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20년 청산, 속죄하는 삶
예수님 사랑으로 어려운 이웃 돕는 일. 조폭 출신 10년째 무료급식 활동
1996년부터 새로운 삶 살아 "불량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세우고 싶어"
동인천 역 앞 광장. 두툼한 점퍼 차림의 노숙자와 독거 노인 등 20여 명이 컵라면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꾸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하네. 정말 고마워." 서정일(74)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아버지, 뵐수록 신수가 훤해지네요. 맛있게 드세요!"
170㎝ 키에 탄탄한 체격의 50대 남자가 뜨거운 물을 부어주며 인사를 건넸다. 10년째 무료 급식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종묵(51) 목사다.
이 목사는 자원봉사자 5명과 함께 매일 새벽 4시 구월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하역 작업을 돕고 남은 야채를 얻어 온다.
오후에는 근처 연안부두에서 생선을 산다. 그렇게 마련한 찬거리로 점심·저녁 두 차례 140인분의 따뜻한 식사를 낸다. 이 목사는 "조폭 생활만 20년"이라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는 게 유일한 속죄의 길"이라고 했다.
이목사는 왕년에 200여 명의 조직원을 둔 폭력조직 행동대장 출신이다.
어릴 적부터 '주먹'으로 꼽혔다.
칼을 갖고 다니는 등 악행을 일삼다 중2 때 퇴학당했다.
19세 때 '조직'에 들어가 낮에는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철거민을 두들겨 패고, 밤이면 나이트클럽과 룸살롱을 전전했다.
20여 년의 조폭 생활 동안 15번을 잡혀 7개 교도소에서 16년을 보냈다.
1996년 인천순복음 교회 최성규(68) 목사를 만나며 그의 인생이 확 달라졌다.
사나이로 태어나 푸른 옷만 입다가 죽고 싶습니까? 아들 때문에 화병으로 숨진 아버지 생각도 났다. 방송통신 강의로 신학을 공부했다. 3년 뒤 출소해 전도사가 됐고, 2004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조폭 시절부터 갖고 있던 부동산은 처분해 99년 인천 동구 송림동에 165㎡(50평)짜리 '사랑의 마을' 쉼터를 마련하는 데 썼다.
지금은 정신지체 장애인 4명과 소년·소녀가장 2명, 출소자 4명이 살고 있다. 2003년에는 인현동에 66㎡(20평)짜리 무료 급식소를 열었다.
이 목사는 '교도소 동료'들에게 편지를 보내 "갈 곳 없으면 언제든 와라. 좋은 일 하면서 살자"고 호소했다. 전과자에 노숙 생활을 거친 최재만(55)씨가 8년 전부터 자원봉사자로 합류했다.
고비도 있었다. "전과자는 아무리 잘해도 쓰레기" 같은 주위의 삐딱한 시선이 못마땅해 한때 조폭 생활에 다시 뛰어들 뻔한 적도 있었다.
4~5명이던 후원자들이 이제 30명을 넘었다. 주먹 판에서 손을 씻은 선배들이 매달 300만~400만원의 후원금을 보내준다.
그는 중학교 10곳의 불량 서클 학생들을 담당하는 '생활 지도사' 활동도 하고 있다.
미래의 조폭을 꿈꾸던 퇴학 직전의 학생들이 형님의 지도를 받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 목사는 "출소자들이 일하며 자립하는 갱생 공동체, 불량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를 세우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인천=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 (수23:14)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 (잠16:29)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불선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 (잠2:20)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22)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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