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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 소록도에서 20년 …

행복을 나눕니다 2014. 8. 11. 15:05

 

 

소록도에서 20

성천상 받은 치과의사 오동찬 씨

 

"누가 소록도 오래 남나" 아내와 연애시절 내기 무승부국립소록도병원 오동찬 의료부장은 1995년 공중보건의로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다. 20년간 한결같은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한센인들은 가족이라고 부른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달 29일 오후 3시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한센인 고귀환(85)씨 집에 국립소록도병원 오동찬(47) 의료부장이 찾아왔다.

 

 고씨는 이날 오전 병원에서 오 부장에게 치료를 받았다. 치아가 부러져서다. 오 부장은 고씨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집을 방문한 것이다. 오 부장은 고씨의 잇몸 상태가 어떤지, 출혈은 없는지 등을 점검했다. 그는 집 안이 눅눅하니 문을 열어 통풍하고 침구류 등은 햇볕에 말리라잔소리를 했다. 고씨는 환자 1명을 하루에 두 번 진료하는 의사는 별로 없을 것이라며 오 부장은 소록도 주민에게 수호천사’”라고 했다.

 

 오 부장은 인근 마을자율 방범대(선도반) 사무실도 찾았다. 주민 이상호(59)씨를 만나자 씨익 웃으며 옷을 뒤졌다.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고는 심장이 좋지 않은 분이 담배를 많이 피우시는 것 같네요. 하루 5개비 이하로 줄이기로 약속해요라며 이씨의 손을 잡았다.

 

 오 부장의 일과는 늘 이렇다. 20년 전 소록도에 온 이후 변함이 없다. 오전 진료를 마치면 오후에는 환자의 집을 찾아 나선다. 걷거나 스쿠터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빈다. 이날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10여 가구를 방문했다. 진료 예약 환자가 오지 않을 땐 반드시 그의 집에 간다. 몸이 불편한 환자는 직접 태우러 가기도 한다. 외로운 할머니들에겐 말동무를 해준다.

 

그가 동네를 누비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병원에서 잠깐 진료하고 약만 조제해주는 것은 진정한 진료가 아니죠. 더군다나 마음에 깊은 상처까지 있는 한센인들에겐 더욱 그렇죠. 마음이 통해야 진정한 진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동찬 부장은 오전에는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오후에는 마을을 돌면서 주민의 말동무를 해준다. 오 부장을 단순한 의사로만 생각했던 한센인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차츰 의사에서 친구로 변했다. 570여 명(평균 연령 74)의 주민들은 그를 가족처럼 생각한다. 몸과 마음을 함께 어루만지는 심신(心身)주치의라고 한다. “섬에 들어온 지 1년쯤 지났을 때였지요. 한 주민의 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때가 됐으니 식사를 하고 가라하더군요. 같이 앉아서 밥 한 그릇을 비웠죠. 소문이 나 식사 요청이 쇄도하더군요. 주민들이 마침내 한 식구로 인정을 해주기 시작한 거죠.”

 

 오 부장은 1995년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한 이후 섬에 눌러앉았다. 고교 때 슈바이처·허준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의사를 꿈꿨다. 조선대 재학 때는 토요일마다 광주시내 재활원에 의료 봉사를 다녔다. 조선대 치대 본과 2학년 때 보이스카우트 도우미로 소록도를 방문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힘겹게 살고 있는 한센인들과 평생을 같이하겠다고 다짐했다.

 

치대를 졸업하고 망설임 없이 소록도 공중보건의를 택했다.

오 부장은 산간 벽지나 다른 섬도 많았지만 소록도야 말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소록도병원에는 의사 11명이 근무 중이다. 박형철 원장과 오 부장, 외과·이비인후과 과장 등 4명은 정규직이고, 7명은 공중보건의다. 오 부장이 소록도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의사다.

 

  그는 한센병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위해 아랫입술 재건 수술법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했다. 한센병은 완치돼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하거나 밥알을 흘리기도 한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오 부장은 독학으로 성형수술을 연구했다. 한센인들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라 참고할 교과서나 논문도 없었다. 뺨 지방을 제거하고 근육을 묶어 올리는 수술법으로 입술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한센인 400여 명이 오 부장 덕분에 입술을 되찾았다. 주민 이상호씨는 우리도 20대의 탱탱한 입술을 갖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그는 부인(46)도 소록도에서 만났다. 그보다 4년 먼저 들어와 있던 간호사였다. 오 부장은 연애 시절엔 누가 소록도에 더 오래 남는지 시합을 하자는 말까지 했는데 결혼을 했으니 결국은 무승부인 셈이라며 결혼식 때 소록도 할머니·할아버지들이 300, 500, 1000원씩 주신 축의금은 뜻깊은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모두 소록도에 산다.

학교 때문에 부인과 두 딸(1, 2)은 지난 몇 년간 순천시에 나가 살았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소록도에 다시 모였다. “언제 무슨 일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데 우리 함께 모여 살자며 합친 것이다. 소록도 옆 녹동 중·고교를 다니는 두 딸도 아빠와 같은 꿈을 꾼다. 의사가 돼 불쌍한 이들을 돕겠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는 아빠와 두 딸이 방학 때 일주일씩 해외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캄보디아·몽골·필리핀의 오지를 찾는다. 오 부장은 소록도 할머니·할아버지의 여생을 지키고 때가 되면 해외 한세인 마을로 가 의료 봉사를 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JW중외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오 부장을 제2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성천상은 JW중외그룹 창업자인 고() 이기석 사장의 뜻을 기려 음지에서 헌신적인 의료봉사를 한 의료인에게 주는 상이다.

소록도=장대석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4.08.02 02:25 / 수정 2014.08.02 02:58

 

*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처음 사랑이라는 것은 순진하고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사람이 초심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나 꼭 유지되어야 아름다운 삶이 지속됩니다. 부부간에도 그렇고,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직분을 처음 받았을 때의 그 감격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은 처음 그 감격을 요구하십니다.-이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