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5.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자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자
"늦기 전에 깨닫는 은혜"
어느 목사께서 주일 설교 때 암 투병 중인 이어령 교수의 예화를 하였습니다.
설교 후에 저의 두 딸에게 이 글과 함께
“네게 전해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야” 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 (특히 젊은 아빠들)에게 이 글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늦기 전에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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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은 젊은 시절 가난했고 너무 바빴다고 합니다.
아빠로서 딸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은 돈을 벌어 바비인형이나 피아노를 사주고 좋은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답니다.
어느 날 어린 딸 민아가 글쓰던 자신의 서재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빠에게 굿나잇을 하러 온 것입니다.
아마도 딸은 아빠가 안아주고,
그리고 새 잠옷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마침 떠오르는 영감을 글에 담아내기 위해 여력이 없었습니다.
글에 집중하느라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만 흔들며 “굿나잇 민아.” 라고 했습니다.
예민한 아이였던 딸 민아는 아빠의 뒷모습만 보고 돌아서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딸이 결혼도 하고
중년이 되었지만 사랑하는 딸은
암에 걸려 결국 아버지보다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죽은 딸이 생전에 했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때 수십 년 전의 그 날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딸이 얼마나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를 알았습니다.
딸은 인터뷰 기사에서
퇴근해 온 아빠의 팔에 매달렸을 때, ”아빠 밥 좀 먹자“ 하고 밀쳐낸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날 아빠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원고 마감이야, 얘 좀 데려가!“ 라고 엄마에게 소리치는 아버지의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인터뷰에서
아빠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라며 아빠를 두둔해 줍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합니다.
자신의 사랑 자체가 부족했고 믿음이 부족했다고.
자기가 지금 일하지 않으면
‘제대로 사랑하지 못 할 거야’ 하는
불안한 마음에 돌아볼 수 없었노라고.
그가 잘못을 깨닫고 늦었지만
이미 천국에 간 딸에게 편지를 쓰며
단 30초만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렇게 썼습니다.
“나에게 만일 30초의 그 시간이 주어진다면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 때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하고 외치는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돼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내 사랑하는 딸.
그런데 어찌하면 좋으니.
내가 눈을 떠도 너는 없으니
너와 함께 맞이할 아침이 없으니.
그러나 기도한다.
우편번호 없이 부치는 이 편지가
너에게 전해질 것을 믿는다.
그래서 묵은 편지함 속에 쌓여 있던 낱말들이 천사의 날갯짓을 하고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꿀 것이다.
갑자기 끊겼던 마지막 대화가 이어지면서 찬송가처럼 울려오는구나.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보고 싶다 내 딸아”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 이어령 )
30초면 충분한데 바쁘다고 딸에게조차 뒤돌아보지도 않고 일에 몰두해 있는
그 젊은 시절의 이어령 선생님의 모습이 꼭 우리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일하고 있는 것입니까?
중요한 것을 한다고 하면서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주간도 미소가 넘치는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소망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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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6장 24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이 약속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지금은 수도 시설이 잘돼 편리합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수도가 아닌 우물을 사용했는데 특히 사막 지역에서는 우물을 파도 물을 발견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물은 재산이고 돈으로 팔고 사기도 하며 그것을 뺏기 위하여 싸움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라는 사람은 우물을 빼앗기면 또 파고 또 빼앗기고 탈취 당해도 싸우지 않고 옮겨 가며 우물을 계속 팠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삭이 억울하긴 해도 옮겨 다니며 우물을 파기만 하면 물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뺏는 자들은 아무리 우물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인정한 뺏앗는 자들이 이삭에게 굴복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복 받은 자다 우리와 화친하자” 하며 스스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굴복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하신 약속으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 지금도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 약속을 믿고 붙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잘나고 잘해서 함께 하신다기보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복된 삶이 됩니다.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인간적으로 강자라도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면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 결국은 승리합니다.-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