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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아직도 매년 6월이면 혼자 ..."

행복을 나눕니다 2013. 7. 18. 05:27

 

 

 

 

 

"아직도 매년 6월이면 혼자 ..."

이산가족 찾기 방송 30주년… 당시 여성 진행자 이지연 ['통곡의 벽' 둘러봐요]

2000년 남북이산가족상봉서 친오빠 재회, 취재 대상되기도


南北 대화 무산될 때마다 또 몇분 恨못풀고 가시겠구나…이산가족 문제 잊혀 안타까워

  KBS 제공 "건물 외벽, 바닥, 여의도광장 아스팔트까지 온통 사연을 적은 종이로 도배됐었죠. 저기 위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어떻게 저 높은 데까지 올라갔나 몰라."


1983년 6월 30일부터 138일 동안 생방송되며 '각본 없는 드라마'로 국민을 울린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여성 진행자 방송인 이지연(65)씨의 손끝은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지붕 아래 3층 창가 쪽을 가리켰다.


30일 방송 30주년 특별 방송을 앞두고 27일 만난 이지연은 "바로 엊그제 일 같다"고 했다. "6월이 되면 저 혼자 이 '통곡의 벽'을 둘러보곤 해요. 종이를 떼어냈지만 곳곳에 자국이 남아있어요. 영원히 안 지워졌으면 좋겠네요."


당초 이산가족 방송은 일일프로 '스튜디오 830'의 단발성 코너로 기획됐다. "100명 섭외해 10명만 찾아도 대성공"이라던 방송은 폭발적인 시청자 반응에 138일간 '대장정(大長征)'으로 이어졌고, 1만189가족이 혈육과 상봉했다.


"16시간 35분 동안 마이크를 잡은 날도 있었죠. 사연 하나하나가 기막혀요. 버스 한 정거장 이웃이었던 혈육, 부모님이 총살(銃殺)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주저앉아 오열하는 자녀들, 피란 중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다며 매일 오던 할머니…."


링거까지 맞아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풍경도 큰 힘이 됐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산가족들이 몰려들어 난민촌처럼 변한 방송국 앞은 모포를 잔뜩 싣고 와 나눠준 중소기업 사장, 따끈한 어묵 국물을 돌린 포장마차 주인,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종이에 찾는 가족 이름을 적어주는 학생들 덕에 훈훈해졌죠. 진행자들 힘내라고 꿀이나 산삼을 들고 오신 분은 또 얼마나 많았는데요. 거기서 우리의 아픔과 희망·저력을 함께 본 거죠."


30년 전 헤어진 가족을 찾는 이들이 붙였던 벽보들로 도배가 되다시피했던 KBS 본관 건물 앞에 다시 선 이지연씨. “그때 지켜봤던 슬프고 처절한 안타까운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왼쪽 작은 사진은 1983년 방송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한 장면. 이지연(오른쪽)씨가 눈물을 쏟고 있는 한 이산 가족 옆에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다.


서른다섯 살이었던 이지연씨는 가족들을 섬세하게 배려하는 진행으로 사랑받았고, 이후 열린 음악회 초대 여성 MC를 맡는 등 굵직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해왔다.'이산가족 방송'은 그의 삶에 어떤 의미일까? "그 숱한 진행자 중에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 거잖아요. 감사하죠. '프로니까 해야 한다'라는 마음보다는 '진정성·사명감으로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호평 받았던 진행에 대해 "아무래도 내가 이산가족이라는 점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 방송에서 대본에도 없이 '사실은 저도 이산가족'이라고 고백한 이지연은 17년 뒤인 2000년 8월 남북이산가족상봉에서 열다섯 살 위의 오빠 리래성씨와 만나면서 국내외 언론 '취재 대상'이 됐다. "오빠를 그리는 아버지의 눈물 때문에 어린 시절 교회에서 '저를 아들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어요. 상봉 당일 저 멀리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거예요. 직업(배우)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오빤 농담도 잘하고 얼마나 여유가 넘쳤는지 몰라요."


짧은 상봉 후 근황을 알 길이 없어 애태웠던 이씨는 몇 해 전 지인을 통해 '손자가 태어나 대(代)를 잇게 됐다'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오빠와 조카·조카 손주들이 한데 모인 가족사진을 보고 나서 안도했다.


44년째 현역 활동(KBS3 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진행) 중인 이씨와 이산가족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세대 이산가족 모임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고, 2005년 한가위와 설, 2006년 설등 세 차례에 걸쳐 1세대 실향민들이 금강산에서 합동 차례(茶禮)를 지낼 때 위문 공연 사회도 자원봉사를 했다.


"남북이 삐걱거려 대화가 무산됐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또 몇 분이 한을 못 풀고 눈감으시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요. 정말 다 돌아가시면 끝나는 걸까요? 부모님의 슬픔을 간직하고 외롭게 살아온 2세, 3세들로 계속 이어질 겁니다. 우리가 끝까지 안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장기 계획'이 있다. "서울·평양 2원으로 이산가족 방송 생방송을 하게 되면 꼭 제가 마이크를 잡을 겁니다. 그땐 나이가 지긋하고 머리가 하얘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히려 더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요?(웃음)"

조선일보 정지섭 기자  김연정 객원기자 입력 : 2013.06.28 03:03


*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사람은 누구나 복 받기를 좋아하고 희망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 중에 하나님의 자녀 되는 복과 천국백성 되는 복이 있습니다. 이 복은 누구나 꼭 받아야 되는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받는 복입니다.-이박준