸린 것이다. 평남 중산노동교양소에서 1년 간 지옥을 맛보고 출소하던 날 다시 사단이 일어났다.
남루한 차림으로 집에 가기 뭐해 목욕탕에서 훔쳐 입은 옷이 공교롭게 평양제1사범대 배지가 붙은 교복이었던 것이다. 이번엔 함북 회령 44교화소를 거쳐 일명 '돌박산'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동림의 66교화소에서 2년을 보내야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삼십에 불과한 그의 얼굴은 노인처럼 변해 있었다. 그런 그를 끝까지 돌본 건 아버지였다. 혈연은 무서웠다. 청진 제철소에 취직시켜주고 결혼도 시켰다. 하지만 짧은 평화도 잠시, 1994년 2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20리 길, 트럭 한 대에 매달렸는데 짐칸에 잘 포장된 박스가 놓여 있었다.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순간 조영호의 눈에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몇달째 강냉이죽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조영호는 눈을 질끈 감고 박스를 내던졌다.
상자 속엔 꿩이 18마리 들어 있었다. 그런데 겉에 쓰인 글을 읽는 순간 심장이 쾅하고 내려앉았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가 친히 보내는 선물'! 김정일이 직접 사냥한 뒤 자기 생일을 맞아 도당(道黨) 간부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 길로 불 켜진 집을 찾아 꿩을 팔아치웠다. 북한 돈 300원씩 하는 닭 한 마리의 절반 정도 헐값이었다. 다음날 청진에서 난리가 났다. 공범(共犯)은 다 잡히고 주범만 남았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 혼자 한 짓인데 공범이 무슨 소린가?…. 알고 보니 꿩에 웃돈 붙여 시장에서 팔려던 이들이 다 체포된 것이다. 열흘 후 안전원 두 명이 그를 찾아왔다. 안전부에 도착해 유리창 앞에 섰다. 붙잡혀 온 공범들이 그 뒤에서 자기를 향해 손짓하는 게 보였다. 순간 그는 냅다 뛰었다.
며칠 밤낮을 걸어 두만강을 건넜을 때 그가 본 건 십자가였다. 십자가는 북한에서 병원 표시다. 그런데 그 안엔 의사·간호사 대신 하나님을 섬기는 아낙네가 있었다. 여인은 이 밑바닥 인생에게 따뜻한 밥과 믿음을 줬다.
몇 달 뒤 천진에서 인천행 페리를 훔쳐 타고 한국에 온 조영호는 택시 몰고 돌 쪼고 이삿짐 나르며 신학을 공부했다. 많은 이가 그를 도왔다. 예용범(55) 일산제일교회 목사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몇 달씩 조영호에게 성경 공부를 시켰다. 예 목사는 북한 정권이 가장 무서워하는 해병 283기 출신이다. 탈북 한 지 17년 만에 '도둑 조영호'는 '목사 조영호'가 됐다. 그러면서 틈틈이 문경 대미산, 정선 문래산에 지천으로 널린 봉삼을 캐서 번 돈을 남에게 다 쓴다.
북한은 핵폭탄을 만든다. 우리는 북한의 양아치조차 받아들여 바르게 만들려 한다. 그러고 보면 어느 쪽이 진짜 '햇볕정책'인지 아리송해지면서 결말이 궁금해진다. 양쪽이 가진 무기(武器) 가운데 어느 게 더 치명적일까.
▲ 문갑식 선임기자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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